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Contents Review 2

<강철부대>는 군대예능의
새 문법을 만들 수 있을까

글. 김지혜(경향신문 기자)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를 가리는 밀리터리 팀 서바이벌 예능’을 표방한 <강철부대>(채널A)는 9회에서 최고 시청률인 6.8%(채널A, 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채널A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린 예능 프로그램에 등극했다. 특히 3%대까지 치솟은 2049(20세부터 49세 까지) 시청률은 <강철부대>가 명백히 대세 콘텐츠의 대열에 합류했음을 입증했다.

극한 상황에서 ‘리얼리티’를, 전문성에서 ‘안전망’을

올해 상반기를 달군 화제의 콘텐츠를 꼽자면 채널A·SKY의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예견된 결과는 아니었다. <강철부대>는 군대 예능의 전신격인, 유튜브의 <가짜사나이>가 예고한 이중의 함정에서 출발했다. 앞서 <가짜사나이>의 신드롬적 인기는 <진짜사나이>(MBC)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의 ‘연출된’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대중의 염증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가짜사나이>의 인기를 견인한 ‘연출되지 않은’ 날것의 리얼리티는 다른 한편으론 가학성 연출, 출연진 사생활 논란 등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음도 드러냈다. 요컨대 <강철부대>는 안전하되 지겨운 레거시 미디어의 연출된 리얼리티와, 흥미롭지만 위험한 뉴미디어식 날것의 리얼리티 사이 어디쯤에서 군대 예능의 새 길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시작한 셈이다.

어려운 과제 앞에서 제작진이 택한 소재는 ‘특수부대’다. <강철부대>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단, 해군 특수전전단(UDT), 해병대 수색대, 군사경찰 특수임무대(SDT), 해난구조전대(SSU) 등 6개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부대별로 팀을 이뤄 경쟁 끝에 최종 우승을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서바이벌은 경쟁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개성과 선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예능 포맷이다. <강철부대>는 여기에 참호 육탄전부터 IBS(소형 고무보트) 침투 작전, 사격전, 대테러 구출작전 등 특수부대 출신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경쟁 상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했다. 개인보다 집단의 생존을 앞세우는 ‘군인 정신’ 역시 경쟁의 강도를 극한의 수준으로 높이는 데 한몫했다.

특수부대는 인간의 본성을 리얼하게 끌어내는 극한 상황과 더불어 이에 대한 품격 있는 대처를 가능케 하는 전문성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탁월한 소재였다. <강철부대>는 일반인의 군사 훈련 체험을 앞세웠던 여타 군대 예능들과는 달리 이미 검증된 실력자들을 모아 불필요한 훈련 과정을 생략했다. 고도로 훈련 받은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의 특화된 전문성은 일반인 출연진에게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체험케 하는 과정에서 가학성 논란을 빚었던 <가짜사나이>의 함정을 피해가는 무기가 됐다. <가짜사나이>를 통해 증폭된 특수부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어가되, 각 부대별로 상이한 전문성과 이에 대한 출연진의 자부심을 적극 활용해 ‘안전하면서도 리얼한’ 서바이벌 형식을 완성한 것이다.

물론 <강철부대>에도 <가짜사나이>에 신드롬적 인기를 안겨준 날것의 리얼리티가 있다. 격화된 경쟁 속에서 욕설을 뱉는 폭력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고,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거듭하다 부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강철부대>는 이 서바이벌이 ‘전문성과 자부심을 건 대결’이라는 명분과 형식을 거듭해서 강조함으로써, 출연진들이 날것 이상의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안전망을 제공한다. 스튜디오에서 시청자 입장으로 서바이벌을 관전하는 연예인 패널의 존재 역시 이 서바이벌이 날것 그 자체가 아니라 ‘안전하게 세팅된 경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원웅 PD가 한 매체 인터뷰에서 밝혔듯 제작진은 “달성이 쉽지 않아도 가능한 미션만 부여한다”는 방침으로 자칫 소모전으로 번질 수 있었던 경쟁을 합리적인 형식으로 구축했다. 군대에서의 훈련을 통해 획득한 전문성 있는 능력과 전략을 바탕 삼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한 상황을 돌파해가는 출연진의 활약은 가학성 논란이 고개를들 새도 없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전우애는 뭉클, 부활은 불공정

‘전문성’과 ‘자부심’이라는 안전망 덕분에 <강철부대>에는 <가짜사나이>처럼 날것 리얼리티를 앞세운 뉴미디어 콘텐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우애, 동료애를 강조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특전사팀 박준우는 진흙탕에서의 치열한 격투 끝에 패배한 직후, “영광”이라 말하며 상대인 UDT팀 김상욱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상대팀이지만 같은 전우”라는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팀 간 합동작전인 대테러 임무수행 미션에서 UDT팀은 팀워크를 이유로 707팀이나 특전사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술수행능력이 떨어지는 비전투부대 SSU팀을 파트너로 택한다. 단순한 생존 혹은 승리만이 목표였다면 연출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시청자들이 <강철부대>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화합과 전우애. 결국 리얼리티의 끝에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자연적 본능을 넘어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과 결단이다.

<강철부대> 하이라이트 영상 갈무리

출처 : skyTV 유튜브

그러나 인간적 감정에 치우진 개입은 프로그램이 내세운 경쟁의 규칙을 무색케 만들기도 한다. 앞서 <강철부대>는 각 미션마다 탈락팀 간 재대결을 통해 이중 승자를 부활시키는 ‘데스매치’전을 지속해왔다. 방영 초반만 해도 탈락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동시에 다양한 종목의 미션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받았던 제도다. 하지만 9회, 동반탈락이 예고됐던 해군 연합(UDT팀+SSU팀) 간 데스매치가 치러진다는 것이 발표되면서 불공정 이슈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데스매치에서 SSU팀이 최종 탈락팀으로 선정된 이후, 다음 미션이 4강 토너먼트임이 발표됐고, 앞서 탈락했던 해병대 수색대팀·SDT팀이 소환돼 총 3팀이 다시 4강 토너먼트 진출권을 두고 재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4강에 진출하는 팀은 전투 대결로 4강에 진출한 3팀에 비해 유리한 상황이 아니냐는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급기야 ‘시청 포기 선언’까지 속출했다.

“이제 진짜 부활 없지?” 계속되는 데스매치 속 혼란해 하는 연예인 패널들의 반응은 시청자들의 반감을 함축한다. 부활을 기대하기 힘든 팍팍한 경쟁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기준 없는 패자부활의 반복은 곧 리얼리티의 훼손이자 현실에 대한 기만으로 받아들여진다. 승리와 패배가 곧 생존과 탈락으로 이어지는 서바이벌의 룰은 프로그램의 전제인 동시에 현실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와 ‘안전망’ 사이 제작진의 고민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대 예능에 대한 근본적 질문

<강철부대>의 리얼리티를 논하다보면 결국 군대, 그리고 군대 예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병영 내 각종 범죄를 무작정 덮으려고만 하는 군 내부의 해묵은 관행은 최근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으로 다시 한번 드러났고, 군 조직의 남성 중심적 문화는 여전히 약자의 실존을 위협하는 폭력을 지속시킨다. 그런데도 군대 예능이 재현할 군대의 리얼리티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협소하다. 예능 속 군대는 ‘강인함’과 ‘희생정신’으로 신성화되거나 ‘잊지 못할 고난의 시기’로 납작하게 재현되는 데 그친다.

<강철부대>는 불법촬영과 음란물 유포 등의 의혹이 제기된 한 출연진을 방송 3회 만에 하차시켰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특수부대의 자부심을 건 서바이벌의 명분이 겸연쩍어지는 상황이다. 앞서 “인성”을 외치던 이근 전 대위의 성추행 전과가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증폭돼 방영 중단까지 치달았던 <가짜사나이>의 전례와 겹쳐진다. 단순 출연자 검증 실패의 문제를 넘어, 두 프로그램이 이상적인 형태로 재현한 군대의 리얼리티가 출연진의 잘못을 통해 훼손되는 상황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닮아있기 때문이다. 군을 칭송키만 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연출된 리얼리티’도, 훈련 명목으로 폭력을 재현하는 뉴미디어식 ‘날것의 리얼리티’도 결국 정답은 되지 못한다. 유구히 회자돼 온 군대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폐습과 폭력까지도 온전히 직시하고 고민하는 군대 예능의 새로운 리얼리티 접근법이 필요한 때다. 종영 이전부터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강철부대>의 다음 스텝이 궁금해진다.

필자 소개

  • 김지혜
  •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대중문화 기사를 쓰고 있다. 다수보단 소수의 관점에서, 강자보단 약자의 자리에서 대중문화를 바라보고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