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가 온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것이 주류가 될까?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물리적인 교류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SNS를 잇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메타버스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세컨드라이프의 등장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 미래에는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의 주류가 될 것이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지난 10월 온라인에서 열린 개발자 행사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는 이미 〈마인크래프트〉나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이 초기 단계의 메타버스 서비스라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많은 서비스가 메타버스의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뮤지션들이 가상세계에서 공연을 진행하면서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인터넷과 SNS를 잇는 차세대 서비스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타버스(metaverse)란 초월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용어로,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SF 소설가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1992년 발표한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에서 ‘아바타(Avatar)’라는 용어와 함께 처음 등장했다. 소설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 활동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발표 당시에는 잊혀졌으나 메타버스는 2000년대 초반 가상현실 서비스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가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컨드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활동까지 가능한 높은 자유도로 인기를 모았다. 당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의 가상공간에 진출했고,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메타버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대부터 모바일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세컨드라이프는 빠르게 추락했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디바이스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형태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기의 낮은 성능, 작은 화면으로는 메타버스를 구동하기 어려웠다. 대신 텍스트와 사진으로 빠르게 소통하는 SNS가 스마트폰 시대의 킬러 서비스가 되었다. 그렇게 메타버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 ⓒ 아마존

코로나19와 메타버스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오늘날 메타버스 개념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기술혁신이 크게 작용했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현실과 유사하게 구현하려면 그래픽, 통신, 클라우드, VR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5G를 비롯해 관련 기술들의 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면서 현실과 유사한 수준의 가상공간을 보다 낮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엔비디아 등 여러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메타버스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역시 메타버스에 대한 수요를 키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비대면 방식의 원격회의, 온라인강의 등 언택트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이제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대중들은 지난 1년 동안 이런 상황에 적응했다. 초기에는 비대면만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으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대중들의 욕구도 다양해졌다.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오프라인 공간과 유사한 경험을 하기를 원했고, 메타버스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강력한 도구였다. 메타버스는 글과 사진으로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타인과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다. 과거의 메타버스가 현실을 보완하는 ‘세컨드’ 공간 개념이었다면, 최근의 메타버스는 현실을 대체하는 ‘퍼스트’ 공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 세컨드라이프 ⓒ 린든랩

게임 ▶ 메타버스

메타버스가 빠르게 대중화되는 데는 디지털 게임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세컨드라이프〉는 가상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된 별도의 서비스였다. 자유도가 높아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탈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세컨드라이프〉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콘텐츠 자체가 지루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최근에는 기존에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있던 온라인 게임이 메타버스로 영역을 넓히는 추세다. 게임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 내부에서 이미 높은 수준의 가상공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픽게임즈에서 서비스하는 〈포트나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원래 플레이어들이 전투를 벌이는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이지만 전투 없이 친구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콘서트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파티 모드도 제공한다.

지난 4월 23일 〈포트나이트〉에서는 약 1,200만 명의 플레이어들이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를 감상했다. 에픽 게임즈에 따르면 매회 10분 공연에 총 5회로 구성된 버추얼 라이브 콘서트에 2,770만 명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하면서 게임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벤트가 되었다고 한다. 가상 세계의 공연장에서는 거대한 트래비스 스캇의 아바타가 랩을 했고, 그의 손짓에 따라 게임 속 지형이 변하는 등 현실 공연 못지않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관객들도 아바타로 뜨겁게 호응해 마치 진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뿐만 아니라 라이브에서 옷, 액션 피규어 등의 각종 굿즈를 판매하여 새로운 수익까지 창출했다. 방탄소년단 역시 올해 9월 26일 신곡 ‘Dynamite’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 메인 스테이지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온라인 공연을 진행한 셈이다. 공연과 함께 〈포트나이트〉의 게임 속 캐릭터가 BTS의 안무를 따라할 수 있는 스페셜 패키지도 판매했다.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열린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열린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 ⓒ 포트나이트

메타버스의 미래

닌텐도 스위치로 발매된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역시 코로나19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이자 메타버스 서비스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섬을 꾸미고, 타인의 섬을 방문하며, 경제생활도 한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를 현실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늘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활용해 선거운동을 했고, 유명 브랜드 마크제이콥스와 발렌티노는 자신들의 신상품을 게임 아이템으로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국내 메타버스 서비스로는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증강현실 아바타 앱 〈제페토〉가 있다. 사용자의 얼굴을 촬영해 손쉽게 아바타를 제작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출시한 지 2년 만에 글로벌 가입자 수 1억 8,000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그룹 ‘블랙핑크’가 〈제페토〉에서 사인회를 열었는데, 무려 4,60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해서 화제를 모았다.

넷마블 ⓒ 넷마블

메타버스 서비스는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면서 보다 현실적인 경제 세계를 구현하기도 한다. VR방식의 3차원 메타버스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는 부동산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현실 서비스로, 현실 세계와 유사하게 작동된다. 예를 들어 도심은 가격이 비싸고 외곽 지역은 저렴한 식이다. 이 가상공간의 부동산은 암호화 화폐를 통해 거래되며, 토지 소유권 역시 블록체인에 의해 기록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메타버스는 중요한 분기점을 맞았다. 5G와 VR 등의 기술 혁신이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의 기술 수용성이 대폭 향상되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듯이 미래에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메타버스 서비스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아니, 우리가 들어갈 것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후보 캐릭터.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후보 캐릭터. ⓒ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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