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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앞에서 보여준 선한 영향력, 상생 예능

글. 배진아(공주대 영상학과 교수)

고3 학생들은 수험생이어서, 지역의 작은 식당 주인은 손님을 잃어서, 공연을 하는 문화인들은 무대를 잃어서,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그동안 당연하게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 왔다. 집안에 갇힌 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상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건, 리모컨 버튼 하나로 간편하게 재미와 즐거움, 힐링의 시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방송콘텐츠가 아닐까?

힘든 일상을 함께 한 예능 콘텐츠

TV 시청은 가장 저렴하면서도 편리하게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단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유료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방송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방송콘텐츠 이용 시간이 증가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이 지난 2월 말에 실시한 ‘코로나19 여파로 달라진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주로 하는 일이 ‘TV 보기’라는 응답이 71.1%에 달했다.

  •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달라진 우리 라이프스타일’ 설문조사 (2월)
    TV 보기 : 71.08%
    유튜브 : 67.65%
    독서 : 66.18%
    인터넷 쇼핑 : 51.47%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달라진 우리 라이프스타일’ 설문조사〉 재구성

    출처 :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홈페이지

드라마, 다큐멘터리, 시사뉴스 등 모든 장르의 콘텐츠가 그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볍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단연 예능이다. 이를 반영하듯 예능 콘텐츠의 시청률은 확진자 증가에 따라 상승하고(2월) 확진자 감소와 함께 하락하는(5월) 추세를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힘든 시간을 예능 콘텐츠가 함께 했던 것이다.

예능 콘텐츠 제작진에게도 닥쳐온 위기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예능 콘텐츠 제작진들도 코로나19의 위기 앞에서 고군분투했다. 해외여행을 테마로 하는 〈더 짠내투어〉(tvN)와 〈배틀트립〉(KBS2)은 결방이나 종방을 택했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평범한 저녁 한 끼를 나누는 〈한끼줍쇼〉(JTBC)와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날아라 슛돌이〉(KBS2)도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기간 내내 감염 위험 때문에 촬영을 중단했다. 방청객의 선택으로 승자가 결정되는 포맷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MBC)은 방청객 없이 진행하는 대신 연예인 평가단의 숫자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으며,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KBS2) 역시 방청객 없이 스페셜 판정단을 만들어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상생 예능으로 답하다

예능 콘텐츠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코로나19의 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에 정면으로 직면하여 이를 헤쳐나간 예능 콘텐츠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단연코 코로나19라는 점을 반영하여 코로나19 사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코로나19로 인해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기획을 선보였던 예능 콘텐츠들이다. 여러 예능 콘텐츠들이 코로나19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반영했지만, 그중에서도 〈놀면 뭐하니?〉(MBC)와 〈맛남의 광장〉(SBS),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은 단연 빛났다.

〈놀면 뭐하니?〉 방구석 콘서트

〈놀면 뭐하니〉는 포맷의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예능이다. 카메라를 전달하는 ‘릴레이 카메라’에서 시작해서 유재석을 유산슬로 데뷔 시킨 ‘뽕포유’, 토크쇼 느낌의 ‘인생라면’ 등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그때 그때 포맷이 자유자재로 변한다. 확진자가 한창 증가하던 시기에 방송 되었던 ‘방구석 콘서트’는 자유로운 포맷의 특성을 살려 코로나19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한 기획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종 문화 공연을 누리지 못하는 시청자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의 기회를 잃어버린 문화예술인들에게는 공연할 수 있는 멋진 무대를 선물했다. 장범준, 지코, 이승환, 혁오, 잔나비 등 유명인들의 콘서트 공연 뿐 아니라 〈맘마미아〉, 〈빨래〉와 같은 뮤지컬 공연,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까지 다양한 기획으로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왔던 퍼포먼스를 큰 무대에서 멋지게 펼쳐 보였고, 시청자들은 현장에서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특히 국내 창작뮤지컬 〈빨래〉는 지금의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내용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말 그대로 상생과 힐링의 시간이었다.

〈놀면 뭐하니?〉가 이처럼 재미와 더불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진정성과 소통의 의지 덕분이다. 포맷이 없는 것이 포맷이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프로그램이지만, 진정성을 추구하는 마음과 동시에 우리 사회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고자 하는 휴머니즘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획이 아니었을까?

〈맛남의 광장〉, 지역 생산자 살리기

〈맛남의 광장〉은 코로나19 사태와는 별개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상생’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하여 신메뉴를 개발한 후 이를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항, 기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만남의 장소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어려움을 겪는 지역 농민들을 격려하고 지역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한다는 취지다.

〈맛남의 광장〉의 기획 의도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더욱 빛을 발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생산자들을 돕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농산물의 수급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농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금치, 대파, 열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시금치 덮밥, 대파 페이스트리, 열무 꽁치조림 등 창의적이고 먹음직스러운 메뉴들을 탄생시켰다. 생산자들에게는 농산물 판매의 기회를 확대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메뉴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얻는 재미와 즐거움은 덤이다. 〈놀면 뭐하니?〉가 코로나 위기 앞에서 자유로운 변신을 통해 상생을 추구했다면, 〈맛남의 광장〉의 경우 상생이라는 본래의 기획의도가 코로나 위기 앞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전사들(worriers)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토크와 퀴즈를 통해 길 위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로 나서기 힘들어지자 실내 토크, 영상 토크 등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는 ‘전사들(worriers)’ 편이다. 코로나 맵 개발자가 출연해서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 모두를 위해 앱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소식을 전하면서 서로를 응원했다.

특히 대구 경북 지역에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을 화상으로 연결하여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은 큰 감동을 주었다. 자원해서 대구로 내려간 의료진들, 임관하자마자 대구로 파견된 간호장교, 현장을 책임지는 젊은 의사, 그밖에 코로나19와 전면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씩씩하게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자원봉사 의료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진행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울었다. 우리가 힘들게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이 소중한 일상을 가능하게 해준 우리 시대의 영웅들과 진지하게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서로 위로하고 북돋우며 다 같이 함께 잘 살아 간다’는 상생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공익적 오락 콘텐츠의 진화

1990년대 초반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가 방송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 느낌표〉(MBC)와 〈칭찬합시다〉(MBC)가 그 대표 주자였는데, ‘공익적 오락’이라는 단어에는 예능 콘텐츠에도 재미와 더불어 유익함, 사회적 의미 같은 공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락은 오락답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공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공익적 오락’ 콘텐츠는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기 때문에 예능 콘텐츠의 트렌드를 만들어 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예능 콘텐츠 제작진들의 DNA에는 ‘공익적 오락’이 각인되어 있는 걸까? 코로나19 위기를 웃음과 눈물과 위로와 감동으로 함께 한 예능 콘텐츠를 되돌아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무의미한 재미와 즐거움은 공허하지만, 공감과 위로가 담긴 웃음은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 예능 콘텐츠는 가장 손쉽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선택이지만, 단순히 웃음을 주는 것을 넘어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위로와 감동이 담긴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과거에 이러한 공감을 ‘공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면 이제 그것은 상생, 소통, 선한 영향력으로 표현된다.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눈부신 창의력을 발휘하여 상생과 소통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예능 콘텐츠들이 코로나19 이후에도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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