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2

스페셜 대담 ‘디지털 전환과 격차’

글 편집실

디지털 전환이란 AI·메타버스·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콘텐츠 제작·유통 방식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이용자 경험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장밋빛으로 그려지고 있는 새로운 미래로 가는 길에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알아보았다.

  • 모더레이터:

  • 송진 팀장(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

  • 패널:

  • 이용수 대표(아트라이선싱), 이창의 PD(MPMG), 지영균 차장(교보문고), 최재원 부사장(SAMG엔터테인먼트)

콘텐츠산업과 디지털 전환

  • 송 진

  • 콘텐츠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특히 기술 중심으로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과 겹치면서 소위 ‘앞당겨진 미래’라고 표현하듯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신가요?

  • 최재원

  • 요즘 느끼는 위기감은 이를테면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를 앞둔 공룡’ 같은 느낌이랄까요.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3D 애니메이션 회사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저희가 굉장히 디지털화돼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저희가 해오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는 렌더링이 끝나고 나면 콘텐츠를 재활용할 수도, 새롭게 만들 수도 없어요. 콘텐츠가 PDF처럼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3D든 2D든 애니메이션 자체의 속성은 굉장히 전통적인, 옛날에 손으로 그리던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계속 이런 방식으로 제작을 한다면 앞으로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사는 20년이 넘었고, 조직은 대부분 17~20년 이상 작업을해온 창작자들로 구성돼있다 보니 조직의 생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대표님이 강력하게 밀어붙이셔서 결국 언리얼 엔진 기반으로 제작 시스템을 전환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외주를 쳐내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R&D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만한 여력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 이용수

  • 디지털 전환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다양한 곳에 노출시킬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지요. 반면 가장 큰 단점은 유행 주기가 너무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 어느 정도 라이선싱이 활성화됐어요. 상품과 콘텐츠가 잘 맞는다고 판단되면 길게 보고 간 거죠. 그런데 요즘은 지금 당장 얼마나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만큼 빨리 잘 팔릴 것 같은지가 중요해진 거예요. 지속성이 없어졌어요.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오래 지속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하기 바쁘다고 할 수 있죠.

  • 이창의

  • 저희가 작년에 공연을 엄청 많이 취소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올해 공연 기획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준비를 하다가 또 직전에 무너진 것들이 올해도 몇십 개 됩니다. 이렇게 공연이 취소될 때마다 많은 분들이 “온라인 공연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정작 온라인 공연을 개최하면 “온라인 공연인데 꼭 돈을 받아야 되냐”고 하시더라고요.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에 비해 비용이 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온라인은 돈이 들지 않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려고 해도 사실 기대효과가 별로 없는 거죠.

  • 지영균

  • 저희 회사는 전통적으로 거의 40년 동안 종이책 유통만 해왔고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산업구조를 만들어왔습니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보완재일 뿐, 대체재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갑자기 온라인 트래픽이 증가하고,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을 역전해버린 겁니다. 전자책 매출도 30%, 40%씩 계속 증가하기 시작했고요. 문제는 우리 서버가 급증한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또 새로운 고객들이 웹툰과 웹소설을 보기위해 들어오는데 저희는 아직 이들을 수용할 준비가 안 돼있다 보니 결국 네이버나 카카오로 가버리더라고요. 디지털 콘텐츠 유통 시스템에 있어서는 네이버나 카카오와는 도저히 싸움이 안 되는 거죠.

    저희도 올해부터는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서 내부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물론 40년 동안 종이책만 유통하던 내부 인력과 저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유통하는 인력 사이에 약간의 괴리가 있긴 합니다만, 트래픽을 어떻게 분산시킬 건지, 어떤 뷰어를 사용할 것인지, 콘텐츠를 유통하는 CP사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건지 등 여러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벌어지는 격차

  • 송 진

  • 디지털 전환에 따른 여러 변화에 최적화된 기업이 있을 것이고 또는 자본력이 있어서 그 변화를 잘 쫓아가는 기업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자본력이 있어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내부적으로 몇십 년 동안 유지해온 관성이나 시스템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고요. 디지털 전환이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별 타격을 받지 않고 혹은 오히려 더 호황을 누리는 주체들이 있는가 하면 또 그 반대에서는 규모가 작아서 혹은 새롭게 변신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는 곳들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일종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최재원

  • 제일 큰 격차는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 간의 격차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 기업이 모든 데이터를 거의 다 독점하고 있죠. 그래도 유튜브는 데이터를 공유해주는 편인데요. 저희가 52부작 애니메이션을 업로드하면 유독 반응이 좋은 회차들이 있어요. 인기 있는 회차를 분석해보면 미묘한 공통점을 알아낼 수 있거든요. 작품 기획에 큰 도움이 되죠. 그런데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사람들이 콘텐츠를 얼마나 보는지, 어디에서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 이창의

  • 음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지극히 개인적인 산업인 것 같아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서 혼자 녹음부터 유통까지 다 할 수 있게 됐죠. 내 음악이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이건 변화된 환경에 적응을 ‘빨리’, ‘잘’ 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음악을 산업으로 보는 사람들과 예술적인 창작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고 있어요. 요즘 음악은 창작보다는 상품 개발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다르게 보면 그게 요즘 시대의 창작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시대가 바뀌면 거기에 맞춰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지영균

  • 대형 출판사와 중소형 출판사 간의 기술과 마인드 격차가 굉장히 큽니다. 대형 종합 출판사나 교육 출판사는 이미 디지털 전환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들이 기획·생산·유통하는 콘텐츠를 가지고 e북, 오디오북, 웹툰, 웹소설 등 2차 저작물을 지속적으로 발굴·유통했죠. 반면 중소형 출판사는 1차에서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생산과 유통에서 끝나고 있죠. 변화의 의지 자체가 없기도 하고, 시도한다고 해도 비용, 행정 절차, 저작권 등 법적 문제 등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반면 작은 출판사 중에도 이러한 변화를 잘 따라가는 곳들이 있는데요. 웹툰·웹소설 작가를 관리하고, 스토리의 방향을 제안하고, 편집해서 네이버나 카카오에 공급하는 거죠. 그렇게해서 한 달에 1억, 2억씩 벌기도 해요. 앞서 이창의 PD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이건 전통적인 방식의 콘텐츠 생산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개념의 출판인 거예요.

함께 성장하기 위해

  • 송 진

  • 오늘 말씀해 주신 부분 외에도 앞으로 여러 가지 차원의 격차가 생겨나는 지점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콘텐츠산업 생태계가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창의

  •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온라인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누가 온라인 공연을 해서 얼마를 벌었나에 더 주목하죠.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5~10년 내 거대한 플랫폼 몇 개만이 남아 모든 문화 산업을 좌지우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줘야 하는데, 진흥원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 이용수

  • 캐릭터는 요즘 유행하는 AR, VR, 메타버스 등의 기초 단계로서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을 1~2년 지켜보는 것만으로 수익성을 판단하는 대신 장기적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지영균

  • 예전에는 대하소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 한국 출판계에서는 대하소설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과거 출판사들은 작가를 식구처럼, 대하소설이 끝날 때까지 관리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자금 없이는 불가능해요. 대신 이제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자본을 가지고 작가를 관리하는데요. 콘텐츠 유행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 보니 인기 있는 작가를 영입하거나 에이전시를 인수했다가 1년 안에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기회를 더 이상 주지 않죠. 작가와 중소형 출판사가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적, 정책적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 최재원

  • 플랫폼 기업 규제나 그로 인해 피해 받는 작은 콘텐츠 업체들에 대한 구제책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데이터베이스의 공유 문제도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창작자나 업체가 자본시장이나 환경 변화와 친숙해질 수 있는 교육 지원 또는 기술 인프라 지원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송 진

  • 이용자 차원이 아닌 기업 간의 격차를 들여다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는데요. 디지털 기술이 다양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보다 잘 구현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생태계 전반의 격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희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콘텐츠산업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같이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어떤 부분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지 짚어보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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