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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2

코로나19와 언택트 방송, 그 시사점

제작 방식의 변화

글. 정덕현(평론가)

전 세계적인 감염의 공포를 낳은 코로나19는 방송가에 직격탄을 날렸다. 방송의 특성상 많은 인원이 모여 만들어가는 방식은 코로나19의 위험 속에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접촉으로 변해버린 방송 제작의 변화 그 득과 실 그리고 시사점은 뭘까.

언택트 방송의 모순

본래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 ‘집단(Mass)’의 의미가 들어있다. 방송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소설이나 시처럼 개인이 홀로 그 예술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 창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하나의 방송콘텐츠는 PD, 작가, 출연자와 방송 스텝들은 물론이고 관객들까지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

하지만 방송의 이런 집단 창작 시스템은 코로나19 같은 전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 앞에선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에서 찍는다 해도 꽤 많은 제작 인력과 출연자의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요즘처럼 야외 촬영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아예 촬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관객 동원이 방송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차지하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 같은 경우, 무관객 방송이라는 초유의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수다〉(MBC) 이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들만큼 객석에서 환호하고 눈물 흘리는 관객의 리액션이 갈수록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현재의 음악 프로그램들은 아쉽지만 어딘지 밋밋한 느낌의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일은 미스터트롯〉(TV조선)이 무려 35.7%(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내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무관객 결선을 치러야 했던 건 그래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또 〈씨름의 희열〉(KBS2)처럼 씨름이라는 민속스포츠를 오디션 형식으로 연출해내 호평을 받았던 프로그램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무관객 결승은 최종우승자에게조차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비대면, 비접촉을 유지하며 제작하는 이른바 ‘언택트 방송’은 그 자체로 모순된 면이 있다. 방송 자체가 함께 모여 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는데, 접촉을 하지 않은 채 방송을 제작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비대면, 무관객, 온라인…변화된 방송 제작

드라마 역시 많은 제작진이 현장에서 모여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떠들썩한 촬영장 분위기나 회식 문화 같은 건 자제되고, 촬영에 있어서도 필요한 인원들만 마스크를 쓴 채 투입되는 방식으로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다음 촬영을 기다리거나 식사를 하는 스텝들의 풍경도 달라졌다. 함께모여 수다를 떨던 풍경 대신 조용히 떨어져 앉아 제공된 도시락을 먹는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라는 것. 하지만 그래도 드라마 촬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건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여행 같은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고 또 일반인들과의 대민 접촉을 통한 소통을 중시해온 점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었다. 〈배틀트립〉(KBS2)이나 〈더 짠내투어〉(tvN) 같은 여행 프로그램들은 해외로 나갈 수 없어 국내로 대체되거나 아예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였다. 대민 접촉이 필수적인 〈백종원의 골목식당〉(SBS), 〈맛남의 광장〉(SBS) 같은 프로그램은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촬영되고 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tvN) 처럼 길거리 토크쇼를 지향하던 프로그램은 아예 스튜디오로 일반인 출연자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과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여겨졌던 음악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은 모두 무관객 방송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대안으로 출연자들이 관객을 대신하기도 하고, 아나운서 같은 방송사 관계자들을 관객으로 채우기도 하지만 그 빈자리는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목되는 건 이 변화를 적응해내 오히려 호응을 얻어내는 프로그램들도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사랑의 콜센타〉(TV조선)는 〈미스터트롯〉 톱7을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전화 연결’이라는 다소 복고적이지만 비대면 콘셉트를 더함으로써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트롯신이 떴다〉(SBS)는 애초 해외에서 벌이는 트로트 버스킹이 콘셉트였지만 코로나19로 불가능해지자 특별히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의 관객들과 만나는 랜선 콘서트를 시도했다. 〈놀면 뭐하니?〉(MBC)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어려움에 처한 공연계와 손잡고 ‘방구석 콘서트’를 시도해 호평을 받았고, 〈삼시세끼 어촌편5〉(tvN)는 아예 무인도로 들어가 촬영을 함으로써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청자들을 힐링시켰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조는 가능할까

방송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제작발표회와 기자간담회는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작진과 기자들이 모여 질의 응답하던 제작발표회는, 사전에 기자들에게 서면으로 질문을 받아 놓고 제작진과 배우가 온라인으로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기자간담회도 미리 정해진 시간별로 기자들이 배우나 제작진과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렇게 온라인화 된 제작발표회와 기자간담회는 그 장단점이 분명하다. 보다 쉽게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점은 온라인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소통에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관심을 가진 일반 대중들까지 포함하고 있어 홍보의 관점에서 보면 더 효과적이라는 업계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단점 역시 분명하다. 직접 대면을 통해 나누는 소통은 훨씬 더 현장감이 살아있고 진솔한 이야기들이 가능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소통은 아무래도 그런 쌍방향 소통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제작진들이 나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들어가는 일방향 소통에 그칠 소지도 다분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강제적으로 시도하게 된 이러한 언택트 방송의 경험은 나름 의미가 있다. 즉,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방식을 추구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수 있다. 모든 걸 온라인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온라인으로 해도 되는 걸 오프라인으로 할 필요 역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가 이 상황에서 경험했던 온라인 비대면 방송의 효용성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물론 관객과 함께 해야만 더 효과적인 방송 프로그램들이야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게 맞겠지만, 그럼에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관객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공조 역시 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됐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언택트 사회’는 디지털화하는 우리네 사회가 맞이할 미래일 수밖에 없다. 물론 ‘언택트 사회’라고 해서 모든 소통을 비대면, 비접촉으로 하는 사회를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직접 대면보다는 모바일 등을 통한 소통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직접 대면을 하는 보다 합리적인 사회를 말할 뿐이다. 코로나19는 그래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언택트 사회를 좀 더 빨리 우리 앞에 끌어다 놓았다.

지금껏 직접 대면만이 유일한 방식이라 고집했던 방송 제작도 이제는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기존의 오프라인 방식에서 반드시 필요한 직접 소통의 부분을 극대화하는 대신, 불합리한 부분들을 과감히 제거해 온라인과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제작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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