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유튜버 이원지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고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삶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변화와 어려움에 직면한 분야는 단연 ‘여행 콘텐츠’이다. 코로나19 사태 4개월 차,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여행 유튜버 이원지 작가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듣고 왔다.

일상과 여행을 담다 ‘원지의 하루’

‘원지의 하루’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원지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과 함께 다양한 여행지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 여행 유튜버이다. 친근하고 편안한 캐릭터와 꾸밈없는 여행 영상으로 많은 구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채널의 슬로건이 ‘살아가듯 여행하는 원지의 하루’예요. 그래서인지 여행과 일상이 공존하는 모습을 담는 경우가 많죠. 평범한 여행보다는 일상 같은데, 일상보다는 또 여행 같은 그런 순간, 그런 모습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 작가의 여행 경력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스무 개 조금 넘는 나라들을 다녔다. “여행 다닌 기간에 비하면 가본 나라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에요. 많이들 여행하시는 유럽은 오히려 거의 가보지 못했죠.”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이색적인 문화와 특징이 있는 곳을 주로 다녔고, 한 번 갔던 나라를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1년 이상 머물기도 하는 등 일반적인 관광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추구했다.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영상도 유명 관광지 소개보다는 ‘우간다 자취 생활’이나 ‘미국 직장 생활’처럼 외국에서 보낸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많다. 이런 매력 덕분일까, ‘원지의 하루’ 구독자는 어느새 7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원지

삶의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이야 어디에서건 자신을 ‘여행 유튜버’라고 소개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여행 영상을 찍었던 건 아니다. 유튜브를 시작했던 이유는 “삶의 과정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가의 20대는 다양한 도전과 노력, 그리고 시행착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출근하다 울어버렸던 날도 있었고, 밤낮없이 매달렸던 창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와 무산이 반복됐고, 죽어라 뛴 것 같은데 계속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지치자 곧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결과에 집착해서 마음이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매일의 삶을 기록하면서 결과보다 과정의 소중함에 집중해보자고 결심했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매일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상을 기록하는 유튜브 ‘원지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상을 기록하다 보니 평범한 하루에는 의외로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그 뒤로도 다양한 시도는 계속 이어졌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능동적인 소득원을 만들어주겠다는 목표로 우간다에서 1년간 고군분투하기도 했고, 덜컥 해외 취업이 돼서 미국에서 영상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우간다에서의 1년이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지도 않았고 미국에서도 맘고생 끝에 계획보다 이르게 귀국했지만, 그 모든 시행착오는 그저 실패가 아니었다. 여행지에서의 일상, 다양한 시도에 대한 경험담은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 우간다에서의 경험은 에티오피아 관광청의 ‘팸 투어’(사전 답사 여행) 초대로 이어졌고 에티오피아 여행은 또 좋은 영상 콘텐츠로 이어졌다. 결과만 보고 ‘헛짓거리’를 했다며 속상해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이원지

살아가듯 여행하고 여행하듯 살아가는

그렇게 다양한 여행과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유튜브에 올렸다. 우간다, 에티오피아, 나미비아, 베트남,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마치 일상처럼 여행하는 삶이 이어졌다. 놀랍게도 이런 여행에 공감하는 유튜브 시청자들이 많았다. 이색적인 여행지와 연출이 거의 없는 자연스러운 화면이 특별한 여행지를 보며 호기심을 채우려는 사람들과 일상 영상을 보며 휴식하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킨 것이다.

일상 같은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지가 금세 친근해졌고 현지 사람들과 문화를 이해하기도 쉬웠다. “여행지의 사람들과 문화를 이해하려면 ‘틀림’과 ‘다름’ 사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황스럽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순간에도 그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무던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자세는 여행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데도 도움이 됐다.

“여행이 ‘서핑’ 같다고 생각해요. 서핑은 불규칙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그 리듬을 즐기는 스포츠잖아요.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여행에 제 시간을 맡기면, 비로소 정말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죠.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영상을 만들 때도 이런 부분을 잘 전달하기 위해 신경 쓴다. “여행지에 대해서 ‘좋아요, 나빠요’ 같은 직접적인 언급은 가급적 안 합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행지를 보여드리는 게 제 채널의 가장 큰 목적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전에 기획도 따로 하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좋은 장면을 놓칠 때도 있지만 그때도 따로 연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원지

코로나19로 달라진 여행 유튜버의 일상

언제나 계속될 것 같았던 여행은 코로나19 사태로 완전히 중단됐다. 사태 초기에 인도에 있었는데, 한국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인도에서의 여행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장 식당에만 가도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여행객들이 ‘코로나’라고 쑥덕거리며 피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도 갑자기 취소됐다. 겨우 다음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었지만, 혹시 또 취소될까 비행기에 탈 때까지 계속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행히 귀국은 했지만 2월에 예정되어 있던 대만 여행은 취소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5월이 되면, 6월이 되면, 그렇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곧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결국 WHO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많은 나라가 국경을 걸어 잠갔고, 바쁘게 전 세계를 오가던 항공기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해외 여행지를 주로 다루던 유튜버들에게는 가혹한 시간이 이어졌다.

“알고 지내는 모든 여행 유튜버들이 다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이렇게 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전부 한국에 있는 건 처음 봐요.”

평소엔 잦은 해외 촬영과 출장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귀국해 있다는 걸 인식할 때마다 이 사태가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가도 인도에서 돌아온 뒤 몇 달째 국내에 머물고 있다. 평소엔 영상 촬영이나 외부 협력 프로젝트 등을 위해 1달에 최소 1번, 많을 땐 3번까지도 출국했었는데, 이제는 언제 다시 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이원지

그래도 여행은 계속된다

“이번 사태로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진 나라가 많아서 당장 여행 환경이 예전처럼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이동에 대한 공포도 심한 상황이고요.”

그래도 이 작가는 이 상황을 최대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한다. 기존에 미리 촬영한 여행 영상을 계속 편집해서 올리고, 중간중간 국내 자취 일상 등도 함께 올린다.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프리랜서 관련 정보 영상도 계획하는 등 최대한 현실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려 애쓰고 있다. 이후 국내 상황이 좋아지면 국내 여행 영상을 찍으면서 해외 상황의 추이를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이 작가는 ‘여행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여행의 형태가 바뀔지언정 여행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앞으로 서로 간에 접촉을 최소화하는 캠핑이나 ‘차박(자동차에서 머물고 잠을 자며 하는 여행)’ 같은 여행이 늘어나고, 단체 여행보다는 혼자 하는 여행이나 소규모 여행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자연히 여행 콘텐츠 제작자들이 다루는 내용도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여행을 선도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 콘텐츠 제작자들의 역할 자체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지만 전달하는 정보의 내용은 바뀔 것 같아요. 여행의 형태 자체가 변할 테니까요.”

상황의 변화가 당황스럽긴 하지만 여행이 완전히 멈춰 서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이 작가. 국내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리며 새로운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바로 제주도나 강원도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이다. “예전부터 자전거 여행을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에도 딱 맞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전거로 이동하면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국내에는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가 많아요. 재밌는 여행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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