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3

격차 해소를 위한 제언

글 한영주(EBS 뉴미디어프로젝트팀 연구위원)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적 위기는 전 세계 주요 산업들의 대규모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 중 하나는 바로 콘텐츠산업이다.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콘텐츠산업

콘텐츠산업은 게임, 방송 등 개별 콘텐츠에서 엔터테인먼트, 교육 및 학습, 공연, 관광, 스포츠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를 포괄하며 국내·외 시장 확대와 고부가가치 창출의 가능성으로 잠재적 가치가 높다. 특히 콘텐츠산업의 디지털 기술 발달과 대중적 소비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기존 콘텐츠 형식에서 벗어나 OTT, AR, VR 등 신기술이 접목된 서비스를 통해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온라인 가상세계로 확장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한층 더 고도화된 디지털 전환을 실행 중이다. 이처럼 콘텐츠산업은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과 함께 기획-제작-유통-소비로 이어지던 기존의 가치사슬과 사업 모델에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범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그 핵심 산업으로 콘텐츠산업을 주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2.0’을 통해 메타버스 생태계 조성에 2.6조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9년 9월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1)을 통해 정책금융 확대, 실감 콘텐츠 육성, 신한류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을 제시했고, 더 나아가 2020년 9월 뉴딜 정책과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여 ‘디지털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전략’2)에서는 비대면 콘텐츠 집중 육성, 차세대 콘텐츠 시장 개척, K콘텐츠의 세계적 경쟁력을 위한 정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정부 정책의 골자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춘 전반적인 콘텐츠산업의 혁신이다. 특히 다양한 제도 마련과 자금 지원으로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여 경제적 초석을 마련한다는 큰 포부를 담고 있다. 일례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가속과 장기화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 사업’과 ‘디지털 뉴딜’ 사업을 콘텐츠 분야의 중점 예산으로 편성했다.3) 아울러 영화, 대중음악(K팝), 게임, 방송영상 등 주요 콘텐츠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전보다 예산을 확대 편성하기도 했다.4)

반갑지만은 않은 디지털 전환

콘텐츠산업의 발전은 주로 메가트렌드, 주요 콘텐츠 분야, 대형 사업자가 주도하며 외연을 넓히는 것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진입하며 콘텐츠산업의 진흥과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산업 내 업종별, 지역별 불균형 성장과 창·제작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관행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새로운 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감에 덧붙여, 산업 내 생태계의 조화로운 발전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콘텐츠산업에서는 대형 플랫폼 기업과 중소 콘텐츠 기업 간의 구조와 관계, 신기술 적용과 활용에서 큰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대체로 중소 콘텐츠 기업은 트렌드에 민감한 이용자 취향에 맞게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한 대형 IT 플랫폼을 유통 매체로 선택한다. 콘텐츠의 유행 주기가 짧아지며 많은 사람에게 단시간에 효과적으로 노출하고 선택받는 것이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적의 사업 조건을 갖춘 대형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이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드백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변화된 환경에서 콘텐츠 IP 활용이 중요한 시기에 중소 콘텐츠 기업이 디지털 전환에 맞춘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한 중소 콘텐츠 기업에게 R&D 투자나 신기술을 도입하는 디지털 전환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제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비즈니스 프로세서 자체를 디지털 솔루션으로 바꿔야 하는데, XR, 메타버스, 클라우드와 같은 심화된 기술은 도입·유지·관리 측면에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새로운 디지털 툴에 대한 지식과 활용 능력 역시 단시간에 습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모두를 위한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콘텐츠산업의 격차는 장기적으로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 기업들의 시장 진입과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단발적 혹은 단기간에 제작비용만 지원하는 형태보다도, 전반적인 생태계의 안정성, 지속성, 형평성을 고려한 포괄적인 지원을 통해 사업체들이 시장에서 자생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 연계 정책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산업 내 격차를 방증하듯, 디지털 전환으로 많은 변화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콘텐츠 기업의 87.7%가 현행 사업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응답5)하며 변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자금 관리(자금조달 및 운용 등), 콘텐츠 기획과 제작 프로세스 효율화, 인력 확보 및 유지 관리 등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으며, 향후 금융, 세제 지원 강화,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의 개선 및 확대, 고용 유지 및 지원 강화 등에 대한 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에 더해 기본 업무 시스템을 디지털 솔루션으로 교체하기 위한 자금 지원, 솔루션 렌탈, 기술제휴 및 협업 정책도 고민해볼 수 있다. 창·제작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해 콘텐츠 업종별 특성과 시장 현황을 고려해서 그에 합당한 현장 중심의 기술 교육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기술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 생산을 위해 사업 방향에 맞는 전문 인력을 매칭하고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등을 최소화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기술 및 법적 자문,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해서 대형 플랫폼 기업으로 인해 중소 콘텐츠 기업이 콘텐츠 공급, 노출, 수익에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기업 간의 상생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의 협의체 구성에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은 물론, 여러 분야의 중소 콘텐츠 사업자들을 포함해 현실적인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콘텐츠 기업이 효율적인 디지털 전환을 시행할 수 있도록 플랫폼 사업자와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해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협업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한편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콘텐츠산업의 격차는 이용자의 향유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누구나 콘텐츠를 쉽고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서 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 소외 계층의 접근성은 떨어진다. 콘텐츠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또 다른 격차다. 특히 장애인 지원에 대해서는 전통 미디어 정책과 비슷하게 자막과 수어를 제공하는 정도에 그친다. 향후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장애인의 향유 방식을 고민하고 장애 종류와 수준에 따라 맞춤 지원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주민의 경우, 모국어 더빙과 한국어 자막을 동시에 지원하고, 노인에게는 새로운 콘텐츠 환경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 콘텐츠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장밋빛 기대감 이면에 존재할 수 있는 현실적 격차 발생을 인식하고 이를 보다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디지털 전환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려운 숙제이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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