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트렌드 2

콘텐츠 기업은
왜 플랫폼이 되고자 할까?

글 이승훈(<플랫폼의 생각법> 저자, 가천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최근 하이브로 이름을 바꾼 빅히트가 네이버와 손잡고 새로운 플랫폼을 내놓기로 발표했다. 엔씨소프트도 콘텐츠와 디지털 플랫폼 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앞서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로서의 출발 신호를 울렸다. 플랫폼을 지향하는 콘텐츠 기업들의 이러한 행보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 편집자 주

새로운 시대의 경쟁
플랫폼 각축전

지난 1월, K팝 팬이라면 주목할 만한 뉴스 두 가지가 있었다. 네이버가 K팝 팬덤 플랫폼 위버스(Weverse)를 운영하는 하이브와 손을 잡는다는 소식과, 또 다른 K팝 팬덤 플랫폼인 유니버스(Universe)를 운영하는 엔씨소프트도 CJ ENM과 연내 합작법인을 설립할 예정임을 밝힌 것이 화제였다. 이러한 행보에 있어 경쟁 관계였던 네이버의 실시간 동영상 플랫폼 ‘V라이브’와 온라인 K팝 팬 커뮤니티 ‘위버스(Weverse)’가 합쳐져 또 하나의 플랫폼으로 거듭나려 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발표이다. 엔씨소프트와 CJ ENM의 합작법인 설립 역시 콘텐츠 및 디지털 플랫폼 분야의 사업 협력을 위한 것이라 말한다. 새로운 시대의 경쟁을 위한 합종연횡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영상 콘텐츠에서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경쟁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디즈니플러스, 워너미디어의 HBO Max, NBC Universal의 Peacock 등 전통 콘텐츠 강자들이 모두 자신의 OTT 서비스를 내놓고 경쟁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업계에 플랫폼 바람이 불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플랫폼이라는 용어는 워낙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필자는 플랫폼을 ‘양면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사업모델’이라고 정의한다.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를 대상으로,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디즈니플러스는 양면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이라기보다는 디즈니(공급자) 자신의 콘텐츠를 수요자 시장에 제공하는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 위버스 역시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본격적인 플랫폼이라 말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이 있다.

플랫폼이 준 공포
디즈니플러스의 탄생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이렇게 하고 있는가이다. 콘텐츠 제작사들이 왜 직접 유통으로 진출하고 있을까? 그건 바로 유통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콘텐츠의 유통을 장악해나가는 거대 플랫폼이 주는 ‘공포’에서 기인한다.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를 만들게 된 이유는 넷플릭스에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초반 좋은 협력관계였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디즈니 영화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매년 3억 달러를 벌고 있었다. 넷플릭스의 약진으로 VOD나 방송 매출이 점차 떨어지기는 했지만 넷플릭스는 여전히 좋은 파트너로서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2021년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 이름을 올린 후보작의 숫자를 보면 넷플릭스가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넷플릭스가 35개로 1등이고, 2등이 12개 아마존, 그리고 디즈니가 8개다. 공식적으로 디즈니는 영화라는 영역에서 넷플릭스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2억 명을 넘어섰고,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흐름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 공급자 중 하나에 머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디즈니로 하여금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끝내고 자기만의 디지털 유통채널인 디즈니플러스를 만들게 했다. 즉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주는 공포가 디즈니가 플랫폼을 지향하는 길로 몰아간 것이다.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말 출시 이후 벌써 1억 명이라는 가입자를 모았다. 그렇다고 해서 디즈니플러스가 플랫폼이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디즈니의 유통망이 기존 영화관과 유선 방송에서 디즈니플러스라는 OTT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는 픽사, 마블, 스타워즈, 디즈니 그리고 내셔널지오그래픽스라는 디즈니가 소유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즉 디즈니가 만들지 않은 다른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채널이 아니다. 디즈니는 본래 유통 사업자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넷플릭스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면서 플랫폼을 지향할지는 앞으로 살펴봐야 한다. 현재까지는 브랜드 스토어로서 자신이 가진 콘텐츠의 가치만 가지고도 충분히 규모 있는 고객을 모을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11월, 디즈니가 투자자 미팅에서 밝힌 6개 스튜디오별 콘텐츠 출시 계획을 살펴보면 이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이는 넷플릭스처럼 다양한 상품을 소싱해 파는 유통망으로서의 계획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브랜드 라인업을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디즈니가 본격적인 플랫폼으로 진화할지는 미정이다. 그러나 타 제작사의 콘텐츠를 구매해 디즈니플러스의 가입자 확보 및 경쟁력 유지를 도모하려는 시도가 단시일 내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팬덤을 위한 플랫폼으로
위버스의 도약

같은 맥락에서 위버스를 살펴보면, 디즈니와는 달리 플랫폼 지향성이 명확히 보인다. 첫째는 네이버의 V라이브와의 합병이다. 네이버는 태생적으로 포털 사업자이고 플랫폼 사업자다. V라이브 역시 스타와 팬들 사이에 소통의 통로를 만들어주는 플랫폼이다. 하이브가 갖고 있던 위버스가 거의 BTS만을 위해 존재하는 디즈니플러스였다면, 네이버의 V라이브는 유튜브와 유사한 플랫폼의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V라이브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진 스타가 BTS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네이버는 나름 냉철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하이브는 이 합병을 통해 ‘팬덤 커뮤니티 플랫폼’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했다. 이후 이타카 인수를 비롯해 YG와의 투자 및 협업 등의 행보를 보면, 플랫폼 성립을 위해 신규 콘텐츠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의 모습과 유사하다.

문제는 새로운 위버스를 많은 공급자들이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플랫폼으로 선택할 것인가에 있다.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와 같은 유사 플랫폼과의 경쟁도 있지만 이보다 중요한 상대는 유튜브이다. 스타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올리는 플랫폼으로 유튜브가 가진 현재의 장악력을 빼앗아오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타들은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팬 또는 잠재적 팬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을 당연히 선호한다. 비록 팬들을 위한 굿즈 판매나 실시간 채팅과 같은 팬덤 커뮤니티에 특화된 기능이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이 역시 유튜브가 채택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즉 위버스가 자신만의 콘텐츠 제공을 위한 채널이 아니라, 모든 팬덤을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BTS라는 콘텐츠에서의 성공을 뛰어 넘는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성공하는 플랫폼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디즈니플러스와 위버스의 공통점은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들이 플레이하는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점도 있다. 제작과 유통 간의 줄다리기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플랫폼 시대의 경쟁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고객을 장악하기 위한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 위버스가 플랫폼으로서의 진화를 통해 이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양면 시장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팬덤 커뮤니티의 공급자인 스타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도구의 설계가 필수적일 것이다. 이는 AR 또는 VR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온라인 공연일 수도 있고, 메타버스처럼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는 게임적 요소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경쟁자가 따라오기 전에 넷플릭스처럼 규모를 갖춰야 한다. 이 규모는 시장의 양면 모두를 말한다.

디즈니는 넷플릭스가 간 길을 따라 OTT시장에 뛰어들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정의하고 실험하면서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버스는 다르다. 이전에는 없었던 가상공간에서의 팬덤 관리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이브는 플랫폼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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