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과 사골의 경계 ‘게임, 뉴트로를 입다’ - 글 송세희 게임평론가

2017년, 한 게임사가 20년 전 출시했던 게임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픽과 음향을 업그레이드했고 한글화와 더빙 등의 편의 요소를 더해 재출시한 것이다. 원작의 게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출시를 감행했다. 그렇게 공개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전 세대 게이머들에게 다시금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처럼, 고전 명작 IP가 가진 파괴력을 보여준 한 사건이었다.

‘레전드’들의 이유 있는 귀환

요즘 국내 게임계의 화두는 ‘고전의 재발견’이다. 「워크래프트Ⅲ: 리포지드」,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바람의 나라: 연」 등 장르와 플랫폼을 막론하고 한때 게임계에서 정점을 찍었던 명작들이 새 옷을 입고 게이머들을 맞이한다. 3040세대는 어릴 적 추억으로, 1020세대는 새로운 타이틀로 이 게임들을 즐기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고전 재출시에 대한 많은 논의와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결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뉴트로 게임’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지고 있고, 또 그만큼의 물량이 앞으로도 예고된 상황이다.

왜 이러한 트렌드가 생겨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게임 개발 환경이 예전과 달라진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게임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2000년대만 하더라도 수많은 게임사가 막대한 투자금으로 대작 게임을 만드는 구조가 이뤄졌다. 대규모 개발 인력을 투입하여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시대였다.

이때 게이머에게 사랑받은 AAA급 타이틀과 이를 개발해낸 게임사는 살아남았지만 이외의 기업은 투자 실패로 인한 자금난을 겪으며 새로운 도전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에 성공했던 명작 게임을 다시 활용하는, 소위 ‘실패하지 않을 게임’의 개발로 이어졌다.

게임사 입장에서, 이미 한 번 출시했던 게임을 새로 포장해 출시하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다. 이미 대중에게 인정받은 스토리텔링과 게임성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신규 타이틀에 비하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효율성 측면에서도 월등히 유리하다. 추억의 게임이 다시 나온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쉬워 기존 팬은 물론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게임을 플레이해보기 때문이다. 특히 최신 그래픽으로 다시 꾸민 작품으로 시리즈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랜차이즈 전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임의 리모델링 - 리마스터

이렇게 재조명된 게임의 타이틀에는 리마스터, 리메이크, 리부트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다. 모두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세 수식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리마스터(Remaster)는 과거 게임을 현 세대 플랫폼의 성능에 맞춰 더 높은 해상도와 프레임으로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단어의 어원은 음반 매체에서 기인했다. LP나 테이프 등의 아날로그 형식이었던 마스터(원본)를 보정하여 CD나 DVD와 같은 디지털 포맷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했는데, 영화나 게임 등에서도 유사한 보정 작업이 시작되면서 폭넓게 쓰이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가장 유명하고 「커맨드 앤 컨커 리마스터 컬렉션」, 「헤일로: 더 마스터 치프 컬렉션」이나 PS4 버전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도 이에 해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콘솔을 통한 자체 리마스터링도 있다. Xbox One은 구세대 Xbox 게임이 호환되는데, ‘Xbox One X Enhanced ’ 기능으로 리마스터에 준하는 그래픽 및 프레임 향상을 구현해낸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워크래프트Ⅲ: 리포지드」의 ‘리포지드(Reforged)’도 리마스터와 동일한 의미로 보면 된다. 워크래프트 세계관 속에서 강철 제련소를 의미하는 ‘아이언 포지(Iron forge)’라는 이름에서 따온 리포지드(Reforged)는 워크래프트Ⅲ를 다시 제련했다는 마케팅 성향이 강한 단어다.

게임의 재건축 - 리메이크

리메이크(Remake)는 원작을 바탕으로 현세대 게임 엔진과 시스템, UI에 적합하게 다시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스토리나 세계관에 약간의 변주와 재해석을 가미하기도 하지만 전작의 향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새롭게 만들지는 않는다. 리마스터보다는 조금 더 공들여 ‘신작’의 느낌을 가미해 신규 유저의 유입까지 고려한 방편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의 예를 들면 1997년 출시한 원작을 기반으로 한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있다. 세계관이나 등장인물 등 기본 요소는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만 그래픽과 전투 시스템, UI, 컨트롤 등의 플레이 요소는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출시하자마자 단번에 PS4 타이틀 주간 판매량 1위를 달성한 이 게임은 33년간 이어온 ‘파이널 판티지 시리즈’의 명맥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게임으로 평가를 받았다.

게임의 재개발 - 리부트

다시 ‘시동(booting)’한다는 PC 용어에서 출발한 리부트(Reboot)는 보다 도전적으로 게임을 재개발한다. 이들 작품은 ‘A가 B를 때려잡는다’거나 ‘C가 D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정도의 원작 틀만 남겨놓고 완벽하게 다시 새로 만든다. 즉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세계관이나 주인공 설정 정도만 느슨하게 유지한 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1993년에 출시된 FPS의 바이블 「둠」이 2016년 동명의 타이틀로 리부트를 출시했고, ‘툼레이더 시리즈’도 2013년부터 리부트 작품을 출시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둠 슬레이어(둠가이)」나 「라라 크로프트」처럼 원작의 매력적인 캐릭터만 뿌리로 두고 게임을 완전히 새로 풀어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리부트는 리메이크만큼 자주 선택되는 방법은 아니다.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개발 부담은 오리지널 게임 개발 수준과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기존 게임의 장점만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흥행에 큰 도움이 된다. 기존 게임의 팬은 물론 새로운 유저의 유입도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 바람의나라 : 연

모바일 플랫폼으로 이식

전 세계 게임계에 리마스터·리메이크·리부트 등 ‘뉴트로’ 열풍이 부는 가운데,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진출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국내 주요 게임사는 PC 온라인게임을 모바일로 이식(Porting)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모바일 플랫폼에 적합하게 게임 엔진과 UI를 수정한 이식 버전은 크게 보면 리메이크와 유사한 개념이다. 현대적인 게임 시스템을 도입하지만 모바일 하드웨어 사양에 맞춰 그래픽은 원작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편의성은 극대화한 것이다.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연」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오리진」, 웹젠의 「뮤 아크엔젤」 등 이미 PC 온라인 게임으로 성공을 거둔 게임을 활용한 모바일 버전이 최근 잇달아 출시됐고, 현재 대다수의 뉴트로 게임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자체적인 IP가 부족한 게임사도 다양한 방법으로 뉴트로 감성에 접근하는 데 주력할 정도다. 조이시티, 이꼬르 등은 최근 「사무라이 쇼다운M」, 「더 킹오브 파이터즈 익스트림 매치」와 같은 90년대 오락실의 전성기 게임 IP를 활용해 게이머들에게 선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에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이 현재의 주요 소비층인 3040세대로 성장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전에 한창 즐겼던 게임이었기 때문에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기보다 기존 게임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는 점도 강점이다. 흥행작을 다시 출시하되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과 방법이 크게 달라진 만큼 게임도 모바일 플랫폼으로 진화한 셈이다.

ⓒ 리니지M
ⓒ 뮤 아크엔젤

수익을 위한 추억팔이는 위험

뉴트로 게임이 완전한 신작 개발보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뉴트로 게임이 게이머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리마스터는 개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지만, 단순한 그래픽 개선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골’처럼 또 우려먹는다는 비판을 받는 일도 많다. 블리자드의 경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큰 호응을 얻으며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워크래프트Ⅲ: 리포지드」의 경우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졌다. 출시 전 블리즈컨에서 공개했던 인게임 장면도 삭제됐고, 스토리 전달 과정도 원작 그대로의 ‘올드함’이 드러났다. 기술적으로도 완성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래픽 오류는 물론 프레임 저하, 각종 버그도 많았다. 메타스코어 92점을 기록했던 훌륭한 원작은 졸지에 메타스코어 59점이라는 졸작이 되었고, 유저 평점은 0.6점을 기록하며 역사상 최악의 리마스터 게임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리메이크와 리부트도 마찬가지다. 분명 대단한 IP를 기반으로 개발하므로 흥행성이 어느 정도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작의 명성이 높을수록 그만큼 부담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캡콤사의 「바이오하자드 2」의 리메이크인 「바이오하자드 RE:2」는 원작의 경험 여부에 국한하지 않고 거의 모든 게이머에게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같은 시스템으로 구현한 차기작 「바이오하자드 RE:3」는 원작 스토리의 축약으로 인한 낮은 개연성, 짧은 플레이 타임과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단조로운 연출 등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원작의 수정과 변형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는 리부트는 퀄리티에 따라 전체 IP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작만큼 상당한 투자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내 게임 업계도 우려스러운 상황이 여러 개 보인다. 온라인 게임 IP를 모바일로 이식하면서 모바일 게임 특유의 과금 논란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원작과 달리 과도한 과금 요소가 추가되면서 원작의 추억을 찾아왔던 유저들이 실망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뉴트로 게임을 ‘단순한 추억팔이’로 만들어 게임성을 훼손하고 수익만 생각한다는 비판이 많다.

새로움이 절실하다

뉴트로 게임이 당장의 성과를 이끌어 낼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새롭게 출시한다는 소식만으로도 게이머 사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게임사와 게이머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활용할 수 있는 IP도 한정돼 있을뿐더러, 현재 게임 스토리 트렌드와 시스템이 과거의 게임성과 부합되도록 보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일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은 초반에 크게 화제가 됐지만 결국 신규 유저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기존 IP를 소진하면서 신작 IP 개발 여력이 사라지게 되면 게임 업계 전반에 장기적인 침체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 과거 저질 양산 게임이 넘쳐난 바람에 게임 시장 전반이 괴멸될 뻔한 ‘아타리 쇼크’와 같은 불황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분명한 것은 고전 IP도 시작은 신작 게임이었다. 아무리 구관이 명관이라지만,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기 마련이다. 게이머의 욕구를 만족하게 할만한 ‘새로움’에 갈증을 느끼는 지금, 보다 참신한 신작 게임 출시 소식이 절실해지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