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인데 잘 배울 수 있을까?

교육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대다수 사람들이 ‘교실에 모여 다 같이 수업을 듣는’ 이미지를 상상할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수업을 듣는 게 전형적인 교육 형태였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바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는 교육의 형태도 ‘비대면’으로 바꿔놓았다. 체육시설 휴업으로 집에서 운동을 하는 홈트레이닝족, 학교 개학이 연기돼 온라인 개학을 맞이한 학생들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교육을 받고 있다. 불과 두세 달 사이에 대세가 된 비대면은 우리 삶과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홈트레이닝계 넷플릭스 ‘펠로톤’

코로나19로 국내외 주가가 폭락하는 등 일명 ‘코로나 발 경제 위기’가 세계를 위협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틈새시장을 공략, 기회를 파고든 기업이 있다. 미국의 구독형 홈트레이닝 서비스 펠로톤(Peloton)이 대표적인 예시다.

국내에서 펠로톤이라는 기업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서양권에서는 ‘홈트레이닝계 넷플릭스’라 불리며 관련 시장을 장악했다. 펠로톤은 지난 2012년 존 폴리(John Foley)가 “집에서도 스피닝을 즐기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설립했다.

펠로톤은 모니터를 장착한 스피닝용 자전거 등 운동기구를 판매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 코칭 콘텐츠를 제공한다. 운동기구 없이 콘텐츠만 즐길 경우 월 12.99달러(한화 약 1만 6,000원) 수준의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펠로톤 성공의 비결로는 ‘소통’이 꼽힌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단순한 동영상 강의가 아니다. 실시간 스트리밍 수업이다. 강사는 실시간으로 접속 명단을 확인하고 수강생의 운동 데이터를 체크하면서 상황에 맞게 코치한다. 인기에 힘입어 펠로톤은 지난 2019년, 기업 공개(IPO)에 성공하며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코로나19는 많은 기업에 위기가 됐지만 펠로톤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 집에서 운동하려는 홈트레이닝족 증가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매출이 급증했다. 5월 초 펠로톤이 밝힌 2020년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66% 급증한 5억 2,460만 달러(약 6,400억 원)이다. 동일 기간 구독자 수는 94%, 약 두 배 증가했다.

펠로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홈트레이닝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홈트레이닝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단계였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홈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효과가 극대화됐다.

홈트레이닝, 국내서도 관련 산업 매출 급증

홈트레이닝 관련 국내 수요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정부가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약 4주 동안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부터다. 정부는 헬스장 등 실내 체육시설업장에 이 기간 동안 임시 휴업 또는 위생·방역 수칙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권고했다. 집에서라도 운동 수요를 충족해야 했던 운동인들은 홈트레이닝으로 눈을 돌렸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6주간 홈트레이닝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는 ▲스텝퍼(100%) ▲아령(92%) ▲워킹머신(75%) ▲실내자전거(53%) 등 운동기구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다. 위메프 기준 5월 1일부터 19일 동안 운동기구 관련 매출은 더욱 상승했다. 특히 스텝퍼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128% 상승이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운동기구뿐만 아니라 운동복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운동복 브랜드 안다르는 2020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200% 증가했다고 밝혔다.

AI의 등장, 동영상 강의 한계 뛰어넘는다

이렇듯 홈트레이닝이 인기를 얻자 덩달아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 있다. ‘AI(인공지능)’이다. AI 업계는 트렌드에 맞춘 서비스를 개발하며 홈트레이닝 시장 진출을 꾀했다. 미국의 펠로톤이 그랬듯 혼자 하지만, 같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전략이다. AI를 이용하면 기존의 동영상 강의가 충족시키지 못했던 ‘맞춤형 운동’ 콘텐츠 제공도 가능하다.

AI 홈트레이닝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이동통신사다. 그간 이통 3사는 AI와 VR(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에 총력을 가한 바 있다. LGU+ ‘스마트홈트’의 3월 월평균 이용자 수는 1월 대비 38% 늘어났다. 동일 기간 이용자가 실제로 운동을 실행한 횟수는 100% 증가한 3만 건을 기록했다. 스마트홈트는 LGU+와 카카오 VX가 협력해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 등 250여 편의 운동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AI 코칭과 AR(증강현실) 자세보기 기능을 통해 혼자 하는 홈트레이닝이지만 자세를 교정받을 수 있다.

2018년 ‘눔’ 서비스를 시작으로 AI 홈트레이닝 시장을 개척하던 KT도 사업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고투 피트니스, 건강한 친구들과 사업 제휴를 맺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홈트레이닝’ 서비스를 출시한다. 고투 피트니스가 진행 중인 생방송 운동 프로그램 ‘라이브 GX’도 연내 선보이겠다는 목표다.

투자 시장에서도 홈트레이닝 종목은 각광을 받고 있다. AI 헬스케어 스타트업 마이베네핏은 최근 10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마이베네핏은 동작인식 카메라를 활용해 사용자의 동작을 인식하는 키오스크 코치 ‘버추얼 메이트’를 제조하고 있다. 버추얼 메이트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체격, 자세, 체력 등을 측정하고, 알맞은 운동을 제안한다. 온라인 홈트레이닝 서비스 ‘리트니스’를 운영 중인 꾸내컴퍼니도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리트니스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집에서 운동 지도를 받는 서비스다.

AI 홈트레이닝은 학교 교육까지 파고들었다. AI 홈트레이닝 앱 ‘라이크핏’은 온라인 개학이 결정된 초·중·고등학교에 체육수업을 지원했다. 온라인으로 체육수업을 진행할 경우 학생들이 주어진 운동 과제를 실제로 수행했는지 점검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라이크핏은 동작인식 기술로 학생들이 정말 과제를 했는지 수행 여부를 판단해준다. 실제 상당수 학교가 라이크핏에 학교 과제 연동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 돌봄부터 시니어 교육도 모두 비대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확산된 비대면 교육 열풍은 홈트레이닝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비대면 교육은 그간 오프라인 대면 교육 혜택을 받지 못했던 소외 계층의 갈증을 해소해주기도 한다. KT는 최근 전국 31개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한 쌍방향 VR 체험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대상은 긴급 돌봄 아동이다. AR로 동물 기르기, VR 콘텐츠 제작하기 등 놀이 형식의 콘텐츠로 아동센터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체험 교육 기간은 온라인 개학 종료 시까지로 100회 이상의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뿐 아니라 노인도 비대면 교육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서초구청은 시니어들이 각종 비대면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활용을 위한 비대면 교육’을 진행한다. 온라인 쇼핑, 배달, 마스크구입 등 관련 앱 사용 방법을 온라인 강의로 제작해 유튜브 채널 ‘서초 할마할빠 이야기’ 및 구청 홈페이지에 업로드한다. 스마트폰 앱 외에도 바둑, 댄스 등 시니어가 집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비대면 취업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과천시는 그간 오프라인에서 집합 교육 형태로 실시하던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온라인 및 모바일 화상 수업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과천시는 5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온라인에서 행복 취업 특강 및 스마트폰 활용 지도사, SNS마케팅 전문가, 재난안전지도사 등 자격증 취득 수업을 진행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AI 면접 준비반, 취업 멘토의 취업꿀팁 등 강좌도 개설한다. 강좌는 화상회의 툴 ‘줌(ZOOM)’을 이용해 학생과 강사가 실시간 소통할 기회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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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 사라지는 시대

많은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교육으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 말하고 있다. 성공 예시로는 미국의 온라인 대학교 ‘미네르바 스쿨’을 꼽는다. 지난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 스쿨은 1~2%의 합격률을 자랑하며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힘든 대학교’라는 명성을 얻었다. 대학 생활하면 캠퍼스와 잔디밭의 로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는 미네르바 스쿨에는 캠퍼스가 없다. 당연히 도서관도 강의실도 없다. 학생들이 노트북을 펴는 곳이 바로 강의실이 되고 캠퍼스가 된다. 미네르바 스쿨의 독특한 교육 방식은 미래 교육이 나아갈 방향 중 하나로 여겨지며 전 세계 교육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네르바식 온라인 교육에는 녹화된 강의가 아닌 실시간 소통 강의를 통해 교실에서 다 함께 수업을 듣는 느낌을 줄 수 있고 피드백과 자료 공유 역시 즉각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교실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데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교가 제공하던 사회화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 것이냐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학교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학교란 친구를 만나고 사회 학습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익히는 장소다. 또한 장애아동의 비대면 교육 방법과 공정 평가를 위한 성적 평가 시스템 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 누구도 비대면 교육이 이렇게 빨리 전국, 전 세계 교육 현장에 도입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지만 이미 기회의 장은 펼쳐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교육으로의 전환은 ‘교육 혁신’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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