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 3D 실감미디어 기업 디지소닉 김지헌 대표 - 글 정희화, 사진 봉재석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공연도 콘서트도 다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 여기,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으로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기업이 있다. K오디오의 대표주자, 3D 실감미디어 기업 디지소닉의 김지헌 대표를 만나보자.

3D 실감미디어 회사, 디지소닉

Q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디지소닉은 ‘실감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오디오 기술을 다루고 있지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TV나 컴퓨터, 핸드폰 등의 비교적 작은 모니터로 영상을 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현장감 있는 오디오 기술이 있다면 극장이나 콘서트장 못지않게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디지소닉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소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합니다.
Q
디지소닉 설립 이전의 김지헌 대표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예전에 방송국에서 3D 오퍼레이션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음향이 기존 모노 기반에서 스테레오로 막 바뀌던 때였고, 미국에선 마이클 잭슨의 뮤직드라마 <스릴러>가 대히트를 치며 국내에도 3D 음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방송국 내에서 우리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KBS의 대표 공포물인 <전설의 고향>을 3D로 만드는 작업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는 약 100여 년에 달하는 국립국악원의 근대사 자료를 기존의 아날로그 릴 테이프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Q
디지소닉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A
2002년에 ‘디지소닉 스튜디오’라는 개인 회사를 세웠습니다. 당시 서태지 씨가 미국 업체를 통해 DVD 앨범을 제작하면서 국내 기획사들도 DVD 제작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국내에는 관련 기술이 부족했죠. 그런 상황을 보면서 전문 스튜디오 설립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회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그 뒤 10년 가까이 여러 기획사와 협력하며 정규 DVD나 공연 앨범 등을 제작했고, 많을 땐 1년에 타이틀 20개, 1,200곡 정도를 작업했습니다. 또한 2012년 월트디즈니 본사의 협력사로 선정돼 더빙과 음악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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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디지소닉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요?
A
입체 음향 경험입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회사를 세우면서 연구를 시작하지만 디지소닉은 이미 20년 이상의 입체 음향 경험이 있었죠. 이 경험을 적절한 기술과 결합했습니다. 이는 국내 관련 업계에서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외 여러 기업과 당당히 경쟁하는 기술력도 디지소닉의 강점입니다.
Q
디지소닉의 전체 구성원은 어떻게 됩니까?
A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를 포함해 7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곡가 김형석 씨와 그레미상 수상자인 토니 마세라티가 사외 이사로 계십니다.

도전과 성장

Q
국산 3D 실감미디어 개발에 직접 뛰어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우리나라 음악 산업은 계속 성장하는데 기술 발전은 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랑스러운 K팝, 드라마, 영화 산업의 음향 장비와 소프트웨어는 99% 수입품입니다. 수입 제품 의존도가 그 어떤 산업군보다 심하죠.
그러던 어느 날, 3D 오디오를 구현하고 싶어서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려 했는데 어떤 수입산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써도 원하는 바를 충분히 구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공학적인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련 전문가도 영입했습니다. 그 2015년에 정식 법인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연구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Q
도전의 첫 성과는 어땠나요?
A
2016년 첫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한 3차원 입체 음향 기술이었는데, 이 제품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하는 2016년도 <코리아 VR 페스티벌(KVRF)>의 ‘VR 스타트업 컴피티션’ 부문에 출품했습니다. 현장 반응이 정말 좋았고, 결국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카카오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도 받을 수 있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R&D 고도화 기반을 구축하는 등 회사가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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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외 기업들과의 계약 성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그동안 우리나라 음향 산업에서는 수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있다고 해도 아주 저가형 제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국내외 여러 기업이 디지소닉의 기술과 제품에 관심을 가지고, 이 중 상당수가 실질적인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글 본사와도 IoT 개발 부문 기술 적용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저가형 제품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적용된 음향 기술과 상품으로 새로운 해외 시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단순히 가격 경쟁력에서 이긴 게 아니라 제품의 질과 수준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업체의 수입 대체 효과로도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디오 솔루션을 위해 해외 업체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어마어마합니다. 이를 일부라도 대체한다면 로열티 감소에 크게 기여 하리라 봅니다.
Q
창립 이후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A
R&D 자체 개발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업계의 반응이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미쳤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대부분의 사람이 A를 따르면 다들 A가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죠. 아마 낯설기도 하고, 기존 이해 관계와 상충하기 때문일 겁니다. 워낙 반응이 안 좋아서 같이 일할 직원을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R&D에 성공하며 성과가 났고, 사외 이사인 토니 마세라티를 초빙해서 세미나도 열면서 요즘은 조금씩 업계의 인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Q
반대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입니까?
A
구글에서 인정받았을 때가 가장 기쁘고 보람찼습니다. 특히 세계 음향 산업의 거인인 D사와의 경쟁에서 이겨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고무적이었죠. 이례적으로 미팅 당일에 바로 NDA(비밀유지서약)를 맺었고, 곧 ISA(인바운드 계약. 기술을 수입해서 쓰겠다는 계약)도 맺었습니다. 미팅 때 만난 구글 임원이 우리 회사 기술을 보고 “신기원을 여는 기술”이라며 “구글이 아시아권 오디오 기술을 도입한 건 최초”라고 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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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Q
코로나19 사태는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A
우리나라 음악 산업은 참 빠르게 발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본질인 음향의 발전보다 비주얼과 퍼포먼스에 더 무게를 두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빼어나고 화려한 오프라인 퍼포먼스를 자랑하게 됐지만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지면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고, 제2의 대유행이 온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업계에서는 언택트 수익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언택트로 수익을 내는 모델 자체가 없었죠. 기존 무료 콘텐츠보다 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된 겁니다.
Q
언택트 시대의 콘텐츠, 오디오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A
언택트 방식으로 수익을 내려면 결국 영상과 오디오에 변화를 줘야 합니다. 하지만 영상의 경우 실시간 구현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오디오 솔루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과 핸드폰으로 보는 영상은 도저히 같을 수 없지만 소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상 작업에 비하면 비용도 매우 저렴하죠. 영상은 재사용이 쉽지 않습니다. 비용을 많이 들여 화려한 영상을 한 편 만들어도, 한 번 소비되면 끝이죠.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려면 계속 고비용의 일회성 영상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소리는 다릅니다. 사운드 디자인과 제작 비용도 낮고, 우선 한 번 만들어진 곡은 널리, 그리고 오래 소비됩니다. 결국 소리가 음악 산업의 본질임이 여기서 드러나죠. 수익화 전략을 고민하는 중소 기획사 입장에서는 영상보다 오디오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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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K팝 언택트 콘서트에서 디지소닉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A
언택트 콘서트에는 현장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원을 듣는 것과 라이브 공연을 듣는 것의 차이가 이 현장감에 달려있죠. 현장감이 없다면 공연을 녹화해도 라이브 같지 않고 재미가 없습니다. 디지소닉은 이 공간 음향을 구현해 냄으로써 현장에서 듣는 것 같은 공간의 울림을 사용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또한 가수들의 퍼포먼스에 따라서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가수들의 움직임에 맞춰 공간 오디오를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ASMR 기법을 사용해서 소리가 가깝고 입체적으로 들리게 했죠. 덕분에 유저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장 간 것 못지않게 좋은 소리를 즐겼다는 평이 많았죠.
Q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요즘 ‘힐링 사운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나아지도록 돕는 소리죠. 우울증이나 불면증, 집중력 부족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유익한 음파를 실어서 제공하는 겁니다. 사람마다 동조하는 음파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인공지능 기법으로 연구하고 알아내는 것이 지금 가장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잘 연구해서, 언젠가 사운드 헬스케어 분야로 진입하는 게 다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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