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1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격차

글 장민지(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콘텐츠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은 과연 창작자와 이용자에게 새로운 기회와 편리함만을 가져다주었을까. -편집자 주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일들이 줄어드는 급격한 생활환경의 변화는 인간의 일상을 전면적으로 바꿔놨는데, 대표적으로 디지털을 통해 백신 접종 예약을 진행해야 하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는 대신 집에서 디지털로 접속하여 개별적으로 수업을 듣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에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상이 이전과 급격하게 비대면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유독 콘텐츠산업에서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곤 한다. 이는 콘텐츠 이용에서의 디지털 전환이 이전부터 일정 부분 진행되어 왔기 때문으로, 코로나19 이전에도 대중은 디지털로 전환된 콘텐츠를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손쉽게 웹툰과 웹소설을 포함한 웹 콘텐츠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해왔고, 영화관에 가지 않더라도 OTT를 통해 집에서 그 주 개봉된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다양한 공연을 소비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초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대면 접촉을 줄여나가는 형태로 많은 분야의 콘텐츠 소비가 진행돼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콘텐츠 소비는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의 국면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콘텐츠산업은 콘텐츠 이용뿐만 아니라 생산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에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창작자의 삶에 디지털 전환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콘텐츠산업 분야에서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격차는 이제 콘텐츠 향유 소외나 서비스의 접근성 그 이상을 의미하고 있다.

콘텐츠산업에서의 디지털 격차

디지털 격차란 다분히 넓은 개념을 갖는다. 이론적으로 디지털 격차, 혹은 디지털 정보 격차란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정보통신기술의 활용 능력이 사회적 불평등의 다양한 요건으로 인하여 각 개인에게 차이를 일으키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 배제의 원인이 되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일컫는다(Van Dijk, 2005).1) 도시와 지역에 따른 디지털 격차뿐만 아니라, 경제적 소득이나 교육의 측면에서도 디지털 격차는 생성될 수 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디지털 전환에 있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공하고, 디지털 소외계층의 이용 활성화를 위해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혁신 초기에는 이를 보유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소수의 집단만이 기술을 활용하여 정보 접근과 이용이 가능하지만, 성숙 단계가 되면 많은 사람이 기술을 수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수에 보급될 수 있다는 게 디지털 격차의 소극적 해결 방안 중 하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 수준이나 경제적 요건, 지역과 성별 등의 다양한 사회·문화·경제적 요소에 따라 발생하는 디지털 격차가 커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보급되는 양상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다수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미디어 이용 수준이 균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송되는 정보량의 차이가 각기 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사회적으로 연계하는 능력도 각각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디지털 정보 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을 소유한 이용자들의 디지털 정보 획득 능력, 활용 능력, 사회적 연계 능력은 이용 주체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

콘텐츠산업 분야의 디지털 격차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뉴미디어 환경 변화로 인하여 일찍이 콘텐츠를 디지털로 생산해온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그리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등, 생산과 소비의 전반적 과정에 있어 디지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콘텐츠 생산 과정과 이용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콘텐츠산업, 그 중에서도 생산 영역에서의 디지털 격차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이미 이루어진 장르와 그렇지 못한, 혹은 전환이 불가능한 장르 간의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앞서 예로 들었던 웹툰, 웹소설과 같은 콘텐츠산업 분야들은 1인 창작자들이 많고 다수의 작업 과정이 디지털로 전환된 상태며, 콘텐츠 창작의 결과물도 디지털로 제공되거나 이용된다. 반면 공연 산업계는 사정이 다르다. 공연은 대면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콘텐츠산업이다. 코로나19 이후 기획사들은 대관을 진행하고도 실제로 공연을 올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연장 내 좌석 띄어 앉기로 수익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진행한 경우도 많았다. 공연은 라이브니스(liveness)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즉 매개 없이 바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고 발산되는 현장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장르의 특성은 콘텐츠산업에 있어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디지털 격차는 경제적 요소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대대적으로 자본을 투입하고 빠르게 디지털로 생산 과정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과 생산 과정이나 유통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할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기업은 결과적으로 콘텐츠 생산 능력 자체에 큰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디즈니의 2021년 신작인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코로나19로 인해 홈 스튜디오, 즉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과 같이 협업이 중요한 콘텐츠 장르의 특성상, 제작 과정이 재택근무로 전환 가능한 환경이 되려면 디지털 스튜디오 시스템 개발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환경, 디지털 보안 등 부차적인 요소의 경제적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은 그런 제작 방식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생산 과정을 전면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할 기술적·경제적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산성의 격차는 결국 대기업으로 콘텐츠 생산과 유통, 소비가 집중되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양산해낸다.

콘텐츠 이용에서의 디지털 격차 역시 중요한 문제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물리적 거리, 이동 등 대면적 콘텐츠 소비 장벽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 이용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소비환경의 변화는 이것이 가능한 주체와 그렇지 못한 주체를 분리하고 격차를 심화시킨다. 특히 콘텐츠 분야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콘텐츠 소비의 보편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주체로 하여금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콘텐츠 이용은 삶의 유지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가 사회적 참여나 관계를 확장하고, 사회적 자본 획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현대사회에서 콘텐츠 이용과 이로 인한 디지털 격차는 필수적인 삶의 요소일 수 있다. 젠킨스(Jenkins et al, 2009; 이숙정·육은희, 2014, 212쪽 재인용)2) 또한 디지털 리터러시를 사회적 도구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능력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콘텐츠 이용에 있어 디지털 전환은 이를 이용하는 주체, 성별, 세대,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격차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

격차 해소를 위한 첫 걸음

콘텐츠산업에서의 디지털 격차 해소의 핵심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다는 지점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콘텐츠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 격차와 소외를 줄이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이를 디지털 전환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지털 전환은 콘텐츠산업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환원 기능일 수 있다. 콘텐츠 생산의 측면에서는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의 디지털 전환과 새로운 문화 기술의 개발, 1인 창작자들과 중소기업, 대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동시에 콘텐츠 이용 측면에 있어 디지털 격차로 인해 소외된 계층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콘텐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운 콘텐츠 이용 주체들에게 디지털로 전환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이전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면 디지털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콘텐츠의 힘이며, 그 자체가 가진 가능성이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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