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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 Policy 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혐오감정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글. 김원동(한중콘텐츠연구소 대표)

상반기 한국 콘텐츠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바로 <조선구마사>(SBS)의 방송중단과 드라마 <여신강림>(tvN), <빈센조>(tvN) 등에서의 중국 브랜드 PPL 논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중심으로 불거진 중국 자본의 직접적인 한국 콘텐츠 투자 논란, 연이어 터진 드라마 속 역사왜곡 논란 등은 양국 간의 혐오감정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적인 보도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면에 존재하는 배경과 맥락에 대해 보다 더 깊은 이해와 올바른 문제 의식을 갖고 그 본질에 접근해야만 한다. 특히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말이다.

<조선구마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

먼저 <조선구마사> 사태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조선구마사>는 지난 3월 1, 2회차가 방영되자마자 국적이 묘연한 중국풍의 소품,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지는 인물 설정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광고주들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협찬 광고계약을 파기한 데 이어, 주관 방송사인 SBS도 전격 방송 취소를 선언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구마사>의 방영시기가 공교롭게도 지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에 의해 양국 관계가 경색될 대로 경색된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맞으면서 한국 대중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일로에 있던 시기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콘텐츠의 성패는 타이밍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서비스 시기와 상황은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조선구마사>는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타이밍을 잘못 선택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물론 제작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다소 과도하게 부풀려져서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시장의 복합적인 상황을 제작진이 미리 감지하고 신중하게 그 수위를 잘 조절했다면, 제작비 300억 원이 넘는 초대형 드라마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장되는 파국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조선구마사>의 사례는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한다. 중국 혹은 중국과 같은 거대 시장이 향후 등장하여 그들이 자본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해진다 하더라도 역사 배경 콘텐츠의 제작에 있어 엄중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제2, 제3의 <조선구마사>가 될 수 있다는 무거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차이나머니란?

앞서 살펴본 <조선구마사> 논란이 있었던 3월, 다른 한편에서는 드라마 <빈센조>의 중국 브랜드 비빔밥 PPL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또 그로부터 두 달 전인 1월에는 드라마 <여신강림>의 인스턴트 훠궈 PPL이 시청자들에게 지적을 받았다. 연이은 논란으로 인해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이 자칫하면 차이나머니에 잠식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비판이 언론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 자본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한한령 이후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은 필자도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드라마 PPL 논란 장면

출처 : tvN

최근의 콘텐츠 제작 자금 조달의 이면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본다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들의 약진과 더불어 중국계 자본들이 우리 콘텐츠 업계에서 그 비중을 조금씩 그리고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한 예로 ‘중국판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인 OTT 아이치이(iQiyi)가 지난 2020년 사들인 한국 드라마 판권이 <편의점 샛별이>(SBS), <저녁 같이 드실래요>(MBC), <허쉬>(JTBC) 등을 포함하여 30여 편에 달한다. 하반기 기대작인 드라마 <지리산>(tvN)의 글로벌 판권 역시 일찌감치 아이치이가 200억 원 이상의 거금을 투자해 확보했다는 소식도 전해진 바 있다.

차이나머니 논란은 ‘강원도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한중문화타운 이슈로도 이어진 바 있다. 일종의 테마파크로 조성된 이곳이 하필 명칭을 ‘한중문화타운’이라고 지으면서 지방정부에서 강원도에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있다는 오해를 산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오래 전부터 구상된 사업이며, 양국 문화 교류의 취지를 가진 사업이었다는 점은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콘텐츠 가치를 평가받아 큰 규모의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때 아시아를 대표하며 시대를 풍미한 바 있던 홍콩과 대만이 차이나머니에 의해 이제는 완전히 자생력을 잃고 현재는 그 존재감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음을 감안할 때, 우리 콘텐츠 업계도 이를 본보기로 삼아 주도권은 결코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현명한 대응이 꼭 필요하겠다. 그리고 그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한국만의 고유정서와 창조성이 살아있는 콘텐츠 IP가 아닐까 싶다.

중국이 한국드라마 PPL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차이나머니 논란이 불거졌을 때 가장 긴장한 것은 역시 중국의 투자를 받거나 중국 원작을 각색한 콘텐츠의 방영을 앞두고 있던 제작사들이었다. 아이치이의 첫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 중국 자본 투자를 받은 <간 떨어지는 동거>(tvN)는 5월 말 방영을 앞두고 중국으로부터 받은 제작 지원 및 중국 상품 PPL 논란 재현이 우려되면서 몸살을 앓았고, 결국 제작진 측은 모든 중국 브랜드 PPL 장면을 편집하고 “시청자 분들의 정서를 최우선으로 하고자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럼 중국은 왜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 PPL을 포기하지 않는 걸까?

사실 그간 중국이 한국 드라마에 PPL 했던 상품들을 살펴보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해외 저변 확대를 노린 기획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칭따오 맥주나 타오바오(taobao.com), 징둥(JD.com) 같은 범 글로벌 브랜드들을 홍보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라면이나 치킨 등이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활발히 수출된 것처럼 말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중국의 한국 드라마 PPL은 정치적, 문화적 측면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려는 길목에 일종의 ‘가성비’를 고려해 우리나라 드라마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중국 자본의 시장 침탈이니 문화공정이니 하는 우려들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연예인 출연료와 제작 비용 충당 때문에 자본 투입에 대한 갈증은 매우 큰 상황이다. 특히,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한다는 작품들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10억 원을 가뿐히 넘기는 것들이 수두룩하니 사전에 제작비를 위한 투자 유치가 그만큼 매우 중요해졌다. 비록 최근의 논란들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니즈와 우리의 자본 그리고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갈증이 계속 상존하는 한 앞으로도 중국 자본의 투자가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따라서 경제적, 비즈니스적 필요와 문화적, 역사적 부분에 대한 경각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중국의 문화·역사공정과 공격적 패권주의

중국 자본이 우리 콘텐츠 시장에 침투하면서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이 바로 중국의 문화·역사공정이다. 우리 콘텐츠 시장의 중국 자본 의존도가 높아지면 중국의 문화·역사공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도 이와 관련, 적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다. 지난 2020년 2월에는 중국 드라마 <소주차만행>에서 시녀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한복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등장했다. 중국 모바일 게임 <샤이닝니키>는 한국 서버에 한국 의상을 추가하고 한복을 한국의 전통 의상이라고 소개했으나 이후 중국 유저들이 한복이 중국 명나라 의상이라고 이의제기를 하자 서비스 일주일 만에 한국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웹소설 <성세천교>에서는 주인공이 “중의학(中医)을 한의학(韩医)이라고 말하는 무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한국에 간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 밖에도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게임들에서 한복과 유사한 의상들이 등장해 논란을 일으키며 한복 역사공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극렬하게 중화주의를 외치는 중국의 애국주의 청년들, 소위 ‘21세기 홍위병(중국 문화대혁명의 일환으로 준군사적인 조직을 이루어 투쟁했던 청년 집단)’들의 국수주의적 행태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적지않은 정서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이슈가 되면서 최근 한국 내 중국의 위상은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의 한국 내 반중 정서를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가장 최악으로 손꼽을 정도이니 말이다. 네티즌들의 댓글만 놓고 봐도 중국 관련 이야기라면 어떤 내용인지 들여다보지도 않고 일단 부정적인 비판 일색이다.

중국 콘텐츠 속에 스며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들에게 불편함을 심어주고 있다. 점점 더 패권적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의 국수주의적 행태는 비단 한중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국제무대에서도 대외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중국몽(中國夢)’1)을 실현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지금, 과연 현재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패권적 성향의 민족주의를 유지한 채로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 국가가 될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한중 간 혐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최근 소식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고위간부 대상 강연에서 이례적으로 ‘세계와의 소통’을 강조했다고 전해졌다. 이 강연에서 시진핑 주석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을 이해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겸손하고 솔직하게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면서 “사랑받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며 존경받을 수 있는 외교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외신들은 중국이 그동안 취해왔던 ‘전랑외교(늑대처럼 호전적인 외교활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는 분석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이 줄곧 보여준 바 있는 소위 ‘차이나불링(China Bullying, 정치외교적 마찰을 빚는 국가에 경제보복을 한다는 중국식 괴롭힘을 가리키는 용어)’으로 대표되는 외교정책 노선이 과연 얼마나 친화적으로 변할지는 아직은 잘 알 수 없다. 다만 우호적인 소통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큼은 긍정적인 신호라 하겠다.

물론 중국 정부의 태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든,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해야 할 말을 올바른 타이밍에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역사공정과 같은 잘못된 주장을 올바르게 바로 잡으려는 노력’과 ‘감정을 앞세워 그 이면을 잘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올해는 한중 문화교류의 해, 내년 2022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16년 사드 배치 이슈 이래 모처럼 한중 관계가 호전의 기회를 맞고 있는 지금, 한국과 중국은 서로 순망치한의 관계임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우선과 보호무역으로 돌아서고 있는 이 중요한 기로에서 소모적인 적대보다는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2021년 들어 한중 정부 간의 유의미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올해 2월에는 KBS와 중국 중앙방송총국 CMG가 협정을 체결해 문화사업의 다양한 방면에서 협력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비공식적으로도 수면 아래에서 양국 간의 교류 재개를 위한 물밑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날카롭게 대립하며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는 한중 양국 국민 간의 혐오감정은 이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은 무엇일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끝으로 필자 또한 콘텐츠 업계 종사자이기에 첨언하자면, 그간 저우추취(走出去, 중국기업들의 해외 진출), 중국몽, 소프트파워(문화 ·예술이 행사하는 영향력) 등을 강조하면서 자국 문화상품의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을 이어온 중국이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자 당연지사가 아닐까 싶다.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해 날로 그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의 반중정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제 정세의 흐름과 그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글로벌 OTT들 간의 치열한 한국 콘텐츠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포지셔닝을 영리하게,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K-콘텐츠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 소개

  • 김원동
  • 23년차 미디어 업계 종사자이자 영화 제작자. (주)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와 한중콘텐츠연구소, 유튜브 채널 ‘차이나는 찐사부’를 운영 중이다. 2018년 한중 문화교류 공헌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으며 201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해외진출지원센터 콘텐츠비즈니스자문단 위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