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CCA N 인터뷰 1

제주에는 검은 용이 산다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 강지온 감독

글 권라희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담긴 다큐멘터리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 현무암처럼 단단한 이 작품의 감독이 18세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은 두 귀로 듣고도 믿기 어려웠다. 사회적 가치 숏폼 영상 공모전 대상 수상자 강지온 감독을 만나 그가 발견한 가치와 그의 관점을 들어보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Q 사회적 가치 숏폼 영상 공모전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주의 본질과도 같은 제주 돌담과 밭담이 쌓을 사람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는데요.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다지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소식이 제게는 충격적이었거든요.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시각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발견한 것은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 아니라 위대한 자연유산이었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자연유산을 보호할 ‘휴먼 캐피털’마저 사라진다는 점이었어요. 작품 엔딩 자막에도 나오지만 지난 10년간 제주 밭담이 25%나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위기감이 이 작품을 만들도록 저를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제목 <Great Wall of Jeju>는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Great Wall of China에서 영감을 받아 제가 창작한 것인데요. 만리장성에 견줄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어요. <흑룡만리>는 한국어 버전의 제목이에요. 제주의 환경과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제주 밭담을 흑룡만리라고 부르거든요.

Q 이번 공모전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들었는데요. 제출한 기획안이 선정되면 현업에 있는 전문가에게 멘토링을 받으며 영상을 제작했다고요. 멘토는 누구였고 그 과정은 어땠나요? A 멘토는 한선옥 PD님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오랫동안 제작해 오신 PD님이세요. 작품의 큰 줄기와 흐름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불필요한 내용들을 세심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다만 멘토링 기간이 실질적으로는 2주 정도로 짧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아요. 더 배우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Q 처음 제출했던 기획안대로 최종 영상이 잘 만들어졌나요?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A 흑룡만리는 무대본(non-scripted)이 아니라 잘 짜여진 대본(scripted)으로 시작했어요.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계획에 따라 제작했기에 기획안 그대로 최종 영상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다만 인터뷰이가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자가격리 중인 분들이 많아 인터뷰 섭외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이요. 그중에 중국인 친구 ‘팀’이 제주 밭담을 만리장성과 비교해주는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는데, 섭외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Q 드론으로 촬영한 장면이 많아 보이는데, 원래 드론을 다룰 줄 알았나요? A 저는 장비에 대한 이해는 있어도 잘 다룰 줄은 모릅니다. 촬영을 잘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어요. 연출자는 전문가를 엮는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연주자들을 조율하듯이 말이죠. 다행히 드론을 잘 다루시는 배수연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 촬영 현장 Ⓒ강지온 감독

Q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스토리 전개 방식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는 애초부터 글로벌한 시각에서 영어 버전으로 제작하려고 구상한 작품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 다큐멘터리와 외국 다큐멘터리를 비교하며 분석해 봤지요.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봤는데 스토리의 힘이 강했습니다. 특히 <나의 문어 선생님>을 여러 번 곱씹어 봤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자전적 이야기 구조이지만 거대한 담론을 담고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Q 아쉬움이 남는 장면도 있을까요? A 태풍과 비바람을 훨씬 다이내믹하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촬영 기간 동안 비가 한 번밖에 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촬영이 완료되고 나서 태풍이 두 차례나 왔는데, 추가 촬영을 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을 정도였죠. 그리고 제주 밭담은 여름이 농한기여서 촬영 당시 밭에 심어진 작물들이 별로 없었어요. 봄에는 유채꽃이 많이 피고 가을에는 당근과 같은 여러 농작물들이 화려하게 심어져 있는데 그 장면을 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Q 촬영과 컷 편집 외에도 색보정, 음악, 나레이션, 자막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죠. A 종합 편집 및 녹음은 전문 팀에게 맡겨서 작업을 했고요. 제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음악 디자인이었습니다. 특히 저작권 프리된 음악들은 제 작품의 본질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음악을 삽입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내레이션이었는데요. 작품의 진정성을 위해 제가 직접 내레이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영어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렵지만 해냈네요.(웃음)

Q 엔딩 크레딧을 보니 제작에 참여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A 일단 같이 고생한 스태프부터 소개하는 것이 맞겠죠? 배수연 감독님께서 촬영과 드론을 맡아 주셨는데 메인 촬영을 하는 이틀 동안 새벽부터 너무 고생시켜드린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이로 참여해 준 데이비스, 브라운, 크랜웰, 한나가 있고요. 또, 제주의 사계를 전부 다 담을 수 없어 추가 영상이 필요했는데 쇼맨(SHOWMAN)이라고 불리는 유튜버께서 흔쾌히 영상 사용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프리젠터, 시나리오 그리고 감독으로 크레딧에 이름이 세 번이나 등장했네요. 너무 많이 등장했나요?(웃음)

Q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를 본 시청자가 어떤 생각 또는 감정을 느끼기를 기대하나요? A 제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는 본다는 것이고, 본다는 것은 발견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흔하디흔한 돌담이 아니라 위대한 자연유산이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이 가치를 시청자들이 같이 공감해 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Great Wall of Jeju(흑룡만리)> 촬영 현장 Ⓒ강지온 감독

관찰하고 기록하여 가치를 만들다

Q 평소 즐겨보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A 저는 강렬한 스토리나 세계관이 있는 웹툰이나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평소 다큐멘터리를 자주 챙겨보는데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씨스피라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Q 이전에도 콘텐츠를 만들어본 적 있나요? A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 제작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에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라는 세계화의 민낯을 담은 내용으로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기획 및 시놉시스 작업을 해놓은 것이 있는데요. 워낙 대작이고 1시간이 넘는 데다,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나라를 취재하기 어려워 실제로 제작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있다면 이후에 꼭 제작해 보고 싶습니다.

Q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점입니다. 관점이라는 것은 결국 제 철학과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아이디어의 기록(documentation)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평범한 아이디어지만 나중에 끄집어내보면 뛰어난 아이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서 자신의 관점을 나누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기록부터 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한 단계를 거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 또는 꼭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A 앞서 말씀드린 작품, 시나리오로 갖고 있는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를 꼭 영상으로 제작하고 싶습니다. 진로는 자연스럽게 찾아가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후 대학에 진학해서는 미디어경영을 전공하고 싶은데요. 두 가지 분야를 아우르면서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N

사회적 가치 숏폼 영상 공모전
숏폼 영상에 사회적 가치를 접목하여 특색 있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우수 숏폼 콘텐츠를 공유·확산하는데 목적이 있다. 2회째를 맞이했으며 올해는 제작 영상 품질 제고를 위해 공모전에 멘토링 지도 과정을 추가하여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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