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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1

다큐 시장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글. 임종수(세종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넷플릭스가 서비스된 지 10년, 그 사이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에도 넷플릭스 열풍이 불었다. 기존의 TV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와 문법으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넷플릭스 향() 다큐멘터리’를 알아본다.

넷플릭스 향() 다큐멘터리를 보다

살인자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포토존에 선 머리 숙인 피의자를 보기는 했겠지만 그의 표정, 말, 견해,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I Am A Killer (2018)는 실제 살인자로 판정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보는 내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 Orange Is The New Black (2013)을 떠올리게 한다. 당뇨예방협회가 오히려 당뇨를 유발하는 음식을 추천하는 충격적 화면의 What The Health (2017)는 식품기업이 조장하는 지식과 정보가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비교적 가벼운 터치로, 하지만 놀랍도록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이 작품은 2004년 한 해에 비슷한 주제로 실험다큐 형식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영화 Super Size Me (2004), Bowling For Columbine (2004)에 이어 미국 정치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면서 본격 시사 다큐영화 시대를 열었던 Fahrenheit 9.11 (2004) 등을 떠올리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이거나, ‘넷플릭스 향(向)’의 예전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몇몇 콘텐츠보다 뒤에 출현했는데 넷플릭스 향 다큐멘터리라니 무슨 뜻인가? 2020년 출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살펴보자: 총기 문화와 동물학대, 동성애, 청부살인 등 미국식 자유주의의 그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Tiger King (2020), 폭스바겐 청정디젤의 허구, 월스트리트의 거짓말, 마약과 금에 깊이 연루된 노동 착취와 자본 및 권력의 커넥션 등을 폭로하는 Dirty Money (2020), 살인자를 직접 인터뷰한 것만으로도 충격을 주는 I Am A Killer (2018), 바쁜 현대인에게 집에서 하는 간편하면서도 창의적인 요리법을 보여주는 Nadiya’s Time To Eat (2020), 소셜 미디어에서의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관계집착의 허구 등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The Social Dilemma (2020), 그리고 2018년부터 시작해 암호화폐, 다이어트의 실패 원인, 거친 K-Pop 시장 등 갖가지 궁금증에 대해 설명하는 Explained 시리즈에서 2020년 급기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꼼꼼한 해설을 아끼지 않는 Coronavirus Explained (2020), 그리고 BTS와 함께 미국 팝 시장을 강타한 걸그룹 블랙핑크를 자세히 조명한 Blackpink (2020). 어느 하나 우리 삶의 핵심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 접근 방식도 무척 직접적이다. 이전의 지상파나 유료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주제이며 표현방식과 완성도가 무척 눈에 띈다.

넷플릭스는 ‘인기 다큐’, ‘실화 다큐 시리즈물’, ‘다큐 영화’ ‘리얼리티 TV’, ‘범죄물’, ‘역사 다큐’, ‘다큐시리즈’ 등 다양한 형태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공한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현황을 보면, 2012년 처음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 이래 2020년 현재까지 일반 시리즈물을 219편 제작했다. 그에 반해, 다큐 시리즈는 156편, 다큐 영화는 159편으로 다큐멘터리가 일반 시리즈물의 숫자를 능가한다.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 좋은 플랫폼이라는 뜻이다. 분류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상당 부문은 전래의 사실 기록 형식도 많지만, 상당 부문은 극영화적 요소를 적극 가미한 형식도 많다. ‘사실’에 방점을 두는 다큐멘터리의 역사적 문법에서 영화적 사실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미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족 TV를 떠난 OTT 텔레비전이 새로운 기록 방식을 장착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법

하나: 영화적 TV

넷플릭스는 자신의 콘텐츠 브랜드로 TV와 영화의 경계를 허문 영화적 TV(Cinematic TV)를 지향한다(이것이 영화 본연의 속성을 강조하는 영화인들과 갈등을 빚은 요인이었는데 점차 해결점을 찾아 가는 듯 보인다). 그 방법으로 넷플릭스가 손쉽게 사용하는 전략은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를 적극적으로 캐스팅하거나 수상 작품을 적극적으로 라이선싱하는 것이다. 특정 영화제의 아우라를 지닌 배우와 작품이 넷플릭스에 투영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또한 이 같은 일반적인 콘텐츠 제작 경향과 일맥상통한다. 미학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듬뿍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고 사양 제작(High-end Production)’의 지향점 안에서 다큐멘터리 또한 제작되거나 라이선싱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2년 자신의 오리지널 콘텐츠의 지평을 보여준 시기에 대표적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비록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은 아니지만- The Square 를 출시했다. The Square 는 지헤인 누자임(Jehane Noujaim)이 감독했고 제작비의 일부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충당했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초연된 이후 2014년 초 넷플릭스가 구매하여 독점 배급했다. 2013년 오스카상 후보에도 올랐다. 2011년 이집트와 중동 지역 아랍 민주화 운동을 담은 이 작품은 해당 지역에서는 물론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바람이 중국과 북한에도 미치지 않을까 나름 한국의 관점에서 주목받기도 했었다. 이는 2010년대 초반 사회운동의 바이럴(Viral), 즉 21세기 민주화 운동이 SNS 소통과 함께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트위터-이집트, 페이스북-튀니지, 유튜브-시리아), 그런 SNS가 그 외의 지역에서 해당 콘텐츠를 유통시키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고 사양의 사회문제적 다큐멘터리는 전례의 콘텐츠 배급(Distributing)에 네트워크를 통한 유포(Circulating)의 관행을 더함으로써 넷플릭스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생산자이자 행동자라는 점을 인식시켰다.

둘: 콘텐츠 분업화 전략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장르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영화나 시리즈물과 같이 픽션으로 국한하지 않고 현실의 서사마저도 최고의 작품과 대중적 회자로 엮어내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역시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분업적 콘텐츠 생산 전략을 일반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는 일면 당연하면서도 흥미롭다. 소재의 다양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생산의 전 지구적 분업화 전략에 입각해 유럽, 남미, 극동 및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특정 지역의 ‘현지 문제’(Local Issue)를 적극 발굴한 다큐멘터리를 해당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킨다.

따라서 넷플릭스의 콘텐츠 분업 전략은 현지 콘텐츠를 적극 발굴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 각기 다른 넷플릭스 가입자의 취향을 서로 연결하는 현지화-글로벌화 이중 전략이다. The Square 는 중동의 문제이지만 전 세계 각지에서 그런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계열로 연결되는 콘텐츠이다. 전설적인 마약 카르텔을 다룬 Narcos (2015)가 남미 현지의 문제이지만 마약과 범죄물에 관심 있는 전 세계 구독자들에게 어필했듯이 말이다. 이는 결국 특정 지역의 이슈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그런 주제에 관심을 둔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추천목록’이 된다. 물론 그들이 그런 취향을 계열화해내는 것은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 표현의 자유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또 다른 방법에는 보다 확대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앞서 말한 영화적 TV에 전 지구적 분업화를 실행해내는 창작 원칙이다. 넷플릭스는 위의 원칙에 맞춰 꼼꼼하게 콘텐츠 투자를 결정하지만 한 번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 이 원칙은 넷플릭스가 이른바 쇼러너(Showrunner)라는 콘텐츠 책임자를 운영하는 것과 부띠끄 다큐멘터리(Boutique Documentary)를 적극 발굴하는데서 발견할 수 있다.

쇼러너는 방송 네트워크, 케이블, 프리미엄 채널, 가장 최근에는 온라인 스트리밍 회사의 책임자로서 대본을 쓰고 제작, 감독하는 등 콘텐츠 생산의 핵심 영역 또는 특정 장르나 프로그램의 책임지는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콘텐츠 표현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복잡한 제작 과정에 대한 높은 자율성과 통제력을 가진다. 시나리오 경향의 쇼러너가 있는가 하면 투자자, 또는 제작자 경향의 쇼러너가 있다. 그들은 콘텐츠 생산에 관한 상징자본을 축적하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지위를 점하지만, 모든 쇼러너가 똑같지는 않다. House of Cards 의 뷰 윌리먼(Beau Willimon), 〈못말리는 패밀리〉의 미치 허비츠(Mitch Hurwitch) 등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도 이 같은 쇼러너 수준의 다큐 장인을 적극 발굴하여 제작을 맡긴다.

넷플릭스가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담아내는 것은 쇼러너 모델에서 파생된 듯 보이는 다양한 층위의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이른바 부띠끄 다큐멘터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시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반영하는 작은 가게’라는 말 그대로의 부띠끄 개념을 적용해 볼 때, 부띠끄 다큐멘터리는 대형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배급하는 대규모 자본에 의한 기존 관습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비교적 소규모/소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고급스럽고 다양한 취향을 보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나 소재가 전례를 넘어서고 시각이 참신하거나 과감하며 그 표현 스타일이 무척 개성적이다.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 표현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를 살펴보라. 지금 넷플릭스는 부띠끄 다큐멘터리의 배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OTT 다큐멘터리의 미래

최근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또한 이러한 경향과 그 결이 같아 보인다. 일면을 살펴보면 〈자백〉(2016), 〈공범자들〉(2017), 〈그날, 바다〉(2018)와 같은 시사 다큐, 〈내친구 정일우〉(2017), 〈김복동〉(2019)과 같은 인물 다큐가 주를 이룬다. 이들 작품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행당동 사람들〉(1999), 〈송환〉(2003), 〈워낭소리〉(2008) 등이 있을 것이다. 탈 지상파적 독립다큐의 전통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진실성 있는 문제인식, 잘 처리된 정서, 고급스런 구성 등 OTT에서 소통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 역사가 쓰여지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Barker, C. & M. Wiatrowski, 『The Age of Netflix』, 2017. (임종수 역 『넷플릭스의 시대』, 2019, 팬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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