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콘텐츠산업의 새로운 판을 짜다 - 글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정부는 지난 7월 13일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추진 방향과 과제를 살펴보면 이 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부양이 전제로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판 뉴딜의 핵심 축을 이루는 ‘디지털 뉴딜’은 한국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는 ‘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연결된다.

정부는 지난 7월 13일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추진 방향과 과제를 살펴보면 이 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부양이 전제로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판 뉴딜의 핵심 축을 이루는 ‘디지털 뉴딜’은 한국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는 ‘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연결된다.

“삶이 힘들수록 희망이 필요하듯 예술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가 한 얘기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겐 문화·예술이 꼭 필요하며, 그렇지 못하면 개인과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의미다.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1929년부터 시작된 미국 대공황의 늪.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은 사치스런 이야기처럼 들렸으리라.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가 경기 부양을 위해 펼친 대대적인 ‘뉴딜 정책’엔 ‘문화 뉴딜’이 포함됐다. 3,700여 명의 예술가를 고용해 신축 공공건물에 1만 5,600여 점의 벽화와 조각을 만들도록 했다. 배우, 연출가 등을 섭외해 수천 편의 연극도 제작했다. 음악, 문학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한국판 뉴딜’에도 90년 전 미국 뉴딜 정책과 유사한 문화·예술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반영돼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카드 ‘뉴딜’

‘뉴딜(New Deal)’은 원래 카드 게임에서 나온 용어다. 카드 게임을 하던 중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패를 다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인한 ‘뉴딜 정책’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로, 기존 정책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소하고 나아가 미래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뜻한다.

2020년 뉴딜 정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은 급속히 바뀌게 되었다. 이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한국판 뉴딜의 발표에 앞서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예술 뉴딜’도 이런 경각심으로부터 마련됐다. 문체부는 예술인을 돕기 위해 3차 추경예산 1,569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랬듯, 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을 진행한다. 창작된 예술작품은 지역 관광 자원으로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의 국내 확산 직후 지난 4월 발표된 ‘경기도형 문화 뉴딜’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는 경기콘텐츠진흥원, 경기아트센터 등 5개 기관과 손잡고 103억 원을 투입한다. 이 재원으로 예술인 2,413명과 콘텐츠 기업 등 1,732개 단체를 지원한다.

그리고 이제 한국판 뉴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 아래 국내 산업과 정책이 대대적으로 재편된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자,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구체적인 방향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두 축으로 나뉜다. 뉴딜 정책에 ‘디지털’과 ‘그린’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다소 파격적이다. 토목, 건설업, 제조업 등을 중심으로 한 기존 국내외 뉴딜 정책에선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향이다. 전통 산업만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또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의 거대한 파도를 넘는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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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뉴딜 :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콘텐츠산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책은 디지털 뉴딜이다. 디지털 뉴딜의 핵심 내용은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데이터 댐’이란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됐다. 데이터 댐은 물을 한데 가둬두고 전력을 생산하는 댐처럼 데이터가 모여 결합되고 가공되는 유·무형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 데이터는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로 수집되고 활용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빅 데이터’가 콘텐츠, 유통 등 각 산업에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데이터 댐은 현재 산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빅 데이터를 더욱 체계적이고 집약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전망이다. 콘텐츠 업계는 데이터 댐을 활용해 보다 다양한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데이터 댐이 구축되면 국내 기업도 이런 형태의 사업을 적극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가 원활하게 수집되고 유통되기 위해선 네트워크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5G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인프라를 보다 확충해야 한다. 또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실감 콘텐츠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고도화된 5G 기술이 필요하다. 실감 콘텐츠의 중요성은 코로나19로 크게 부각됐다. 전 세계 모든 콘서트가 중단된 상황에서, K팝은 온라인 콘서트에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비욘드 라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비욘드 라이브’는 세계 최초로 진행된 유료 온라인 콘서트다. AR 기술을 적용하여 우주, 바다 등이 화면으로 화려하게 구현됐다. 코로나19 시대에 K팝, K콘텐츠를 통해 한류를 지속시켜 나가려면 이같이 실감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번 디지털 뉴딜로 5G 기술이 발전하면, 실감 콘텐츠가 더욱 많이 제작되고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뉴딜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도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콘텐츠 업계는 AI 콘텐츠를 적극 개발해 사람들의 일상으로 보다 가깝게 다가갈 준비를 해야 한다. AI 기술은 현재도 음성을 활용한 콘텐츠에 다수 활용되고 있다. 오디오북에 적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부모 대신 아이들과 놀아주고 교육까지 시켜주는 유아용 AI 콘텐츠도 잇달아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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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 : 새로운 시장

장기적으로는 그린 뉴딜 정책에 따른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린 뉴딜 가운데는 친환경 모빌리티에 대한 지원책도 있다. 미세먼지 감소 등을 위한 자율주행 전기차 보급을 내용으로 한다. 자율주행 전기차는 외부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내부로는 운전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운전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전자와 동승자는 이동 중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콘텐츠 개발자들은 새롭게 형성된 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준비해야 한다.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선 산업 발전과 함께 그 혜택이 콘텐츠 제작자와 문화예술인 등에게 확실히 돌아가고 있는지를 꼼꼼히 챙겨보아야 한다. 산업을 이끌고 발전시키는 주체가 계속해서 생존 위협에 시달린다면, 대대적인 정책 전환의 효과는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판 뉴딜에 ‘안전망 강화’가 포함된 것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람들의 반대에도 추진한 문화 뉴딜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를 통해 화가 에드워드 호퍼와 잭슨 폴록, 극작가 아서 밀러 등이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을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의 문화·예술 산업이 꽃피는 근간이 마련됐다. 우리의 한국판 뉴딜도 미래의 문화·예술, 특히 콘텐츠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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