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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 Policy 3

디지털 전환기,
방송영상산업의 ‘빅뱅’

2021 콘텐츠산업포럼 - 방송포럼 스케치

글. 차예지(편집부)

<콘텐츠산업포럼>이 온라인을 통해 열린 지 2년째다. 이번 포럼의 주제인 ‘디지털 전환기’를 이보다 잘 드러내는 일이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디지털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진 지금의 방송영상산업. 업계 종사자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 6월 16일 열린 <2021 콘텐츠산업포럼 - 방송포럼>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발제1] 글로벌 미디어 격변기, 국내 OTT의 성장전략

발제자_ 박태훈 대표((주)왓챠)

국내 OTT 플랫폼인 왓챠의 박태훈 대표가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섰다. 박태훈 대표는 넷플릭스가 해외는 물론 국내 OTT 시장까지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K-OTT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왓챠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국내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이 해외 OTT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종속관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콘텐츠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시장의 확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수익 모델이 아닌 가치 모델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왓챠의 경우 데이터화된 이용자 취향 분석 자료와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프로덕션 역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화이글스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질 다큐멘터리와 영화배우 4인이 연출하는 단편영화 시리즈 등 참신한 콘텐츠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튜브 콘텐츠 기반의 <좋좋소>와 같은 시리즈물을 만들고 관련 MD(merchandise) 상품 등으로 콘텐츠 IP를 통한 확장을 꾀하고 있다고 했다.

박태훈 대표는 이런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맞게, 현재까지의 콘텐츠 지원 정책이 ‘개별 상품으로서의 콘텐츠’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앞으로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연계한 지원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발제2] 영상제작 신기술이 불러온 창작 환경의 변화

김종우(PD, MBC 실감콘텐츠TF 팀장)

두 번째 발제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MBC)를 제작한 김종우 PD였다. 김종우 PD는 기술이 사람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것이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너를 만났다>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휴먼이 존재하는 세계 안에서 한 가족의 스토리를 재현해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 말이다. 시청자가 방송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너를 만났다>는 3D 볼류매트릭1)을 이용해 인물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이었다. 재창작이 아니라 어머니의 기억 속 아이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출연자가 VR 기기 안의 상황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실제 몰입감은 놀라웠다고 한다. 김종우 PD는 <너를 만났다>를 통해 기술과 방송의 만남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요즘 화제인 메타버스 안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을 찍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너를 만났다> 시즌 2에서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주인공의 사례를 다루면서, ‘VR 저널리즘’의 미래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VR 콘텐츠를 활성화 시키려면 기획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술적 본질에 대한 이해를, 엔지니어는 게임과 다른 SW개발의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전달했다. 발제를 통해 디지털 격변기에 기술과 휴머니즘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엿볼 수 있었다.

[발제3] #멀티와 #파편화가 만든 콘텐츠 확장성

노가영 작가(트렌드북 저자/SKB 모듈장)

마지막으로 콘텐츠 소비 주체의 새로운 경험을 내용으로 한 노가영 작가의 발제가 이어졌다.

기존의 콘텐츠 소비 집단이 보편성, 편의성을 중심으로 모였다면 이제는 자신의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집단이주 소비 주체라는 분석이다. 시청 형태가 파편화되면서 콘텐츠 사업자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월트디즈니 ‘덕후’가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해 콘텐츠를 보게 만든다는 것. 이제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여러 콘텐츠 채널을 동시에 이용하게 되었다.

노가영 작가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경향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디지털 세대격차가 만드는 확장성’ 이라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MZ세대를 따라하면, MZ세대는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등 서로 간에 장벽이 생기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세대격차는 MZ세대끼리 커뮤니티를 만들게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성에 기대어 밈(meme)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생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끝으로 노가영 작가는 지금 방송영상산업은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라며, 최근 방송에서 트로트와 같은 전형적인 콘텐츠의 인기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는 방송사가 가진 콘텐츠 파워에 ‘감동’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예시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국의 경우 플랫폼의 역할만 하고 프로그램은 창작자의 자유로 두면 다양한 색깔의 방송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비쳤다. 방송과 디지털화의 흐름을 소비자 트렌드를 통해 파악해 본 발제였다.

[종합토론] 디지털 전환기, 방송영상산업의 위기와 기회

모더레이터_ 이만제 교수(원광대학교)
패널_ 박태훈 대표((주)왓챠), 김종우 PD(MBC 실감콘텐츠TF 팀장),
노가영 작가(트렌드북 저자/SKB 모듈장), 이상원 교수(경희대학교),
이소림 변호사(이소림법률사무소)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앞선 발제자들과, 한국 콘텐츠 시장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있는 패널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투자기획 업무와 콘텐츠 제작자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이소림법률사무소의 이소림 변호사는 미디어 격변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이 변화의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IP 중심 기획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금, 콘텐츠 중심의 유연한 파이낸싱을 도울 엑셀레이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법령 정비나 사업관리자, 자산관리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OTT 플랫폼 경쟁 속에 국내 ‘콘텐츠의 경쟁력’이 ‘플랫폼 경쟁력’을 앞지른다고 평했다. 따라서 콘텐츠와 플랫폼에 동시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콘텐츠가 OTT 플랫폼에 진출할 때 그 나라의 사업자와 전략적 제휴를 맺을 수 있어야 하고, 현지화를 통해 투자의 위험률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한류 콘텐츠와의 융합 전략도 제시했다. 다만 저작권 이슈 등 정부의 정책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더레이터인 이만제 교수는 발제와 연계한 다양한 질문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먼저, 첫 번째 발제자인 왓챠 박태훈 대표에게 플랫폼과 콘텐츠를 연계한 정부 지원에 대한 질문과, 일부 이용자들이 제기하는 국내 OTT의 기술적 문제에 대해 물었다. 이에 박태훈 대표는 K-OTT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더불어 스트리밍 기술력에 대한 답변으로, 외국과 우리나라의 환경 차이를 지적했다. 기술 자체의 문제보다, 망 비용의 문제가 크다는 의견이다. 해외 OTT 플랫폼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될 때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OTT 플랫폼이 지불해야 하는 망 비용은 해외 OTT의 몇 배 수준이라는 것. 박태훈 대표는 이에 대한 개선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답변을 마쳤다.

다음으로 김종우 PD에게는 <너를 만났다>와 같은 VR 신기술 콘텐츠를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인지, 동시에 방송이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가질 것인가에 대하여 물었다. 이에 김종우 PD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을 안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교양, 정보 프로그램 등이 시청률의 하락으로 존폐 위기에 놓이는 점을 지적했다. <너를 만났다> 또한 여러 걱정을 안고 시작했다며, 2억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이런 것을 또 누군가가 한다면 제작자가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솔직히 답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비용은 점점 하락할 것이기 때문에, 지상파에서 실험적인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게 방송사의 배려도 필요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만제 교수는 이어서 노가영 작가에게 ‘방송영상산업의 위기와 기회’라는 키워드에서 어떤 점을 준비해야 할지 의견을 물었다. 노가영 작가는 콘텐츠 사업자의 관점에서 대답하겠다며, 넷플릭스가 우리나라 콘텐츠를 해외에 연결해주고, 높은 제작비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이후 수익구조에서 콘텐츠 사업자가 얻을 수 있는 마진은 적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턱없이 낮은 마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과제라는 것. 이에 투자회사들의 도움을 역설했다. 콘텐츠 산업으로 인해 생길 일자리 또한 고려하여, 이에 대한 세제지원도 국가나 정부기관이 현장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포럼은 OTT 시대 방송영상산업의 생태계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정부의 지원과 금융 문제 등 여러 부분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결론적으로는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나아갈 한국 콘텐츠 산업의 앞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