K-OTT의 슬기로운 생존전략

코로나19가 걸어잠근 방문 안, ‘저기압’의 사람들이 ‘고기 앞’ 그리고 ‘넷플릭스’ 앞으로 향했다.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전 세계 1,577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역대 최대 규모의 사용자 증가치이며, 당초 전망인 700만 명을 두 배 이상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의 성장은 눈부셨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은 2020년 4월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서 439억 원의 결제 금액을 벌어들이며 국내 시장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넷플릭스에게 한국 시장은 단순히 ‘문화 큰손’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다. 아시아 및 세계 전역의 K-콘텐츠 매니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다. 고객 유치로 한국 시장 장악력을 획득하고, 국내 콘텐츠 공급자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며 독자 콘텐츠 등 사업을 확장한다면 K-콘텐츠를 즐기는 각국의 고객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넷플릭스 앞에, 토종 OTT 서비스 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왓챠플레이 : 한국인의 취향저격수

왓챠플레이는 ‘로컬 취향저격’ 선두주자이다. 포브스 등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츠 제작에 160억 달러(약 20조 원)를 쏟아부으며, 대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여 고객을 유혹하는 전략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용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대작이 아닌, 이용자가 원하는 ‘바로 그 콘텐츠’이다. 왓챠플레이는 한국인이 찾는 최신 인기 미국 드라마 라인업을 유치하고, ‘꽂힌’ 시리즈를 몰아서 ‘정주행하는’ 시청 습관을 고려해 이들을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넷플릭스가 미국 내에서 HBO와의 경쟁 때문에 보유하지 못한 <왕좌의 게임> 등이 그 예이다. 국내에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메디컬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또한 왓챠플레이에서는 전 시즌을 몰아서 정주행이 가능하다.

왓챠

이용자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데도 왓챠가 넷플릭스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왓챠플레이의 사용자들은 각 콘텐츠에 대해 리뷰를 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형성해 감상과 다른 추천 콘텐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세심하고 체계적인 분류 및 추천 알고리즘도 장점이다. 이용자는 이야기의 배경, 시대, 작품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연기력 등)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작품을 탐색할 수 있으며, 감상한 콘텐츠에 평점을 남기며 개인의 추천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

왓챠플레이는 이러한 추천 시스템 및 알고리즘을 최전선에 내세우며 ‘취향 저격수’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공개한 넷플릭스 콘텐츠 추천 서비스 ‘왓플릭스’는 왓챠의 자신감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쟁사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아이러니한 서비스가 하필 만우절에 공개되면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만우절 장난이 아니냐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OTT 서비스를 애용하는 이들은 이른바 ‘넷플릭스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는 이용자가 넷플릭스의 상위 노출 인기 콘텐츠, 기존 시청기록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콘텐츠 중 무엇을 볼지 섬네일과 설명만 이삼십 여 분간 들여다보다 잠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왓챠플레이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고객이 회원가입 후 자신의 취향 정보를 입력하면 넷플릭스 콘텐츠는 물론, 넷플릭스에는 없지만 자사 플랫폼 내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까지 함께 추천해준다. 정확한 니즈를 공략한 이용자 확보에서 보유 콘텐츠 제시를 통한 고객 락인(lock-in)까지 이어지는 훌륭한 모객 전략이다.

왓챠는 영화와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도서, 게임, 뷰티 등 다양한 문화 취향을 아우르는 취향 공유, 추천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음원 유통 서비스 ‘왓챠뮤직퍼블리싱’을 준비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왓챠의 이와 같은 ‘한국인의 취향 자신감’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웨이브 : 정면승부

왓챠가 ‘미드족’들의 취향을 세밀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바로 그것’을 찾아준다면, 웨이브는 ‘현대 한국인이라면 좋아할 만한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쳐 정제한 일종의 큐레이션을 제시한다.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한 한국형 막장드라마의 대가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모은 ‘순옥명작관' 채널 등이 그 예다. 또 웨이브는 90년대 가요프로그램을 틀어 화제가 된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을 위시한 듯한, <순풍산부인과>, <대장금>, <슬램덩크> 등 지상파가 오래 전 확보한 콘텐츠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른바 ‘탑골 콘텐츠’는 기성 세대의 추억과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인기를 모았다. 목록 중에는 <전설의 고향>, <판관 포청천> 등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과 해외 콘텐츠도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웨이브

자신만의 강점으로 공룡 넷플릭스에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왓챠와 달리, 웨이브는 다소 정면승부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웨이브는 출범 당시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강조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선보인 오리지널 콘텐츠 <조선로코-녹두전>의 국내 성공 이후 이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는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한 SBS <꼰대인턴> 등 드라마 4편에 대한 투자를 확정하고 지상파와 종편 드라마·예능 콘텐츠를 추가 오리지널 라인업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웨이브는 올해 600억 원, 2023년까지 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4월 미국의 NBC유니버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플랫폼 안팎의 콘텐츠 유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웨이브는 이 파트너십을 통해 <미니언즈> 등의 콘텐츠를 독점 공급받으며, NBC유니버설을 통해 웨이브의 지상파 3사 및 일부 종편 콘텐츠를 해외 유통한다.

웨이브는 이를 바탕으로 국내 서비스에 만족하기보다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비전을 그리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해외에서의 서비스 이용 장벽을 뚫는 ‘웨이브 고’ 서비스를 내놓았다. 기존에는 국내 이용자가 해외에서 웨이브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VPN 등을 활용해 우회 접속이 필요했지만, 웨이브 고를 이용하면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7개국에서 한 번에 최대 7일간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웨이브는 이를 시작으로 현지 교민 대상 서비스, 해외 진출 등 글로벌 서비스를 단계별로 확대할 예정이다

CJ ENM X 넷플릭스

CJ ENM 계열의 콘텐츠를 주축으로 하는 티빙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발을 넓혀나가는 모양새다. 이들이 서비스하는 콘텐츠는 TV를 주무대로 하는 만큼 높은 대중성을 자랑하지만, 힙합 마니아를 공략하는 엠넷의 <쇼미더머니>처럼 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즉 해외 시장에 내놓았을 때 한국색을 띠면서도 분명한 특색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그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타고 콘텐츠를 수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CJ ENM의 드라마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은 올해부터 3년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 같은 기간 티빙의 2대 주주로서 한식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JTBC의 자회사 JTBC스튜디오는, 넷플릭스에 자체 드라마 콘텐츠를 공급하고 드라마 공동 프로덕션을 진행한다.

cj ENM

삼사삼색

이처럼, ‘공룡’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한 국내 OTT서비스들의 생존 전략은 제각각이다. 콘텐츠 수급면에서 보면왓챠는 넷플릭스의 약점인 ‘한국인 습관저격’, ‘한국인 취향저격'을 집중 타깃으로 이용자들에게 자신의 강점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웨이브는 지상파의 방대한 라이브러리와 한국 고객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계속하며 남다른 큐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콘텐츠 제작면에서는 웨이브처럼 공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자체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장 자사 콘텐츠 제작에 힘쓰는 한편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콘텐츠 수출에 집중하는 CJ ENM도 있다.

어떤 전략을 취하든, 이들 모두 열성적인 이용자인 한국 고객과 시장에 대한 완벽한 장악,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 콘텐츠의 확보를 통해 새로운 사업 분야 그리고 새로운 지역과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들 모두에게 코로나19가 위기가 아닌 집콕 문화생활족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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