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1

나의 프라임 세포는? 로커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김다희 감독

글 노윤영 사진 제공 스튜디오 드래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2015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인기리에 연재된 이동건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세포들과 함께 먹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평범한 유미의 이야기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조화 속에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졌다. 특히 이성세포, 불안세포, 출출세포, 집안일세포 등 한 인물의 내면에 담긴 다양한 감정들을 캐릭터화한 애니메이션 속 세포들의 인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귀여운 세포들을 탄생시킨 로커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김다희 감독을 만나보았다.

귀여운 게 최고야!

Q 최근 종영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원작이 인기 웹툰이었던 만큼 ‘2D 세포들을 3D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같은 우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처음 작업을 맡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A 저 역시 웹툰을 재미있게 본 애독자였기에 흥분됐고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면서 기대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두려운 마음이 더 커지더군요.

Q 하지만 우려와 달리 애니메이션 속 3D 세포들의 표현력과 생동감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애니메이션 파트를 극찬하는 댓글들이 많더군요. 세포 캐릭터를 만들며 특히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A 무엇보다 집중한 것은 ‘귀여움’입니다. 원작 세포들의 귀여움을 애니메이션에도 녹여내자는 목표를 가지고 캐릭터들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귀엽다며 좋은 반응을 보여주시니 우리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본 것 같아 뿌듯합니다.

Q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A 전체 호흡을 이끌어가는 드라마 감독님(이상엽 감독)께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연결 지점 역시 디렉팅을 해주셨어요. 작업 과정에서 우리 측 아이디어가 있을 때는 자유롭게 공유하며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고요.

Q 작품 자체가 어른들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 만큼,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하고 작업했다고 하죠.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표현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성인 타깃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정답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웹툰을 본 분들, 드라마를 지켜볼 시청자들에게 세포들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근하게 여겨지기를 바랐기에 세포 캐릭터들의 과장된 연기나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세포들의 외모가 아이처럼 귀엽게 보이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아이처럼 보이지 않도록 연출했죠.

Q 회당 평균 15분, 총 14회 분량이니 많은 작업량이 필요했을 듯합니다. A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마찬가지겠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다 보니 힘든 점이 있었어요.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항상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좋은 애니메이션을 뽑아내기 위해 모두 주야장천 고생이 많았어요. 물론 그 덕에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내며 <유미의 세포들>이란 멋진 드라마의 시즌1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극장

Q <유미의 세포들>이 감독님의 첫 연출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A 첫 작품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 원작을 훼손시킬까 봐 걱정과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좋은 걸 보니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 웹툰과 드라마는 물론 앞으로 나올 영화판 <유미의 세포들>도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Q 연출은 처음이지만 애니메이션 작업은 2012년부터 참여하셨다죠.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어릴 적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면서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언젠가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에 내가 있겠지’라는 막연한 확신 같은 게 있었죠.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여러 작품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고,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운 좋게 애니메이션 연출의 길에 들어서게 됐어요. 첫 연출이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훌륭한 작품이었으니 더 큰 행운을 만난 셈이네요.

Q 그동안 참여한 애니메이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참여했던 홍성호 감독님의 장편 애니메이션 <레드슈즈>(2019)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개봉 당시 극장에서 어린이 관객들 틈에 섞여 성우들의 더빙이 입혀진 작품을 보았는데, 당시 어린이는 물론 함께 온 부모님들까지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해 주셨어요. 주인공을 함께 응원하고 때론 박장대소하던 극장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날 <레드슈즈>는 제 인생에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을 선물해줬어요. 덕분에 제가 하는 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됐으니, 각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죠.

어른들도 쉬어갈 수 있는

감성세포 Ⓒ스튜디오 드래곤

Q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의 프라임 세포는 ‘사랑세포’였죠. 감독님의 프라임 세포는 무엇인가요? A ‘감성세포’입니다. 때로는 괴팍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소녀 같고, 가끔은 감성에 젖어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감성’이 저에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너무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런 풍부한 감정이나 상황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거든요.

Q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는 결국 ‘재미’입니다. 제가 만드는 장면들을 관객이나 시청자들도 좋아할지, 그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지 거듭 생각합니다.

Q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직에 계신 연출가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유미의 세포들>을 작업하면서 그런 제 생각에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거든요.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꾸준히 경청하고, 제 의견을 함께 공유하면서 만들어나가야 작품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Q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A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를 가장 좋아합니다. 작업하다가 한 번씩 쉬고 싶을 때마다 챙겨 보는 작품이에요.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레미(주인공 생쥐)의 모습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즐겁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힐링이 되기도 해요.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지만,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주인공 레미를 응원하다 보면 제 자신도 다시 ‘화이팅’을 외치게 된다는 점은 항상 같습니다. 그래서 <라따뚜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Q 앞으로 꼭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A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방송 이후 친구와 부모님은 물론 제 또래 분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좋은 반응은 처음이어서 저도 그전 작업과는 남다른 기분을 느꼈어요. 우리나라 성인들도 충분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확신이 생겼죠. 제가 몸담고 있는 로커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계획도 그렇지만, 저 또한 성인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아직도 존재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조금은 깨보고 싶습니다. 어른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끼고, 위로받으며 쉬어갈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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