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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는 옛말? 중장년층을 향하는 TV 예능가

글. 이정현(연합뉴스 기자)

‘2049’. 20~49세 시청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광고주들에게나 방송 관계자들에게나 주요 판단 지표로 익숙하다. 그러나 최근 TV 예능 트렌드를 보면 ‘3059’ 정도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셀러브리티 부부 관찰부터 중장년 로맨스, 트로트, 웰빙, 자녀 교육, 부동산까지 중장년 시청자를 위한 예능이 주류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젊은 시청자들이 TV에서 OTT 서비스로 옮겨가는 경우가 늘면서, 방송사 차원에서도 안정된 시청률과 구매력까지 보장할 수 있는 중장년층을 노리는 게 현실적인 전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들은 미래 TV 방송 시장 주 시청자의 변화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쏟아지는 중장년 대상 예능, 장르도 다변화

몇 년 전만 해도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예능은 마이너 장르였다. 주로 공영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 비(非)프라임타임에 방송했으며, 시청률도 미미했다. 세부 장르 역시 건강 정보 제공이나 낚시 등 웰빙·레저에 국한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장년 대상 예능이 메이저 장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량 공세도 엄청나고, 장르도 세분화됐다. 프로그램 주인공들이 중장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중장년 타깃 예능 장르를 굵직하게 나눠보면 셀러브리티 부부 관찰 예능, 중장년 연애 리얼리티, 트로트를 위주로 한 음악 경연, 스포츠 레저와 자녀 교육, 부동산 등으로 정리된다. 한창 사회 활동을 하는 중장년층인 만큼 관심사 역시 다양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먼저 스타 부부 관찰 예능은 최근 전성기를 맞은 트로트 장르만큼이나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방송 4년 차에 접어들며 스타 부부 예능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SBS)은 캐스팅을 통해 신선함을 유지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알콩달콩한 신혼뿐 아니라 유산 경험 등 아픔을 통해 더욱 결속하는 사례, 재혼 후 노력 끝에 화합을 이루는 사례 등 여러 부부 상(像)을 조명하며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중커플인 함소원-천화(陳華) 부부로 늘 화제 몰이의 선봉장에 선 〈아내의 맛〉(TV조선)도 방송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화요일 예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스타 부부 예능은 ‘독한 맛’으로 무장하는 게 트렌드라 눈길을 끈다. 지난 7월부터 전파를 탄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채널A)는 아예 ‘19세 이상 시청가’ 딱지를 붙이고 파격적인 소재들을 가감 없이 다룬다. 배우 조지환과 아내 박혜민 씨의 남다른(?) 성생활 고민은 방송 때마다 온라인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섹스리스 등 안방극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소재들이 가감 없이 등장한다. 이보다 앞서 방송을 시작한 〈1호가 될 순 없어〉(JTBC)도 개그맨 김학래-임미숙 부부 편에서 남편의 외도와 도박 사실 등을 고스란히 방송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수위가 높아진 만큼 중장년층의 호응을 더 얻고 있기도 하다.

돌싱(돌아온 싱글)이나 골드미스의 연애 등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들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KBS2)는 중장년층의 지지를 얻어 KBS 1TV에서 방영되던 것이 시즌2부터는 KBS 2TV에 편성됐으며 최근 김동현과 이혼 소식을 알린 가수 혜은이 등이 합류해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또 장수 예능 반열에 오른 〈불타는 청춘〉(SBS)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등이 화제가 됐던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MBN) 시리즈, 어른들의 미팅 프로그램 〈찐어른 미팅: 사랑의 재개발〉(E채널) 등도 현실적인 중장년층 연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공감을 얻었다.

트로트 예능은 요즘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장르다. 여기저기 트로트 일색이라 피로하다는 젊은 시청자들이 적지 않으나, 그동안 소외됐던 중장년층은 리모컨을 여기저기 돌리며 트로트를 감상하는 재미에 쏙 빠졌다. 트로트 붐의 불씨를 틔운 〈미스트롯〉(TV조선)과 〈미스터트롯〉(TV조선), 그리고 파생 프로그램인 〈뽕숭아학당〉(TV조선), 〈사랑의 콜센타〉(TV조선)는 기본이고 남진부터 장윤정까지 ‘트로트 레전드’들이 총출동한 〈트롯신이 떴다〉(SBS) 시리즈, 〈보이스퀸〉(MBN)과 〈보이스트롯〉(MBN), 〈최애엔터테인먼트〉(MBC)까지 작품 수만 해도 홍수를 이룬다. 또 각기 프로그램이 좋은 시청률을 내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전국트롯체전〉(KBS), 〈트로트의 민족〉(MBC)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스포츠 레저와 자녀 교육, 부동산 역시 스테디셀러고 최근 들어서는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의 조기 축구 한판기를 그린 〈뭉쳐야 찬다〉(JTBC)와 낚시 예능의 원조 〈도시어부〉(채널A), 육아 상담을 테마로 한 〈금쪽 같은 내 새끼〉(채널A), 본격 부동산 예능 〈구해줘 홈즈〉(MBC)와 〈돈벌래〉(MBC), 집 정리의 미학을 보여주는 〈신박한 정리〉(tvN)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충성도와 높은 구매력

이렇듯 지상파와 비지상파 구분 없이 중장년층 타깃 예능 제작에 골몰하는 이유는 젊은 시청자들이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상당수 이탈한 탓도 있지만,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하면 중장년층은 공략하기 훨씬 쉬운 시청층인 덕분도 있다.

성미 급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입맛이 재빠르게 변하는 젊은 시청자들과 비교하면 중장년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고, 광고나 협찬을 고려하더라도 구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공략할 가치가 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의 시청률만 봐도 초기 유입된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중장년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충원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출연진의 사연을 강조한 스토리라인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아 프로그램은 물론 출연진 팬덤도 더욱 공고해진다. 한 번 시청하면 그 시간에는 웬만하면 계속 그 프로그램을 봐주는 특성도 방송사로서는 감사한 부분이다.

젊은 시청자들이 패션, 뷰티, 식품 등에서 주로 구매력을 발휘한다면 중장년층은 그것들은 기본이고 부동산, 보험, 가구와 가전, 자동차, 의료기기 등 단가가 높은 품목들에서도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에 광고나 협찬 면에서도 유리하다. 광고주들 입장에서도 구매력이 왕성한 중장년층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에 광고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현상은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을 남겼던 〈부부의 세계〉(JTBC)의 주인공 김희애가 착장한 모든 제품이 ‘완판’ 행진을 이어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밖에 각종 예능에 등장하는 안마 의자 등 가전과 인테리어 제품, 건강식품 역시 직접적인 소비로 이어지면서 방송사와 광고주도 활짝 웃고 있다.

타 장르에도 영향 끼칠까

이렇게 예능가에서 비롯한 주요 시청 타깃 전환은 드라마 등 타 장르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 시장을 보면 ‘고급 막장극’이 대세다. 과거에는 20대들의 로맨틱 코미디와 청춘극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부부의 세계〉 열풍에서 비롯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응을 얻는다. 물론 〈청춘기록〉(tvN)이나 이전의 〈이태원 클라쓰〉(JTBC) 등 일부 청춘극은 인기를 끌지만, 대세라고 보긴 어렵다. 불륜과 입시라는 소재에 가장 핫한 부동산 이슈까지 얹은 〈펜트하우스〉(SBS)와 MBC에서 준비 중으로 알려진 소설 원작의 〈잠실동 사람들(가제)〉 등도 ‘고급 막장극’ 열풍을 이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중장년층을 TV 앞에 앉히는 것은 다큐멘터리와 시사교양 프로그램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상파들은 좀처럼 손대지 않던 장수 다큐멘터리와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개편하며 좀 더 트렌디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다큐플렉스〉(MBC)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SBS), 〈인터뷰게임〉(SB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 TV 프로그램 시장에서 다소 소외됐던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좋은 신호다. 특히 완전히 중장년층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고, 중장년층과 젊은 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스타 부부 관찰 예능이든, 트로트 경연이든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팬이 적지 않다. 로맨스, 먹방, 여행에 국한됐던 예능 장르가 세분화된 것도 중장년층 시청자가 주요 공략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로 방송의 다양화 측면에서는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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