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개그맨들의 새 무대가 되어줄까 - 글 정덕현 문화평론가

KBS <개그콘서트>가 결국 폐지되면서 개그맨들의 새로운 무대로서 유튜브가 떠오르고 있다. 이미 구독자가 200만 명을 훌쩍 넘은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지만 과연 이 새로운 플랫폼은 개그맨들의 새 무대가 되어줄까.

구독자 100만까지 7년

현재 개그맨 출신 유튜버로 가장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들은 장다운과 한으뜸이다. 2012년에 ‘흔한남매’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현재 200만 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1년 전 구독자 100만 돌파를 기념해 만든 특집 ‘흔한남매 성장 스토리+감사영상’에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과정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들은 SBS <웃찾사> 13기 공채 개그맨으로 만나 다양한 코너를 짰지만 번번이 채택되지 못해 무대 위에 설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드디어 ‘흔한남매’라는 코너로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 <웃찾사> 폐지라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는 것.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설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그 때 우연히 보게 된 ‘유튜버 되기’ 입문서가 계기가 되어 유튜브를 그들의 새로운 무대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흔한남매’의 사례를 보면 2010년대부터 10년 간 공개 무대 개그의 추락과 동시에 개그맨들의 새로운 무대가 된 유튜브의 성장을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당시만 해도 여전히 반응이 뜨거웠지만, <웃찾사>는 여러모로 부침을 겪고 있었다. MBC <개그야>가 2009년에 폐지되고 <웃찾사> 역시 2010년에 종영했다. 2013년 다시 시즌2로 돌아왔지만 4년만인 2017년에 폐지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리고 2017년 즈음에는 <개그콘서트>의 시청률도 점점 떨어지는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2020년 6월 26일 3% 시청률로 쓸쓸하게 종영하고 만다. 이렇게 공개 무대 개그가 점점 추락하게 되는 과정에서 많은 개그맨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로그램에서 이탈했고 ‘흔한남매’처럼 유튜브에 자신들만의 무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이 생각만큼 쉬운 건 아니었다. ‘흔한남매’가 100만 구독자를 넘기게 된 시점이 유튜브를 시작한 지 7년 후인 2019년이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이들은 방송에 나왔던 개그맨이라는 입지를 갖고 있긴 했지만, 유튜브라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거의 무명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정은 개그맨 출신 유튜버 중 두 번째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엔조이커플 손민수, 임라라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모두 공개 무대 개그에서 빛을 보지 못했고 대안으로 유튜브 ‘엔조이커플’을 2017년에 시작했다. 현재는 구독자가 180만 명이지만 이들의 성공은 2년 전 그 유명한 ‘엘리베이터에서의 방귀 몰카’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 몰카가 엄청난 화제가 되면서 일약 스타 유튜버가 되었던 것. 이처럼 개그맨 출신 유튜버들은 애초부터 유튜브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추락해가고 있는 공개 무대 개그의 한계를 느끼고 대안적으로 선택한 것이었고, 개그맨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 흔한남매 ⓒ 엔조이커플

인지도보다 중요한 것

<개그콘서트>마저 폐지되면서 유튜브는 이제 개그맨들의 새로운 무대로 자리했다. 공개 무대 개그로부터 빠져나온 개그맨들뿐만 아니라, 이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확보한 이들에게 조차 유튜브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필수’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양세형, 이국주, 이영자, 이수근, 김구라, 김준호, 강유미 같은 유명 개그맨들도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지도가 높은 개그맨들은 유튜브에서의 성공이 보다 손 쉬울까. 분명 그 영향은 있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 ‘양세브라더스’를 개설한 양세형, 양세찬 형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동영상 수도 10개 남짓으로) 5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또 노홍철은 ‘저는 노홍철이 맞다’는 영상 하나만으로도 18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열 개가 조금 넘는 영상만으로도 34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수근 채널’은 현재 구독자가 44만 명을 넘었지만 유튜브 개설은 2016년 12월에 시작했고, ‘얼간김준호’의 경우도 현재 43만 명의 구독자를 넘었지만 그 시작은 2017년 6월이었다. ‘김병만의 어드벤처’도 2017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구독자수는 26만 명이지만 영상 조회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이영자 채널’의 경우 개설은 했지만 지속적으로 영상이 올라오지 않아 사실상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지도는 분명 유튜브 성공의 요소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보의 재미와 보다 성실한 활동이다. ‘흔한남매’가 성공한 건 개그 코너 속에서 이미 입증됐던 재미있는 캐릭터와 케미를 유튜브 방송으로 가져와 다양한 미션과 도전을 쉬지 않고 영상으로 게재했기 때문이다. 엔조이커플도 먹방과 몰카 개그 같은 다소 자극적인 소재들이 있긴 하지만, 실제 커플인 손민수, 임라라의 다양한 리얼 데이트 상황이 주는 재미가 적지 않았다.

몰카, 먹방, 한정적인 소재

그렇다면 공개 무대 개그에서 유튜브로 무대를 옮겨간 이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어떨까. 그건 개그맨으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마련해 주고 있을까. 물론 몇 백만 구독자를 확보한 성공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게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지는 않다. TV를 통해 개그맨으로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유튜브에 와서는 소소한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그 정도의 성과만으로는 개그맨들이 생계를 이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에서도 개그맨들이 시도하는 콘텐츠의 소재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하는 소재 중 먹방이나 몰카가 유독 많은 건 이 소재들이 유튜브에서 먹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엔조이커플이 순식간에 100만 구독자를 확보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몰카’였다. 개그맨 유튜버들 중 세 번째로 구독자가 많은(115만 명) ‘동네놈들(개그맨 안진호, 정재형, 최부기)’은 몰카를 콘셉트로 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이 올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몽타주 속 범인을 만나게 된 일반인들의 반응을 몰카로 담아낸 영상은 86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90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배꼽빌라(개그맨 김승진, 유룡, 이재훈)’도 마찬가지로 몰카를 소재로 성공한 채널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님이 전화 통화를 하며 쏟아내는 엉뚱한 발언들을 같이 탄 이들이 듣고는 키득키득 웃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53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몰카가 개그맨 유튜버들의 주요 소재가 된 건 무대 바깥으로 나와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유튜브 개그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무대에서는 정해진 대본 안에서 연기를 보이는 것이지만, 유튜브는 일상 속에서 리얼한 상황을 연출해 웃음을 줘야 한다. 관객 또한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몰카 속 일반인들은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반응을 보여주는 관객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상황 자체도 웃음을 주지만, 그 상황을 본 일반인들의 리액션 또한 웃음을 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몰카는 여러모로 위험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칫 자극적인 설정들은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몰카에 대한 ‘조작’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만일 조작이 실제로 드러나게 되면 그 후폭풍은 만만찮을 수 있다.

개그맨 유튜브 중에 또 한 가지 많은 소재는 먹방이다. 물론 먹방은 유튜브 콘텐츠 중 어떤 방송에서도 한 번씩 시도되는 소재로 자리했지만 개그맨 시절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먹방을 보여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국주가 그렇고 홍윤화 김민기의 ‘꽁냥꽁냥’도 그렇다. 최근 유튜브를 시작한 양세찬, 양세형 형제 역시 먹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점은 당장 이 소재가 유튜브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 동네놈들 ⓒ 배꼽빌라 ⓒ 홍윤화 김민기 꽁냥꽁냥

유튜브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

유튜브가 당장 설 무대 자체가 없어진 개그맨들의 대안적 무대가 되어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공개 무대 개그의 공간과는 사뭇 그 특징이 다르고 요구되는 콘텐츠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가능성만큼 한계도 적지 않다. 즉 일상 속에서 웃음을 찾아낸다는 건 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일로서 해왔던 개그맨들에게는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공은 다소 우연적으로 ‘터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은 유튜브라는 공간이 그만큼 개그맨들에게 안정적이지는 않다는 걸 말해준다.

또한 유튜브는 웃음만큼 그 채널만의 확실한 정보와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그맨들 중에는 이상훈처럼 아예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같은 토이를 만드는 걸 소재로 하는 유튜브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채널은 개그맨으로서의 새로운 무대라기보다는 그런 취미를 가진 이들과 정보를 나누는 공간에 가깝고 그건 어쩌면 유튜브가 가진 진짜 특색일 수 있다.

유튜브는 분명 개그맨들에게 중요한 매체로서 다가오고 있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 유튜브라는 공간에서의 성공은 어쩌면 유튜버로서의 성공이지 개그맨으로서의 성공이라 보기에는 콘텐츠적으로 아직 보여주는 성과들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유튜브가 일상의 웃음들을 꺼내놓음으로서 공개 코미디를 하던 개그맨들에게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로서 유튜브에 진출한 개그맨들이 대안적인 코미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은 잘만 활용하면 페스티벌 같은 전통적인 코미디 공연 방식 또한 살려낼 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몽트뢰 코미디 페스티벌이 글로벌한 코미디축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저변을 넓혔기 때문이었다. 유튜브 또한 개그맨들의 새로운 무대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을 공유하는 개개인들의 시도들만이 아니라, 좀 더 통합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대안적 무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고 집중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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