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뉴딜은 어떻게 콘텐츠 강물을 흐르게 할까 - 글 김정아 커넥팅랩 기자

좋은 상품도 시대의 기회를 타야 왕도(Royal Road)를 걷는다. 방탄소년단 등을 필두로 한 국내 콘텐츠의 전 세계적 인기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 콘텐츠 소비 시간이 증가한 지금, K콘텐츠는 녹기 시작한 시냇물처럼 시류를 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터지는 봇물을 모아 비로소 국내 곳곳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흘러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제시한 그림이 바로 ‘데이터 댐’과 ‘디지털 뉴딜’이다. 2025년까지 58조 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되는 이 거대한 댐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무엇보다 당장 콘텐츠 기업과 이를 둘러싼 기반 산업 종사자에게 디지털 뉴딜은 어떻게 다가올까?

D.N.A. 생태계와 콘텐츠 파이프라인의 완성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D.N.A.(Digital-Network-A.I.) 분야는 향후 콘텐츠산업의 근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미디어 콘텐츠는 범람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미 생산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지난 8월 12일 유튜브 통계분석 전문 스타트업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국내에 개설된 개인 유튜브 채널 중 광고 수익을 올리는 채널은 5만 5,847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콘텐츠산업에 두 가지 필요성을 시사한다. 하나는 물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콘텐츠 트래픽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지난 3월 유럽에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트래픽이 폭증한 탓에 넷플릭스가 유럽에 서비스하는 영상 품질을 낮추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기간 인터넷 트래픽은 1월 대비 약 13% 정도 증가했으나, 5G 통신망의 빠른 상용화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덕분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이와 같은 여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또한 향후 생활 정보의 디지털화가 이뤄지면 이와 같은 트래픽 폭증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뉴딜 계획에 포함된 다음 세대 네트워크 기술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현존하는 기술 인프라의 적극적인 확대가 진행돼야 한다. 특히, 실생활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 온라인으로 연결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 뉴딜에서는 ‘무한의 인터넷 주소’로 불리는 IPv61 확대가 필수적이다. 댐의 수위, 강수량을 측정하는 기기 등이 모두 인터넷 주소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 차원에서의 다양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내 IPv6 도입률은 10.16%(8월 13일 구글 IPv6 웹사이트 데이터 기준)에 그친다. IP 체계를 변경하면 기업 내부 및 외부 협력에 사용되는 보안 시스템과 인프라 소프트웨어 등에도 변화가 필요하며, 이런 전환에 비용과 노동력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기점으로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민관 협력을 강화해 더욱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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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완성을 위한 조건

또 하나는 정보성 콘텐츠의 확장이다. 양적 성장은 시청자가 재미를 넘어 기존에 획득할 수 없던 새롭고 때로는 유익한 콘텐츠를 갈망하게 한다. 마니아 문화에 머무르던 시절 아프리카TV의 먹방과 수다 방송을 넘어, 유튜브가 대중문화의 하나로 부상하며 다양한 하우투(HOWTO)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콘텐츠가 등장한 이유다. 정부가 온라인에 공개할 다양한 정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후발주자, 특히 각계 전문가들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다양한 산업 지표, CCTV를 통한 각 지역 인구 밀도와 교통 상황 등을 종합해 실용적인 실시간 방송을 제공하거나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센서 산업2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이전에는 현실 정보를 수기로 네트워크에 업로드했으나, AI의 학습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과 정확도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센서를 통해 자동 수집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센서 산업은 가격과 정확도 면에서 여전히 많은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콘텐츠 분야 이외에 자율주행자 등 미래 성장 동력 산업 다수도 센서 산업의 발달에 크게 기대고 있기 때문에, 해당 산업 분야 지원은 콘텐츠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일종의 인프라를 마련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콘텐츠 제작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및 기관과의 조율도 필요하다. 다채로운 인포테인먼트 콘텐츠가 등장할 가능성은 열렸지만, 여기에는 숨은 제약이 다수 존재한다. 일례로 지자체 유튜브에서는 올해 여름의 기록적인 장마 기간 동안 각 시,구별 날씨를 시간별로 전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ㅇㅇ구에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30분 내로 잦아드니, 갈 길이 있다면 잠시 여유를 갖고 출발하라는 등 보다 세분화되어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그러나 언뜻 바로 ‘구독’ 버튼을 누르고 싶은 이 콘텐츠는 현행법에서 존재할 수 없다. 기상 예보는 기상청에서만 독점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보 시간 및 전달되는 정보량의 한계로, 변덕스러운 장마 기간 내내 레이더 영상을 보며 자신이 위치한 지역 위치에 대해 ‘셀프 진단’을 해야 했던 대부분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의문이 드는 부분일 것이다. 다양하고 유익한 콘텐츠의 융성을 위해서 정부는 민감한 정보의 보안은 유지하되, 필요한 정보는 민간에서 콘텐츠 제작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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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은 새 부대에

디지털 뉴딜과 관련해, 정부는 지능형 정부 및 여러 사회간접 자본의 디지털화를 선언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자원과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다루고 민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필요 이상의 정보 유출은 작게는 개인, 크게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보안에 대한 고민은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 계획의 행마다 ‘보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간 정부에게 익숙한, ‘시스템과 이용자 종단말(end-of-device)에서의 보안3’만을 너무 중시한 방식은 여러 불편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15년 공인인증서의 대안으로 내놓은 통합 보안 인증이 결국 단계만 줄인 설치 방식 보안임을 지적했던 것을 떠올려 보자. 결국 새로운 시대에는 보안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할 새로운 마인드와 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그와 같은 고민의 연장에서 도입한, 정보 전송 및 보관 시스템에 집중한 블록체인 방식 등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여러 사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정부에는 사업 간 우선순위를 조율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디지털 댐 등 디지털 유망 산업의 전반적인 지원을 통해 시너지와 선순환을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기획은 지향점이 분명하나, 그 범위가 크고 세부적인 계획이 아직 개발 중인 만큼 업계에서는 아직 감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 6세대 이동 통신과 지능형 반도체 등 미래 글로벌 사회를 선도하기 위해 필수적이나 아직은 막연히 꿈꾸기조차 어려운 개념이 함께 언급되면서, 너무 장기적인 계획에 예산이 투입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와 같은 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눈앞에 놓인 신기술의 보급 확대 등 당면한 과제, 그리고 콘텐츠 개발,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 간접 자본 디지털화 등 여러 가지 대분류와 그 세부 분야 산업지원 간 우선순위를 분명하고 체계적으로 선정해야 한다.

K팝 열풍이 정부 주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듯이, 단순히 콘텐츠 확충만이라면 디지털 뉴딜의 필요성이 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콘텐츠의 홍수 속 국내 그리고 글로벌 이용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바라며, 산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고객보다 몇 발은 앞서야 한다. 4차 산업 시대의 도래에 따라 일상 속 여러 정보와 데이터망을 나눠쓰게 되며, 그 정보와의 조합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처럼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제작을 위해 새로운 보안 방식과 제도를 마련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산업 발전과 지원을 타고 콘텐츠에 대한 모두의 갈증을 시원하게 녹여주는 새로운 풍경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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