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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Picture

글로벌 콘텐츠의 필수조건,
포스트프로덕션

글. 김조한(뉴 아이디 이사)

한국 영상콘텐츠는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영상 제작의 중요한 부분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포스트프로덕션’이다. 포스트프로덕션이란 음향 편집, 자막, 영상에 들어가는 시각적 특수효과 등 미디어 콘텐츠에 들어가는 후반 작업을 의미한다. OTT를 중심으로, 포스트프로덕션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콘텐츠 현지화를 위한 전략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이지만 전 세계의 1억 4,200만 가구에서 시청을 했다고 하니, 넷플릭스 사상 처음으로 40% 가까운 사용자들이 시청한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넷플릭스의 유료 구독자는 약 2억 1,350만 명이고, 실제 사용자들은 2배 이상 될것으로 예상된다) 콘텐츠 오픈 한 달 만에 이뤄낸 결과다.

콘텐츠 자체로서도 여러 가지 성공요인이 있겠지만, ‘현지화’를 빼놓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13개국의 언어로 더빙되었을 뿐만 아니라, 31개국의 언어로 자막도 제작되어 글로벌 시청자들은 <오징어 게임>이 한국 콘텐츠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입장벽 없이 쉽게 시청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OTT시대가 열리면서 미디어 포스트프로덕션(미디어 후반 작업)의 개념은 바뀌고 있다. 기존 후반 작업은 방송의 맛을 살리기 위해 첨가되는 작업이었다고 하면, OTT시대의 후반 작업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콘텐츠를 잘 전달하기 위한 현지화 부분(자막, 더빙, 음악, 영상 검수 등)이 추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도 최근 있었던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시청자에게 최고의 콘텐츠를 선사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함께 프로덕션 부분을 강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포스트프로덕션 파트너사와의 협업을 언급한 넷플릭스

    출처 : 넷플릭스

좋은 콘텐츠가 더 많은 나라에 가닿으려면

최근 언론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제작되었기에 오히려 제작사 측면에서는 큰 성공을 낼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흥행한 데에는 넷플릭스가 가진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190개국에 2억 명 이상의 시청자가 있고, 더빙과 자막 비용에만 약 30억 원 이상 투입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넷플릭스를 다른 플랫폼, 방송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좋은 콘텐츠에 후반 작업에 대한 투자가 더해지면 글로벌 흥행 가능성이 생긴다. 단순히 ‘좋은 콘텐츠’만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영향력에 힘입어, 역으로 미디어 후반 작업으로 알려지며 글로벌 회사가 된 경우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유노(Iyuno)-SDI’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현무 대표가 2002년에 창업한 아이유노의 대표적인 현지화 업체로, 최근 글로벌 1위 현지화 업체인 SDI를 인수함으로써 전 세계 1위 현지화 업체가 되었다. 34개국 67개의 오피스, 100개 이상의 언어를 지원하며 1년 동안 60만 시간의 자막을 만들고, 더빙 시간만 9만 시간이라고 한다. 글로벌 OTT시대가 오지 않았다면, 아이유노-SDI와 같은 세계적인 회사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유노-SDI의 성장 배경에는 넷플릭스의 후반 작업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라 본다.

2012년 유럽을 시작으로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190개국으로 서비스 국가를 확대한 넷플릭스는 초기에는 남들이 하지 않던 영어 자막을 제외한 타국어에 대한 투자를 하다가, 자막으로 시청하지 않는 일본, 스페인, 남미와 같은 국가를 위해 더빙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 갔다. 넷플릭스가 운영하고 있고, 178개의 넷플릭스 더빙 풀필먼트 파트너가 사용하는 더빙 시스템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만 보더라도 넷플릭스가 얼마나 더빙 콘텐츠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효과적인 보이스 탤런트를 가진 배우들과 경쟁력 있는 가격, 적정한 전달 일정, 그리고 수주 이력이 있어야 오리지널 콘텐츠 수주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인터내셔널 콘텐츠(미국 밖에서 제작된 콘텐츠)의 경우 더빙의 기회를 늘려, 시청자들이 좀 더 다양한 문화권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 고려해야 할 것

그럼 대한민국에서 제작되는 콘텐츠가 모두 기회를 얻을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될 수 없는 것도 이유지만, 이미 제작되고 있는 콘텐츠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갈 수 없는 콘텐츠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당연히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없는 콘텐츠이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콘텐츠 수준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모든 콘텐츠가 해외로 갈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부분이 중요한데, 후반 작업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은 콘텐츠가 생각보다 많아 해외로의 수출의 기회가 열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큰 화제가 된 윤여정 배우의 50년 전 데뷔작이었던 <화녀>를 이야기해보자.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인 <화녀>는 작품의 완성도가 50년 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으로 해외 플랫폼과의 거래를 이루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남아있는 원본 필름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당시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에 출품을 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어 자막을 넣어야 했는데, 당시에 자막을 넣기 위해서는 번인(burn in, 필름을 태워서 새기는 것을 말함)이 되었어야 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번에 50년 만에 재개봉을 했을 때도 파일 자체에 이미 프랑스어 자막이 있는 상태였다. 앞서 이야기한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들의 프로덕션에서 하는 일에 ‘자막 제거’는 포함되지 않는다. 원본 영상이 없다면, 제작·유통하는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이다. 사실 이런 비슷한 일들은 옛날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예능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콘텐츠에 새겨진 자막, 방송사 로고, 프로그램 로고는 글로벌로 가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된다.

파일에 프랑스어 자막이 포함된 영화 <화녀>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의 프로덕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아래와 같은 2가지 항목을 확인해야 한다.

1. 음악 클린 (음악 큐시트, M&E1) 분리, 글로벌 음악 저작권 해결)
2. 영상 클린 (자막, 방송사 로고, 프로그램 삽입 화면 등 해결)

음악의 경우 삽입된 음악의 목록이 없거나 어떤 이슈가 있을지 몰라 플랫폼에서 국내에서만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많고, 혹은 목록은 있으나 M&E 분리가 안 되어있어 음악 저작권을 해결을 할 수 없어서 그 부분이 통째로 삭제 되거나 판매가 안 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게 드라마의 해외 판매가 예능보다 많이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드라마의 경우는 대부분 자체 제작한 OST를 사용하는데, 예능은 트렌드에 민감한 시청자들을 위해 그 시대에 맞는 음악을 사용하다 보니 해외 유통 시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또한 예능의 경우, 각종 자막효과의 위치가 하필 영어 자막이 들어가는 곳이어서 해외 시청자들의 시청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의 경우에도 <펜트하우스>(SBS), <하이클래스>(tvN)와 같이 드라마에서 영어 사용의 빈도를 높이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어, 클린 본이 없다면 이런 부분이 플랫폼의 콘텐츠 품질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뉴 아이디는 SK텔레콤과 이런 프로덕션에 준비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AI Post Production’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해 왔다. 또한 삽입된 효과의 목록이 없거나, 영상 클린 본이 없는 경우에도 클린화 시키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은 한국 콘텐츠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제적으로 이런 투자를 진행한다면, 한국 콘텐츠를 더 많은 플랫폼들과 더 나은 환경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수동적인 글로벌 패키징보다 한 발 앞서 투자한 글로벌 패키징이 한국 콘텐츠산업의 미래를 밝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 소개

  • 김조한
  • 뉴 아이디 공동 창업자, 사업개발 이사. 『플랫폼 전쟁』(메디치미디어)의 저자이며 18년 동안 LG전자, SK브로드밴드, 곰앤컴퍼니 등을 거치며 미디어 전략 및 신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현재 뉴 아이디에서 FAST 기반의 OTT 사업, AI 후반 작업 사업을 개발·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