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놓은 코로나19. 공연계와 예술인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생계를 위협받으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나가기를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둔 지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공연계를 뒤흔든 코로나19

오랜 전통을 지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가 새로운 시도로 공연장의 벽을 허물었다. 지난 4월 27일 공연한 ‘앳 홈 갈라’가 바로 그것이다.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등 40명이 넘는 클래식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특별한 공연의 무대는 온라인이었다. 예술가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자의 집에서 스카이프를 연결해 하나가 되었고, 이들의 하모니는 메트 홈페이지를 타고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메트는 코로나19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경제적 위기에 놓인 프리랜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이 공연을 기획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160여 국가의 관객들이 동시에 접속해, 100만 뷰가 넘는 기록을 남겼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장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예술의 힘이 그 벽을 뛰어넘은 것이다.

공연계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큰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메르스 사태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공연계 매출액(91억 2,600여만 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835억 700여만 원) 대비 1/9로 급락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조사 결과 지난 1~4월 사이 취소·연기된 현장 예술 행사는 2,500여 건으로 피해액만 523억 원에 이르고, 예술인 중 90%가 전년 대비 수입이 감소했다.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홍콩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조기 폐막,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앙상블 배우가 코로나 확진을 받아 약 3주간 공연을 중단했다. 그야말로 코로나 쇼크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연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 것인가? 코로나19가 공연계에 불러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무대의 온라인화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됨에 따라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키워드로 떠올랐는데, 공연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대는 공연장을 넘어 온라인으로 향했고, 관객들은 객석이 아닌 안방 1열에 앉아 공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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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

코로나19가 지속되자, 공연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 등이 연이어 유튜브 채널로 공연 영상을 전송했고, 영국국립극장,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베를린 필하모닉 등 그간 공연 영상 제작에 적극적 투자를 해왔던 단체들도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을 위해 인기 레퍼토리를 무료로 서비스했다. 스타 창작자들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영국의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을 통해 자신이 작곡한 명작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의 전막 실황을 공개했다. 그중 웨스트엔드 초연 25주년 특별 공연 버전으로 상영된 <오페라의 유령>은 약 1,000만 뷰를 기록하며, 한화 약 4억 900만 원의 코로나19 구호 기부금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장들이 한동안 문을 닫아야 했지만, 관객들은 클릭 하나로 공연의 막을 열고 닫으며 세계 각국의 무대와 교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공연계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활용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LG아트센터는 디지털 스테이지 ‘CoM On’의 론칭을 알리며, 5월부터 두 달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유튜브 채널, 네이버 TV, LG유플러스 U+TV, U+tv모바일을 통해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로버트 윌슨 연출의 <아담 수난곡> 등 해외 화제작을 서비스했다. 예술의전당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극 <페리클레스>, 유니버설발레단의<심청> 등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의 대표작을 상영했다. 싹 온 스크린은 2013년 예술의전당이 국내 공연장 최초로 시작한 공연의 고화질 영상화 프로젝트로 주로 지역 문화시설이나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처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됐다. 또한 세종문화회관은 네이버 TV를 통해 무관중 온라인 중계 공연 ‘힘내라 콘서트’를 펼쳤다. 코로나 타격을 받은 공연단체를 위해 제작비와 중계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연극 <흑백다방>,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등 16개 작품이 랜선을 타고 관객을 만났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콘텐츠들도 온라인 속 공연의 활약에 가세했다. 국립극단은 공연을 앞둔 배우들의 대사를 미리 들을 있는 ‘대사 좀 맞춰줄래?’, 배우의 미세한 표정 연기를 담은 ‘17캠’ 등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해 연극 마니아들과 소통했다. 서울예술단은 네이버 TV를 통해 온라인 갈라콘서트 ‘스팩콘’을, 국립현대무용단은 네이버 TV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무용수 25인의 셀프 영상 프로젝트 ‘혼자 추는 춤’, 홈트레이닝 시리즈 ‘유연한 하루’ 등을 선보이며 장르의 매력을 알렸다. 나아가 국립현대무용단은 2010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신작을 온라인으로 초연하는 시도를 하며, 시대의 변화를 역설해주었다. 한편 클래식 업계는 집에서 연주 영상을 전송하는 ‘홈 플레잉’으로 코로나19 속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크레디아는 젊은 클래식 스타 10인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라이브 공연을 릴레이로 펼치는 ‘Meet the Artist Live’를 기획해 랜선으로 클래식 선율을 전했다.

코로나19가 앞당긴 5G 시대는 온라인 공연에도 혁신을 일으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VR(가상현실) 공연이다. 공연이 다른 장르와 차별화되는 매력은 바로 현장감인데, VR기술은 디지털 기술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진화시키며 실제 공연에 가까운 현장감을 영상에 구현해냈다. 경기아트센터는 LG유플러스와 협업해 국내 인터넷 생중계 공연 중 처음으로 고화질 VR 서비스를 제공했다. 4K 고화질로 180도 방향에서 촬영된 경기팝스앙상블 콘서트와 경기도무용단 공연은 손에 든 기기를 움직이면 화면 속 시선도 따라 움직이는 기술력을 적용해 보다 입체적인 공연 관람을 가능케 했다. 국립국악원의 경우 전통예술과 최신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사물놀이, 부채춤 등 37가지 레퍼토리로 구성된 국립국악원의 VR 서비스는 1인칭 시점으로 근접 촬영해 무대 위에서 실연자와 함께 공연을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문화정보원이 주관한 2019년 혁신성장기반문화데이터구축 지원 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악의 저변을 확대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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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킬 새로운 모색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위기를 맞은 공연계의 새로운 활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연장이 문을 닫고 공연이 취소되는 초유의 상황에서 온라인은 무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무한히 열어주었다. 지난 3월 12일 밀라노에서 열린 안드레아 보첼리의 부활절 콘서트는 그 소통의 위력을 확인시켜준 공연이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텅 빈 밀라노 두오모에 서서 희망의 노래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로 어둠의 도시처럼 멈춰 버린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 뉴욕의 맨해튼 풍경 등이 하나씩 음악을 따라 펼쳐졌다. 그는 공연을 앞두고 “실시간 중계되는 음악으로 세계 수백만 명이 이 상처 입은 지구의 고동치는 심장을 함께 껴안을 것”이라 말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영상은 하루 만에 약 2,7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세계 각국의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고, 변함없는 예술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물론 온라인 서비스가 공연계의 영원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흐르는 특별한 공기와 매일 달라지는 현장감은 공연예술만이 지닌 생명력이 아닌가. 그 유일무이한 매력으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변함없이 예술가들은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은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인 언택트 문화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온라인의 활용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던져준다. 유튜브만 해도 국내 이용자만 3,300만 명에 달하니, 온라인이 그 활용도에 따라 많은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온라인 채널 구축부터 공연 촬영과 편집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만큼 현재는 국공립극장과 단체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공연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은 민간 극단과 제작사가 생중계나 공연 영상화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경기아트센터, 서울문화재단 등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예술 단체를 위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 제작 지원에 나서는 추세이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소규모 극단이나 지역 예술인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이 더 세부적으로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아가 온라인 공연을 통한 수익 창출 방안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K팝 장르에서는 언택트 공연을 넘어 온라인에서 서로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유료 콘서트 ‘온택트’ 공연이 수익모델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 영국 국립극장의 ‘NT 라이브’는 생생한 화질과 음질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며 성공적인 유료화 작업을 이뤘다. 이런 사례를 참고해 국내 공연계도 영상 콘텐츠를 통한 수익 창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국내 대다수의 온라인 공연이 무료로 제공되는 것은 많은 관객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예술가들과 제작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지 않고 마음껏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졌을 때, 더욱 의미 있는 공연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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