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1

나는 늙어가도, 나의 콘텐츠는 새롭고 싱싱해야죠 에이앤이 네트웍스 코리아 이현숙 상무

글 노윤영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뉴미디어 콘텐츠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쏟아진다. 트렌드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에이앤이 네트웍스 코리아의 달라스튜디오는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네고왕>을 히트시키며 주목받았고, 2021 뉴미디어 콘텐츠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안았다. 스타 PD들이 즐비한 달라스튜디오지만, 그들 뒤에는 묵묵히 스튜디오를 총괄하는 ‘고수’가 있다. 그의 내공이 날카롭게, 때로는 명료하게 대중 속에 꽂힐수록 세계는 조금 더 활기 넘치는 곳으로 변해간다.

윈!윈!윈! 콘텐츠

Q 2021 뉴미디어 콘텐츠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에이앤이 네트웍스 코리아에서 디지털 스튜디오를 총괄하는 이현숙입니다. 에이앤이 네트웍스는 디즈니와 허스트(Hearst)에서 합작해 만든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에요. 2017년 10월 한국에 진출한 이후 초창기에는 히스토리와 라이프타임 채널 같은 콘텐츠 브랜드를 운영했는데, 본사의 정해진 브랜드만으로는 한국의 급변하는 디지털 시장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본사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2020년 7월 한국만의 디지털 브랜드 ‘달라스튜디오’를 런칭하게 됐죠. 저는 이 회사에서 히스토리 및 라이프타임 채널, 달라스튜디오의 디지털 브랜딩과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디지털 비즈니스 등을 맡고 있어요.

Q ‘달라스튜디오’라고 하면 역시 인기 유튜브 콘텐츠인 <네고왕>이 떠오릅니다. 2020년 7월 31일 첫 에피소드 공개 이래 시즌3까지 이어지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요. ‘네고(가격 협상을 뜻하는 은어)’라는 콘셉트의 콘텐츠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네고왕>을 기획한 고동완 전 CP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초창기에는 ‘해명하세요’라는 콘셉트였어요. 소비자들이 기업에 대해 궁금한 점, 세간에 떠도는 온갖 루머를 기반으로 직접 해당 기업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는 공감&정보 콘텐츠였죠. 그런데 기업 섭외가 쉽지 않았어요. 기업 입장에서는 루머나 부정적인 이슈를 직접 대면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죠. 소비자도 윈(win), 기업도 윈이 되는 구성을 생각해 보다가 지금의 ‘네고’ 콘셉트가 나왔어요. 소비자는 네고를 통해 원하는 정보와 혜택을 얻을 수 있어 윈, 기업은 대중친화적인 이미지를 얻어서 윈, 제작진은 소비자를 위해 싸우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물론 기업 협찬도 받을 수 있으니 역시 윈! 윈윈을 넘어서 윈윈윈 콘텐츠가 된 셈이에요.

Q 치킨, 아이스크림부터 미용실, 중고거래, 백화점, 세제 등 선정 기업 브랜드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시즌1 때는 유명 브랜드 위주였다면 시즌2 이후에는 중소 브랜드도 종종 나오더군요. A 전국 남녀노소가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는 아이템과 브랜드를 선정하려고 해요. 또한 소비자들의 의견을 듣고 기업을 만나기 때문에 시민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평소 많은 의견이 오가는 브랜드나 아이템을 고려하죠. 큰 브랜드뿐 아니라 중소 브랜드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작은 브랜드들의 참여가 늘었다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그만큼 고민을 잘 해결하고 있는 거겠죠.(웃음)

Q 지금까지 제작한 <네고왕>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A 모든 에피소드가 다 제 자식 같아서 무엇 하나 손꼽기는 어렵지만, 시즌1의 1화를 장식한 BBQ치킨 편 덕분에 <네고왕>의 정체성이 잘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 기업 모두에게 엄청난 윈윈 효과를 준 거죠. 당시 협업한 BBQ 마케팅 팀과는 지금도 돈독하게 지내요. 전우애 같은 게 생겼죠.

Q 최근 <네고왕>이 시즌3을 끝으로 종료되고, 장항준 감독이 진행을 맡는 <견적왕>이 런칭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A 달라스튜디오는 모든 콘텐츠를 ‘시즌제’로 운영해요. 유튜브 특성상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 콘텐츠 팬덤이 개인 팬덤화된다는 것은 모든 스튜디오의 고민일 거예요. 때문에 캐릭터의 힘을 넘어서 ‘포맷의 힘’으로 간다는 포부에서 시작된 실험이었죠. <네고왕>은 현재로선 시즌3의 예정된 회차를 모두 선보인 다음, 차기 시즌을 준비한다고 보면 됩니다. <견적왕>은 이 기간 동안 선보이는 신규 왕 시리즈인데, 이미 <네고왕> 방영 기간부터 기획해 진행하고 있었어요. 제목만 보면 <네고왕>처럼 가격 흥정이 예상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마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고민의 견적을 내주고 선택을 돕는 고민 상담 콘텐츠예요.

콘텐츠 덕후 출신의 프로 수발러

<네고왕> 시즌 1~3 Ⓒ달라스튜디오

Q 달라스튜디오에서 실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하시나요? A 히스토리, 라이프타임 채널에선 CP 역할이지만 달라스튜디오에서만큼은 ‘프로 수발러’를 맡고 있죠.(웃음)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워낙 쟁쟁한 분들을 모셔왔기에 크리에이티브는 PD들을 믿고 맡겨요. 그 유명한 <와썹맨>과 <워크맨>을 만들었던 팀이 모여 탄생한 슈퍼 군단이니까요. 다만 <네고왕>, <로또왕> 등 기업이 출연자로 참여하는 콘텐츠에는 제가 자연스럽게 기획과 제작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요. 기업이 단순한 PPL이 아닌 ‘중요한 출연자이자 주제’가 되기 때문이죠. 저는 주로 기업을 섭외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Q 처음부터 콘텐츠를 다루는 분은 아니었다죠? A 홍보·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4년 트위터(Twitter) 미디어팀 소속으로 한국의 정부/뉴스 파트너십을 총괄하며 미디어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고요. 거기서 현 에이앤이 네트웍스 코리아 소영선 대표님을 만난 덕분에, 2017년 함께 에이앤이 네트웍스 코리아에 합류하게 됐죠. 처음에는 마케팅 헤드 업무를 맡다가 웹예능 <뇌피셜>을 제작하면서 조금씩 콘텐츠 업무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이렇게 디지털 콘텐츠의 제작과 사업, 브랜딩을 모두 총괄하게 됐네요.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콘텐츠 덕후였어요. 홍보·마케팅 업무를 맡을 때도 자체 제작팀을 보유한 마케터로 활동했기에 그 변화가 자연스러웠죠.

Q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콘텐츠 제작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A 저처럼 다른 분야에 있다가 콘텐츠 분야로 오셔서 좋은 성과를 내는 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출연자와 제작자 구분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고요. 그리고 몇 년 전만 해도 ‘서브컬처’ 정도로만 치부되던 디지털 콘텐츠가 지금은 확실히 주류로 올라섰다는 점이 큰 변화예요.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요. 예를 들어 숏폼(short form)으로 제작된다 해도 들어가는 비용이나 노력, 시간은 롱폼 못지않거든요. 그런데 제작 환경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에요.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투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Q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공감이죠. 뉴미디어 콘텐츠는 특히 전 세계에서 시청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많이 생각해봐야 해요. 두 번째로는 시청자가 참여 가능한 콘텐츠인가 여부에요. <네고왕>이 인기를 얻었던 것도 결국 소비자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많은 시청자가 댓글과 구매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A 창의력과 치밀함은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디폴트값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패스한다면, 시대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는 ‘대중문화’잖아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현재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제작자와 그렇지 못한 제작자의 시선은 당연히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나는 늙어가도 나의 콘텐츠는 언제나 새롭고 싱싱하지 않을까요?

Q 하룻밤 새에도 트렌드가 달라지는 요즘입니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방법, 또는 트렌드를 이끄는 방법이 있다면? A 끊임없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콘셉트로 넘치도록 나오는 시대인지라 최대한 잘 챙겨보려고 해요. 바빠서 잠을 잘 못 자는 요즘에도 <D.P.>, <오징어 게임>,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등을 정주행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실검(실시간 검색어)’부터 확인하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Q 상무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지속 가능한 열정과 호기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까요? A 숏폼 콘텐츠 분야에서도 많은 제작자들이 콘텐츠의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도 강력한 BM(비즈니스 모델)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네고왕>의 성과가 그 가능성을 조금은 열어줬다고 생각해요. 그 가능성을 지렛대 삼아 이익률을 높이고 구조화해보는 게 앞으로의 숙제예요. 그러자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혹은 티켓 파워가 있는 숏폼 예능·숏폼 드라마 콘텐츠가 나와야겠죠. 그런 사례들을 만들어 길을 닦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정말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N

뉴미디어 콘텐츠상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 서비스된 우수 영상콘텐츠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미디어 사업자 및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포상함으로써 국내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활성화하고자 마련된 상으로 올해 4회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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