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Special Issue 3

뉴미디어 시대
시트콤 사용설명서

글. 문동열(우송대 테크노미디어 융합학부 겸임교수)

뉴트로 열풍으로 예전 콘텐츠들이 재조명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한때 한국 TV 산업을 이끌었던 추억의 시트콤들도 예외는 아니다. ‘짤’1)로 특정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거나 몇몇 장면은 ‘밈’2)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 각 방송사에서는 예전 시트콤들을 유튜브 아카이브 채널에서 재방영하거나, 일부 케이블 방송에서는 아예 정규 편성하기도 한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심리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더 본질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국 시트콤의 역사

1951년 미국 CBS에서 최초의 시트콤이라 할 수 있는 <왈가닥 루시(I love Lucy)>가 방영된 이후 시트콤은 TV 산업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시트콤은 빠르게 진행되는 익살스러운 상황의 반복과 언어유희, 저속하고 선정적인 주제를 특징으로 대중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연극 무대 형식의 멀티 캠 연출, 방청객의 웃음소리를 녹음해서 트는 연출, 앙상블 캐스트(특정 주·조연이 아닌 여러 개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형태)등 이 시기 시작된 시트콤의 장르적 습관은 이후 모든 시트콤들의 원형이 된다.

한국의 시트콤도 이러한 미국의 시트콤을 계승·발전하며 성장했다. 80년대 중반 방영된 MBC 일요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을 한국형 시트콤의 시작이라 보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시트콤의 시작으로 보기는 어렵다. 90년대 들어 당시 지역 민방 승인으로 개국한 서울방송(SBS)에서 1993년 방영한 <오박사네 사람들>은 미국형 시트콤을 충실하게 계승해 최고 시청률 36%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한국인들에게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후 <LA 아리랑>(SBS), <남자 셋 여자 셋>(MBC)이 시트콤의 인기를 견인하며, 방송국별로 시트콤 제작 경쟁이 붙기 시작한다. 절정에 달한 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다. 지금도 한국 시트콤의 명작으로 기억되는 <순풍산부인과>(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 <똑바로 살아라>(SBS) 등이 잇달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2000년대 들어 MBC의 <논스톱> 시리즈로 대표되는 청춘 시트콤과 그 뒤를 잇는 <거침없이 하이킥>(MBC) 시리즈가 승승장구하며 2000년대 후반까지 20년에 걸쳐 이어 온 시트콤의 위상은 굳건해 보였다.

한국형 시트콤이 하락세로 접어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 이후다. 각 방송사의 신작이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고, 반복되는 소재와 구성, 미국 드라마 등에 노출된 젊은 층들의 한국 드라마 기피 현상, 인터넷의 확대로 인한 TV 이탈 현상들이 겹치며 각 방송사는 시트콤을 서서히 외면하기 시작한다. 시트콤이 빠진 편성표의 자리는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쇼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씩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시트콤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은 서서히 찾아보기 힘들어져 갔다.

시트콤의 몰락?

그렇다고 그 많던 시트콤이 모두 사라진 걸까? 그렇지는 않다. 물론 90년대의 정통 시트콤과 그 형식과 유행 양상이 같지는 않다. 2010년대 들어 시트콤이라는 장르 자체가 더는 신선하지 않다는 인식이 시청자와 업계에 퍼지면서 연극 무대 같은 멀티 캠 시트콤의 제작은 지양되고, 미국 등지에서 새로운 시트콤의 형식으로 주목받던 이른바 ‘싱글 캠 시트콤’(영화 같은 촬영방식의 시트콤)이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시트콤이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덕분에 ‘예능형 드라마’ 등으로 이름표만 바꾼 시트콤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한때는 사라지나 했던 시트콤이지만, 2010년대 들어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기 시작하며 방송 제작 환경이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고, 몇몇 방송사들이 90년대 시트콤의 화려한 귀환을 외치며 복고풍이 가미된 시트콤을 시도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오히려 지금의 유튜브나 OTT 미디어에서 시트콤은 환영받는 장르다. <좋좋소>나 <일진에게 찍혔을 때> 같은 유튜브 웹 드라마, 최근 방영한 카카오TV의 <이 구역의 미친 X>나 <야인 이즈 백> 같은 모큐멘터리 방식의 콘텐츠들에서 90년대 시트콤의 모습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tvN)이나 <라켓소년단>(SBS) 같은 작품에서 정통 시트콤의 앙상블 캐스팅 요소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마음의 소리>(KBS)나 <놓지마 정신줄>(JTBC) 같이 시트콤 형식의 웹툰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경우도 있다. 본질은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구현 형태나 유행 양상은 과거의 그것들이 매체의 변화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되어 반영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최근의 90년대 시트콤 인기에 편승한 ‘정통 시트콤’도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며 올드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

장르로서의 시트콤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90년대와 지금의 시트콤은 근본적인 면에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당장 시청자 환경만 보더라도 거실의 TV가 사라지고, 미디어는 점점 개인화되어가며 핵가족을 지나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매일 매일 한 편씩 몇 년간 보던 작품을 이제는 ‘몰아보기’로 하루 만에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수용 환경 자체가 바뀌며 시트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왈가닥 루시> 이후 제작된 과거 수천 편 이상의 시트콤에서 몇 가지 사회 현상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가 장기 방영되는 시트콤들이 대중들의 기억이나 추억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현상이다. 매일 저녁 식사 후 기숙사 공용 휴게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함께 봤던 청춘 시트콤이나, 과일을 집어 먹으며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시청한 가족 시트콤의 기억,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시트콤을 보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기억 등 시트콤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렇게 시트콤이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면서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시트콤은 우리의 삶에 연결되어 지금도 기억을 회상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거기에 더해 시트콤의 캐릭터들이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도 일종의 노출 효과(Exposure Effect)로 설명 가능하다. 시트콤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들은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캐릭터를 긴 시간 동안 접하다 보니 친근감과 함께 일종의 동질감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다. 과거의 시트콤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 넷플릭스 같은 OTT 미디어가 옛 시트콤 판권 확보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래된 친구는 언제 봐도 즐거운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유튜브와 OTT로 흘러 들어간 현재의 시트콤들은 철저히 개인화된 미디어 속에서 시청자들을 만난다. 시대와 미디어 환경에 맞게 빠르고 압축된 구성은 캐릭터보다는 스토리나 상황에 더 치중해야 하고, 더 깊은 몰입감과 동질감을 제공해주는 과거의 시트콤과는 달리 순간순간의 자극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환경이 달라진 만큼 어쩔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시트콤이 예전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든 것도, 지금이 볼거리가 많아진 콘텐츠 홍수 시대라는 점과 함께 이러한 환경 변화의 탓이 클 것이다.

모든 장르적 형식은 변하기 마련이다. 콘텐츠는 늘 변화하고 새로운 흐름에 적응해 가야 한다. 지금도 대중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트콤을 원하고 있다. 꼭 시트콤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시트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재미, 웃음 그리고 우리의 피곤한 삶 자체를 달래 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콘텐츠라면 대중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언제나 진심으로 열광해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TV 산업과 함께 해 온 본질이다.

필자 소개

  • 문동열
  • 우송대학교 테크노미디어 융합학부 겸임교수. SBS콘텐츠허브와 IBK기업은행 등에서 방송 비즈니스와 콘텐츠 금융을 경험하였고 콘텐츠 제작자로서 25년간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현재는 우송대학교에서 영상 관련 강의를 맡아 미래 크리에이터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