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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마수트라] <프로테우스> 예술적인 게임 리뷰 세 가지
작성자 주형진 등록일 2013-05-10
출처 조회수 7475
첨부파일
  • 첨부파일 있음 6.proteus_a_trio_of_artisanal_game_reviews2.pdf

 

 

 

 

 

<프로테우스> 예술적인 게임 리뷰 세 가지

 

 


작성자: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
작성일: 2013 년 2 월 15 일

 

 


[<프로테우스> 1 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는가? 저명한 교수이자 개발자인 이언 보고스트는 이 글에서 그것이 게임인지 아닌지2에 대한 계속되는 논쟁3을 제쳐놓고서, <프로테우스>에 접근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세가지 시점에서 바라본 세가지 리뷰를 제시한다.]

 


첫째: 사람이 없다


비디오게임은 자아도취적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있을 때조차 당신과 관련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지옥 한가운데 놓인 스페이스 마린이고 감옥에서 풀려난 마피아 조직원이며 가방에 새 한 마리를 가지고 다니는 곰이고 무릎꿇고 기도하는 팀 티보(Tim Tebow)이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비디오게임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 즉 다른 사람의 탈을 쓴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도 게임을 한다.


영화와 텔레비전, 문학은 게임에서처럼 당신을 통제 안에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대신 등장인물이 당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면서 당신을 통제 밖에 둔다. 때때로 통제 안에 있는 것은 너무 쉽고 잘못될 가능성이 너무 많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의 이해할 수 없는 프랭크 언더우드(Frank Underwood)를 볼 때보다, <언차티드(Uncharted)>의 네이선 드레이크(Nathan Drake)를 턱에서 턱으로 조종하는 것이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동기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가? 만약 에이전시(agency)가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의 리 에버렛(Lee Everett)을 가족 약국 주변에서 마구 클릭해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면, 수동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리라.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제 1 의 또는 제 3 의 인간 캐릭터나 그것의 제유(堤喩)가 없는 게임도 여전히 “당신”과 관련되어 있다. <테트리스(Tetris)>나 <드롭 7(Drop7)>, <오스모스(Osmos)>에서 당신은 아무나가 아니다. 차라리 "당신"은 중요한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조종 가능한 세상을 통제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이 게임들은 당신이 종이나 매쉬드 포테이토 밖에서 재구성해야 할 수도 있는 게임이 아니지만, 만약 그것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할 수도 있다. 이 게임들은 비록 개발자는 아니지만 당신이 원동력이 되는 우주이다. 당신은 플레이어이며, 당신이 없다면 게임은 멈춰버릴 것이다.

 

<프로테우스(Proteus)>를 단순한 1 인칭 아트게임으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전통적인 키보드와 마우스로 천천히 살펴보는 걸로 시작한 다음 "점프"와 "발사" 같은 다른 동사들을 없애버리는 아트게임 말이다. 앉으면 바로 피튀기는 학살로 이어지는 다른 게임들에 손가락질 하는 것처럼, 여기에는 ‘앉아’ 라는 스페이스바 명령과 움직임만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내용을 근거로 <프로테우스>가 "게임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며 이 게임을 무시하고 목표와 선택, 승리, 플레이어를 사로잡는 것 같은 훌륭한 게임의 적절한 특성들에 대한 피곤한 열변을 시작한다. 이 사람들은 성공적으로 자극받았다. <프로테우스>는 자극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충분히 이행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테우스>가 "게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선택이나 도전을 충분히 제공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누구의 선택이나 도전이 맨 먼저 표현되는가이다.


<프로테우스>에 결여된 것은 게임플레이가 아니다. 차라리 결여된 것은 당신, 즉 게임에 참여하는 주체이다. 아니면 적어도 <프로테우스>에서 당신은 평소의 당신이 아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로딩된다. 처음에 당신은 보트나 어떤 배 같은 것에 올라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서 안개에 뒤덮인 섬이 나타난다. 당신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수평선은 당신의 움직임과 변화하는 지각에 맞춰 상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바다, 해변, 언덕, 산을 탐험하면서 이동하고 둘러본다.

 

그러나 보트는 없었다. 이것이 첫번째 단서일 것이다.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명백한 신호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 반전을 주는 뻔뻔스러운 힌트 말이다. 물과 육지에 침착하게 있으면서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유령. 소형 호버크래프트. 나사렛의 예수.


육지에 오르면 점점 더 이상해진다. <프로테우스>를 가로지르는 것은 익숙하고 진부하기까지 하다. 공간과 섬 자체가 아니라 횡단 말이다. 이동하고 둘러보는 일. 이건 전에 울펜슈타인 성(城) 안에서, Bobomb 전장에서, Rapture 에서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것은 없고, 어떤 것은 미묘하다. 다른 지형들은 구분없이 가로지를 수 있다. 언덕과 산 꼭대기들은 경사가 가파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부드럽고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우리는 멀리 눈 덮인 산을 보며 어떻게 꼭대기에 오를지를 궁리하게 된다. 그러나 산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케이블카에 탄 것처럼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당신의 계획은 불필요한 것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처음에는 실망하고 심지어 화가 난다. <프로테우스>의 제작자들은 어쩌면 더 복잡한 이동 시스템을 만들고, 기본 카메라 뷰를 1 인칭 컨트롤에 연결하는 대신에 환경안에 추상적인 커서를 채택하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나 서툴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분석도 잘못된 것이다. 작업이 불완전하거나 잘못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대신, <프로테우스>가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를 의미하고 그것과 상호작용(즉 <프로테우스> 왜 게임이 아닌지 비평하는 대신, 왜 그런 방식으로 있는지에 대한 믿을만한 이론을 만드는 것)하게 될 사람에게 도전을 제기한다고 생각해보라.


<프로테우스>에 "당신"은 없다. 적어도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섬 하나만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 섬에서 경험하는 것은 섬에서의 경험이 전혀 아니다. 그 대신 그것은 섬의 경험이다. 섬이 경험하는 것 말이다. <프로테우스>는 누군가로 존재하는 것과 관련된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섬이 되는 것과 관련된 게임이다.


섬은 무엇을 하는가? 인간이 보기에는 그리 많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섬은 수십만 년 이상의 해저 화산 활동으로 지각판의 방향이 고밀도의 고체 바위로 돌출되면서 형성된다. 하와이의 빅 아일랜드는 약 50 만 년 정도의 젊은 섬이다. 하와이-엠퍼러 해저 산열 중 가장 오래된 메이지 해산은 적어도 8 천만 년은 되었다.


<프로테우스>는 우리에게 지질학적 시간, 맨틀의 열점, 용암의 흐름과 순상지의 형성과 침식, 과학 교육을 분명하게 묘사해 준다. 이런 특성들은 사실 어쨌든 섬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섬의 형성과 관련된 것이다. 네이선 드레이크가 수정란에서 태아를 거쳐 신생아에 이르는 개체 발생 과정과 동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우스>는 가상의 추상적인 형성과 동일하지 않다.


"탐험"과 관련해서 이런 것은 게임의 영리한 자만이며, 당신이 <프로테우스>가 당신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어쨌든 당신이 게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속임수이다. <프로테우스>는 움직임과 시점의 변화, "앉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는 당신과 마주친다. 그러나 은유, 당신에게 제공되는 최소한의 필수 초대, 인간 플레이어, 섬으로서의 섬의 존재를 파악하는 수단이 되는 만족스러운 비유만이 있을 뿐이다.


제멋대로 배치된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3D 궤도는 부주의한 난잡해서 플레이어가 가상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반적인 방식과 같아진다. 사람들은 수목 공원을 탐험하는 것보다는 알몸을 탐험하는 사람처럼 <프로테우스>를 탐험한다. <프로테우스>를 통해 자신의 주의력을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의 주의력을 통해 <프로테우스>를 움직임으로써 탐험한다.


<프로테우스>에서 우리는 인간 주체의 개인적인 시간과 지각 변동의 역사적인 시간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낮과 밤이 지나간다기보다는 섬이 낮과 밤의 옷을 입는다. 밤이 섬에 찾아온다기보다 다람쥐가 뛰어다니거나 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섬이 밤으로 찾아온다. 제대로 어지럽혀놨다면 섬은 다른 계절의 옷을 입으면서 누그러질 것이다. 당신이 섬 주변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시간은 섬에서 흐르지 않는다. 감각이 느껴지기도 전에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건 영장류의 몸에 지나치게 묶여있는 당신 자신이다.

 

섬은 <미스트(Myst)>, <언차티드>,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비디오게임의 일반적인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섬이라는 환경이 훨씬 큰 역할을 담당하는 <파 크라이(Far Cry)> 같은 게임에서조차 섬은 여전히 당신을 위해, 즉 플레이되는 캐릭터인 당신을 위해 그리고 인간 플레이어인 당신을 위해 구현되어 있다. <프로테우스>의 섬은 당신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의력이나 기대와는 무관하다. 당신이 싫증을 느낄 때까지 그저 존재할 뿐이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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