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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2

제작사가 맞이하는 OTT 시대

The Era of OTT, Owe to Avoid Error

글. 홍일한(HB엔터테인먼트 이사), 김유나(HB엔터테인먼트 콘텐츠사업기획팀장)

변화와 혁신으로 찾아온 사건들이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되고, 그러한 진보들이 거듭 쌓이면 인간사의 발전으로 나타난다. 과거 미디어를 보면 TV의 출현과 기록물의 발전이 그러했고, 인터넷의 연결과 공유의 시작이 그러했으며, 스마트폰의 등장과 디지털 생태계의 탄생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OTT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세에 이른 OTT와 더불어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제작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본 고에서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사’를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OTT 시대의 도래와 변화

우리가 느끼는 거대한 변화는 갑자기 시작된 것 같지만 기실 우리 주위에 머물던 어떤 현상으로부터 출발한 흐름이 격류를 지나 마침내 대세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수립과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기보다, 그 출현을 알리는 여러 신호와 소음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 넘쳐나는 신호들을 마주하다 보면 잡음과 정보의 구분이 흐릿해져 자칫 오류에 빠진 채 잘못된 의사결정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과거의 신호와 소음이 어떠했든 간에 콘텐츠 생태계의 참여자들은 이제 OTT라는 대세를 맞이하여 수많은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오류를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가용한 자원은 한정적이다. 이럴 때일수록 업의 본질과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구분하여 필요한 조치와 수행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물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상이하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공통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구축된 편성, VOD, 해외 판매에 이르는 콘텐츠 가치사슬을 이제는 OTT가 통합 점유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의 시장 질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통 창구로서 글로벌 OTT의 확산은 전 세계에 콘텐츠를 동시공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이를 통해 한국 콘텐츠산업도 발전 계기를 맞게 되었지만 동시에 제작사들의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 역시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사 실적 저하로 드라마 편성 물량이 감소됨에 따라 제작사들에게는 OTT를 통한 콘텐츠 공급이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음에도, 특정 플랫폼이 수급할 수 있는 작품 수는 한계가 있고 제작 확대에 대한 안팎의 기대치는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작 업계는 여러 글로벌 OTT의 한국 진출 및 파트너십 등 유통 경로의 다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플랫폼이나 유통 채널의 확장은 제작사에서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최근에는 오리지널 IP를 보유한 게임, 웹툰, 소설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자들이 IP의 영상화 확장을 꾀하며 협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게임 IP 〈크로스파이어〉를 활용해 만든 드라마 〈천월화선〉은 중국에서 방영된 지 4주 만에 10억 뷰를 가뿐히 넘겼고,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사 크래프톤은 제작사 히든시퀀스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등 관련 업계도 본격적인 확장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작사는 기존의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검토뿐 아니라, IP로서 가치를 지닌 모든 영역의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 영역을 넓혀야 하는 과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제작사의 고민과 도전

이러한 환경 속에 안주할 수 없는 제작사들은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에 변주를 가함으로써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하는 중이다. 형식적으로는 70분 분량 16부작이라는 일반적인 미니시리즈 포맷을 탈피하여 회당 10분에서 30분에 이르는 숏폼, 미드폼 드라마들이 등장했다. 내용적인 변화는 더 혁신적이다. 심의에서 자유로운 만큼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포용할 수 있게 됐고, 과감한 연출이나 거침없는 사회 풍자가 가능해진 덕이다. 이야기 소재가 고갈되고 서사 구조마저도 고착화 단계에 이르렀던 만큼,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소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어 OTT에서만 방영된 드라마 〈킹덤〉과 〈인간수업〉은 기성 채널에서 방송되기 어려운 소재와 표현 수위를 활용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제도적 절차와 규정이 미비한 현재의 기준으로 OTT의 개념과 범주를 섣불리 재단하고 정의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정부부처에서 OTT의 관리감독을 위한 입법과 행정 절차 마련을 고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업계에서는 명확한 기준을 잡지 못한 채 회색 영역에서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OTT에 적용되는 제작, 방영 기준이 가까운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길게는 수년까지 소요되는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도 제도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정리되지 않은 변화와 상황 속에 제작사들도 많은 고민을 떠안게 됐다. 업력과 전문성을 갖춘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과 형식을 고수해야 할 것인지, 대중성을 인정받는 특정 장르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시도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시원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 속에 맞닥뜨린 변화의 수위와 범위에 대한 고민들이다. 제작 환경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가 등장했고 이에 대처할 각자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제작사에게 주어진 큰 숙제일 것이다. 다만, 변수 자체에 몰입하여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변수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작의 본질이 크게 변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러한 변수들만이 제작의 최우선순위에 놓인다면 오류에 빠질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결국 제작사들이 지향하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달이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IP를 기획하고 현시대에 맞는 화법으로 구현하여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가치를 담는다. 따라서 드라마든, 영화든, 게임이든, 이야기의 향유는 결국 유희의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욕망하는, 즐거움에 대한 탐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가능성의 장이 열린 지금이야말로 이 시대 향유자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어떤 이야기로 그 욕망에 대한 동참을 끌어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나아가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산업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디지털화에 따라 콘텐츠 생태계의 변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 영역이 계속 확장되면서 한국 콘텐츠가 세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금, 어찌 보면 우리는 한국 콘텐츠 사(史)에 있어 새로운 황금시대의 시작점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고 다변화된 현재의 시간 속에, 정책과 산업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새롭게 생겨날 것이고, 산업 현장의 기업들은 새롭게 탄생할 규칙 안에서 시장을 재정의 하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딛고 있는 땅은 이곳, 바라보아야 할 시장은 세계. 한국발(發) 글로벌 슈퍼 IP 시대의 도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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