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4

메타버스와 K-이용자

글 김경일(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메타버스에서 또 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이용자들. 그중 한국 이용자들은 유난히 열심히 ‘노동’하고 ‘돈’을 벌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적 관점으로 본다면? -편집자 주

메타버스, 현실의 투영

메타버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이 단어가 이제는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최근 각계각층에서 인지심리학자인 필자에게 한국인 이용자들이 메타버스에서 다소 유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을 보내온다. 다양한 캐릭터에 사용자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메타버스 이용자의 심리적 측면에 관심을 두었다면 당연히 따르는 질문이다.

이용자들이 현실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향유하는 공간이 메타버스다. 그런데 반응을 살펴보면 이용자들의 메타버스가 점차 ‘메타(가상)’가 아닌 ‘현실’을 닮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한다. 예를 들어 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을 할 때, 유유자적 낚시하고 친구들과 교류하며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한국 이용자들은 채소를 재배하고 시세를 예측하며 돈을 버는 행동을 보인다. 현실 세계처럼 메타버스에서도 노동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다른 예로, 우리나라 게임 이용자 상당수가 역할을 수행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롤 플레잉 게임(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에 열광하는 것과는 달리, 해외 유저들은 목표를 해결하는 방식을 스스로 만드는 샌드박스 게임인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등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예전에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도 사용자들의 미니룸과 미니홈피가 현실 세계 방의 모습과 점차 비슷해졌다. 이로 인해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경량화된 형태를 지녀야 하는 모바일로의 진입을 주저했고, 결국 싸이월드의 도태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메타버스에서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결론을 간단히 내릴 수는 없다. 세상사가 단면만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선 한국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알아보자. 이를 통해 메타버스를 현실과 같이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측면을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지만 그간 연구되어온 한국인의 특징을 보면 재미있는 생각이 들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도 열심히 산다

한국인은 메타버스에서조차 진정 현실적일까? 사실 한국인의 현실 감각은 유난스럽기 이루 말할 데 없다. 외국 학자들이 농담으로 ‘한국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데 반도체 분야에서 전 세계 1등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할 정도니 말이다. 창조성과 별개로 한국인의 근면성실성은 외국 심리학자들뿐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오죽하면 ‘놀 때도 부지런한 사람은 한국인 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거리가 가장 먼 나라도 한국이고, 유럽에서 렌터카 평균 운행 거리가 가장 긴 사람들도 한국인이다. 몇 해 전 만났던 어느 유럽 심리학자는 ‘한국 사람들은 우리 유럽에 놀러 오면 복장만 관광객일 뿐, 행동은 완전 근로자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왜 그럴까?

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역할 및 생산량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다양한 신경과학 연구에 의해 이미 증명되었다. 신경전달물질은 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화학물질로,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심리적 경험을 유발한다. 그중 하나인 아난다마이드(Anandamide)가 생성되고 활동하면 행복감 혹은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 경험을 하게 된다. 명칭 자체가 즐거움, 기쁨, 혹은 행복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난다(ananda)에서 유래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난다마이드가 뇌에서 생산되는 양이 민족과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즉 타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낙천적인 성격이 타고난다는 것과 거의 동일시된다.

이 수치는 아프리카인에게서 대체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인에게서는 이 수치가 낮게 나타나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떨어진다. 즉 한국인은 낙천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뜻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낙천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불안해하지 않는 것? 그러한 측면은 대부분 결과 변인에 가깝다.

낙천성의 핵심은 ‘적게 가져도 쉽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비슷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져야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한국인은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과 같이 행동하지 않아서 때로 심리학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 A: 100만원 딸 확률 100%
게임 B: 100만원 딸 확률 89%, 500만원 딸 확률 10%, 꽝 1%

두 게임 중 하나를 할 수 있다. 두 개 모두 할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두 게임 중 하나를 오늘 할 수 있다면 어떤 게임이 마음에 드는가? 한국에서는 대부분(최소한 과반이) B를 선택한다. 외국 연구에서는 대부분 A를 선택한다. 이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순간에 모험하기를 싫어한다(즉, A를 선택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것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조망이론(prospect theory)’의 근간이기도 하다.

B를 훨씬 더 많이 선택한 한국인은 노벨상을 받은 이론도 따르지 않는 셈이 된다. 왜일까? 답은 이미 제시됐다. 500만원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많이 가져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욕심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메타버스라고 다를까.

욕심꾸러기라는 표현을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부정한 방법을 통한다면 잘못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래야 많이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인은 메타버스를 현실과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기보다는 메타버스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봐야 한다. 많이 가져야 하니 말이다. 현실 세계의 규칙대로, 거기서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질문이 따른다. 한국인들이 메타버스를 현실 세계처럼 만드는 행동을 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메타버스에서 보다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시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한국인의 이민에 대해 떠올려 보면 어떨까? 세계 각국 한국 교민이 일구어낸 땀과 성공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메타버스로 잠시 이민을 간 한국 사람들과도 같다.

안녕과 평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무언가 소망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동기이며, 둘째는 무언가 바라지 않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에 빠지지 않기 위한 동기다. 전자를 ‘접근 동기’, 후자를 ‘회피 동기’라고 부른다.

두 가지 행동 유발 동기 중 현재의 순간이든 혹은 삶의 전반이든지 간에 어느 것이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접근 동기가 강한 사람은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세상과 메시지를 좋아한다. 반면, 회피 동기가 강한 사람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태나 메시지를 선호한다.

재미있게도 한국 문화는 접근 동기보다 회피 동기가 더욱 강하고 대표적이다. 상당수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OO되지 않기 위해서’다. 다소 불편해도 즐거운 일이 많은 전원주택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재미가 없어도 안전한 아파트다. 교육의 목적도 21세기 미래 사회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이며, 심지어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도 따돌림이나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강한 회피 동기가 메타버스에서도 그대로 작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상당수 한국인들은 메타버스를 단순히 즐긴다고 말하기보다는 메타버스에서도 안녕감과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일 수 있다.

의미 있는 일

메타버스와 관련성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에게 직접 질문을 해봤다. 한국인들이 메타버스를 현실 세계처럼 만드는 경향이 진정 유난히 강한지 말이다. 자신 있게 그렇다 혹은 아니다를 답하는 사람은 없다. 학술적 검증은 이루어진 것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적 연구가 시대를 앞서간 적이 있었던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사후 해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최근 메타버스 내에서 한국 이용자들이 보이는 경향성이 과연 차별화된 특징인지 가정하고 제기되는 심리학적 변인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정보가 의외의 실마리가 되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지난 심리학 연구를 찾아봐도 결론은 한결같았다. 해본 일을 후회하는 경우보다 안 해봐서 후회한 경우가 더 많고 후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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