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방보다 ‘외전’ 본캐보다 ‘부캐’ - 글 노윤주 디센터 기자

경치 좋은 산골에 개그맨 이수근이 식당을 차렸다. 요리도 서빙도 설거지도 사장인 이수근 혼자 다 한다. 독특한 식당 구조와 턱없이 부족한 인력 그리고 복잡한 조리 과정의 메뉴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이수근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낸다. 이 특이한 식당의 이름은 바로 <나홀로 이식당>이다. 식당 이름이 익숙하다. <강식당>의 외전(스핀오프)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각 프로그램 세계관 잇는 유튜브 외전

각 방송사와 제작진이 유튜브를 통해 인기 프로그램의 외전을 선보이고 있다. ‘숏폼 외전’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본방송 하이라이트를 모아주거나 미방분을 특별 공개하는 형식에 그쳤지만 최근 들어 본방송 세계관 내에서 새로운 재미를 창출할 수 있는 외전 프로그램을 따로 제작하는 추세다. 모바일 콘텐츠 시대인 만큼 브라운관을 넘어 스마트폰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방송사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신서유기>, <삼시세끼>로 대표되는 나영석 사단은 ‘채널 십오야’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나영석 사단은 유튜브 숏폼 외전의 리더라는 별칭을 얻었다. 십오야 채널엔 방송 클립이 올라오기도 하고, 이식당과 같은 스핀오프 예능이 방영되기도 한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제외하고 대다수 영상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아이슬란드 간 세끼>, <라끼남>, <마포 멋쟁이>, <삼시네세끼>, <나홀로 이식당> 등의 외전에서는 신서유기 멤버들이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캐릭터를 극대화 시킨다. 한 번에 라면 6개를 먹는 육봉선생 강호동은 라면 끼리는(끓이는) 남자로,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피오와 민호는 마포 멋쟁이로 등장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올라오는 5~15분 분량의 콘텐츠이지만 유튜브 세대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아이돌인 민호, 피오가 진행한 마포 멋쟁이는 매 편마다 2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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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사단이 속한 tvN뿐 아니라 타 방송사들도 유튜브 외전을 만들기 바쁘다. 지난 7월에는 JTBC가 자사 인기 예능인 <아는형님>의 외전 <동동신기> 방영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메인 MC인 강호동이 신동과 함께 아이돌 안무를 배우러 다닌다. 학교 콘셉트를 가진 아는형님에 맞춰 동동신기는 방과 후 활동을 표방했다. 프로그램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선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도 결을 같이한다. 운동뚱은 코미디TV 간판 예능인 <맛있는 녀석들>의 외전이다. 코미디언 김민경이 웨이트, 종합격투기, 필라테스 등 다양한 운동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날씬해지는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해지는 데 초점을 맞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김민경은 “뚱뚱한 사람도 필라테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운동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시키면 뭐든 열심히 하는 그는 ‘근육량이 타고난 사람’이라는 뜻의 ‘근수저’ 별명을 얻었다.

유튜브 외전 인기에 스포츠 예능도 나섰다. 농구, 배구, 야구 등 각 스포츠 분야 레전드가 축구에 도전하는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뭉쳐야 찬다 외전_감독님이 보고 계셔 오싹한 과외>를 업로드하고 있다. 축구실력이 부족한 멤버들이 보충 수업을 받는 내용이다. 매회 달라지는 과외 선생님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일각에서는 하나둘 유튜브 외전을 내놓는 방송사의 움직임을 두고 “Z세대를 잡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했다. 1994~2003년생을 일컫는 Z세대는 유튜브 채널 의존도가 높다. 지난 2018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는 하루 평균 2시간 29분 동안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떤 채널이 없으면 일상이 가장 지루해질까?’라는 질문에 과반수에 가까운 44.5%가 ‘유튜브’라고 답하기도 했다.

유튜브 의존도는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높아졌다. 올해 6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진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 900명 중 57.2%는 “코로나 19로 인해 1인 크리에이터, 유튜버, BJ 영상 시청 빈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MZ세대는 1988년부터 2000년대 초반 생을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다.

MZ세대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한다. 동일한 조사에서 41.3%의 MZ 세대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직접 검색한다’고 밝혔다. 편성표에 따라 정해진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TV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더욱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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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와는 다른 ‘부캐’ 인기

이렇게 콘텐츠 소비 패턴이 변화하면서 ‘부캐의 전성시대’도 열리고 있다. 부캐란 ‘다음’ 혹은 ‘둘째’를 뜻하는 ‘부(副)’와 단어 ‘캐릭터’를 합친 신조어다. 반대로 원래 모습의 자기 자신은 ‘본(本)캐’라 부른다.

가장 처음 부캐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은 래퍼 마미손이다. 마미손은 고무장갑을 연상케 하는 골무 같은 핑크색 복면을 뒤집어쓰고 엠넷 <쇼미더머니> 오디션에 참가했다. 시청자들은 랩과 목소리만 듣고 마미손의 정체가 유명 래퍼 매드클라운임을 눈치 챘다. 그러나 마미손은 “나는 매드클라운이 아니다”라며 강력 부인했고, 매드클라운 역시 손사래를 쳤다. 여기에 시청자들도 동조하며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을 ‘모른 척’하는 현상이 놀이처럼 퍼졌다. 마미손 이후로는 부캐가 등장할 때마다 본캐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문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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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 열풍을 일으킨 것은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면서 매 미션마다 캐릭터를 갈아 끼웠다. 하피스트일 땐 ‘유르페우스’, 드러머일 땐 ‘유고스타’, 라면 끓이는 요리사일 땐 ‘라섹’으로 변신했다. 가장 유명한 부캐는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면서 만들었던 ‘유산슬’이다. 신인 트로트가수 설정의 유산슬은 국민 MC 유재석과는 철저히 다른 캐릭터로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등을 히트시키기도 했다. 유산슬은 2019년 MBC 연예 대상에서 신인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놀면 뭐하니의 부캐 만들기는 계속됐다. 최근에는 유재석, 비, 이효리 세 명이 그룹 ‘싹쓰리’를 결성하고 각자의 부캐를 설정했다. 유재석은 유두래곤, 비는 비룡, 이효리는 린다G다. 이 중 린다G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미용실 스태프로 일하다 성공해 미국 전 지역에 200개 매장을 운영하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콘셉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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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김신영의 부캐 ‘둘째이모 김다비’도 사랑받았다. 김다비는 철저한 캐릭터 설정이 돋보이는 부캐다. 1945년생 다비이모는 김신영의 둘째 이모로 백반집, 계곡산장 오리 백숙집을 운영했다. 특기는 킬힐 신고 약초캐기다. 회사 내 꼰대를 풍자하는 노래 ‘주라주라’를 발매하며 팬덤을 확보했다.

부캐는 현대인의 특징인 ‘멀티 페르소나’를 반영하는 트렌드다.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에 맞게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바꾸는 현대인의 특징을 뜻한다. 마치 배우가 여러 작품에서 다른 캐릭터로 변하는 것처럼 학교, 직장, 게임 등 각 상황에서 다른 태도를 보인다. 부캐 역시 한 인물이 계속 같은 캐릭터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설정에 따라 캐릭터를 색다르게 조형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게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다. 시청자들은 부캐가 등장하는 순간 그가 처한 상황에 더욱 몰입한다. 그의 본캐가 능숙한 베테랑 방송인이라는 사실은 잠시 잊고 말이다.

유튜브 외전과 부캐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콘텐츠 미디어 업계의 노력이다. 온라인 시대, 미디어 소비 트렌드도 빠르게 변화한다. 실시간 소통하는 1인 라이브 방송이 유행하다가 재밌게 편집된 유튜브 콘텐츠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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