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Industry & Policy 2

드라마부터 포맷까지,
전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방송콘텐츠

드라마부터 포맷까지,
전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방송콘텐츠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BCWW) 2021’ 참가기

글. 민다현(CJ ENM IP유통해외사업2팀장)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방송영상박람회인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BCWW) 2021, (이하 BCWW 2021)’이 지난 9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그 중 한국 방송콘텐츠 수출협의회 부회장으로 BCWW 2021 기획 자문과 콘퍼런스 세션 좌장을 맡아 진행한 필자의 목소리로,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BCWW 2021은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작년에 이어 2회 연속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음에도 불구, 세계 38개국 바이어와 전시 참가사 160개 기업이 참가하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 마켓에 최적화된 비즈매칭 플랫폼이 제공되어 해외 각국의 바이어와 보다 원활한 온라인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고, 다양한 콘퍼런스와 쇼케이스는 국내외 가장 만나고 싶은 업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전년보다 더 풍부하게 구성되어 다른 해외 마켓과의 차별화를 보여주었다.

  • BCWW 2021 포스터

필자는 현재 CJ ENM 해외사업2팀에서 포맷 및 신시장 해외 유통을 담당하고 있어 BCWW에는 12회째 참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참가 경험을 돌아봐도 이번 BCWW 2021는 ‘Content, Traveling to a New World’를 주제로 온라인 마켓, 콘퍼런스, 피칭 및 쇼케이스, 시상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달라진 한류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보통 마켓에서 유통 담당자들은 부스에서 오전 9시부터 마라톤 미팅을 하느라(사실 첫 미팅은 이보다 빠른 8시 조식 미팅이다) 콘퍼런스를 들을 여유가 없는데, 이번 BCWW 2021는 온라인 마켓이니만큼 콘퍼런스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바이어의 시차에 맞춰 미팅을 진행하느라, -가장 빠른 뉴욕 미팅은 오전 7시, 낮에는 동남아 바이어 미팅, 저녁에는 유럽 바이어 미팅을 하느라- 오히려 하루가 길었지만 미팅 중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콘퍼런스를 보기도 하고, 놓친 콘퍼런스는 추후 BCWW 2021 홈페이지에서 VOD 서비스를 제공해주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에 온라인으로 비대면 바이어 미팅을 진행하고 콘퍼런스에 처음으로 좌장(모더레이터) 역할을 맡아 사회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했던 BCWW 2021의 소회를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세션을 통해 정리해본다.

한국 드라마, 미국 시장의 빅도어를 열다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연락이 왔다. 스튜디오드래곤/스카이댄스가 참가하는 세션의 모더레이터를 맡아달라는 거였다. 스튜디오드래곤의 박현 상무님과는 같은 'CJ 지붕' 안에 있기도 하고 10년 넘게 알던 사이라 흔쾌히 수락했는데, 해놓고 보니 모더레이터는 처음인 데다 생중계라 걱정이 되는 것이다. 긴장하며 생중계 세션을 시작하는데, 박현 상무님과 스카이댄스의 대표 빌 보스트(Bill Bost)가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해주어 모더레이터라는 본분도 잊고 인터뷰 내용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양사는 현재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방법>, <두번째 스무 살> 등 스튜디오드래곤의 여러 작품을 미국을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드래곤에서 드라마를 소개하면 양사는 글로벌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선택하며, 이후 미국을 대상으로 개발 후 현지 네트워크 피칭까지 같이 하고 있다.

박현 상무는 “스카이댄스의 팀은 매우 재능이 있고 열정이 대단하다. 어떨 때는 나보다 우리 한국 드라마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하고, 각색할 작품을 고른다”며 스카이댄스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커 성공적인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빌 보스트 대표는 스튜디오드래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깊이 몰두하게 된다며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고 독특하여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강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빠져들게 한다. 그러면서 글로벌로 통하는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가지고 있어 공감할 수 있고 그게 스튜디오드래곤 드라마가 가진 힘인 것 같다”고 했다.

CJ ENM 드라마 리메이크를 넘어서, 양사는 애플 TV+ 드라마인 <빅 도어 프라이즈(The Big Door Prize)>를 공동 제작하고 있다. 이로써 스튜디오드래곤은 국내 스튜디오 최초로 미국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나선다. <빅 도어 프라이즈>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한 식료품점에서 운명을 예측하는 마법의 기계를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미스터리&판타지 드라마다. M.O 월시(M.O Walsh)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에미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웨스트 리드(David West Read)가 작가를 맡게 되었다. 빌 보스트 대표는 “원작이 좋았고 데이비드의 각색이 너무 훌륭했다. 스튜디오드래곤과 CJ ENM 기반 IP뿐 아니라 조금 더 발전된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어 제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현 상무는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콘셉트가 좋아 공동 제작을 하게 되었다. 작가와 모든 크리에이터 팀이 너무 좋았다”며 미국 시장 진출 시 CJ ENM이나 스튜디오드래곤 브랜드에 매우 좋은 프로젝트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미국 진출을 꿈꾸는 한국 제작진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박현 상무는 “미국 드라마 제작 방식은 한국과 매우 다르다. 미국은 시즌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느껴지도록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토리만큼 확장성 있는 캐릭터의 중요성을 꼽았다. 빌 보스트 대표는 “한국 드라마는 단편적으로 끌어나가는 미국 드라마에 비해 반전과 극적 요소가 많아 관객들을 완벽하게 끌어들인다. 단, 기존의 16회를 8~10회의 미국 드라마 형식에 맞춰 미국 관객에게 전달하는 구성을 짜서 전달해야한다”며 이를 미국 현지화를 위해 꼭 갖춰야 할 점으로 소개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된 한국 예능 포맷

BCWW 2021 첫 날 기조세션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 (Mnet)의 미국판 <I Can See Your Voice> 와 <복면가왕>(MBC)의 미국판 <The Masked Singer>의 현지 제작진들이 나와 ‘K-콘텐츠의 매력과 미래, 그리고 콘텐츠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롭 웨이드(Rob Wade) 폭스 얼터너티브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유럽이나 미국 시장은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한다. 실패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며 “한국 미디어도 비슷할 텐데 이들은 용기가 있어 위험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롭 웨이드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도 가을 미국 출장에서였는데, 아직도 폭스와의 첫 미팅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미팅에는 5명의 폭스 대표, 부대표, 디렉터들이 있었고 해당 출장의 다른 미국 방송사, 스튜디오들과 비교했을 때, 폭스의 모두가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 심지어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각 시즌별 차이점을 다 꿰고 있어 그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2020년 1월 <The Masked Singer> 시즌 1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고 <I Can See Your Voice> 파일럿 제작도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I Can See Your Voice>는 기존에 이미 불가리아를 포함하여 아시아 8개국 등 아시아에서의 성과가 매우 좋은 상황이었지만 북미나 영어권의 판매 성과가 없어 서구권에서 커미션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 북미나 유럽의 제작사와 논의하면 항상 듣는 이야기가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이 한국과 아시아에서 잘된 것은 알겠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무도 안 해서 방송국들이 최초로 시도하기를 우려한다. 어디서든 방영이 되면 알려달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폭스야말로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한국 포맷을 프라임타임에 방영하는 위험을 감수했고, 이런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복면가왕>에 이어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커미션해 좋은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I Can See Your Voice>의 EP(Executive Producer, 총괄프로듀서)이자 <The Masked Singer>의 쇼러너인 크레이그 플래스티스(Craig Plestis)는 <복면가왕>과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얘기하며, 한국에 창조적인 에너지가 많고 한국 프로그램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독특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I Can See Your Voice>를 피칭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코멘트 중 하나는 ‘crazy and unique’였다. 음치가 부르는 노래를 누가 이렇게 즐길 줄 알았을까! 전 세계에 음악 게임 쇼는 수십 개지만 음치가 부르는 노래를 즐기고 음치도 우승할 수 있는 쇼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유일하다. 또한 유명한 가수 혹은 연예인을 복면 뒤에 숨겨 노래 부르게 하는 쇼 역시 <복면가왕>이 유일하다. 워낙 경쟁이 치열한 한국 미디어 환경에서 눈높이가 높은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려, 제작진들이 더 재미있는 쇼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한국은 음악 쇼여도 뭔가 다른 장치를 추가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 보니 ‘crazy’하다는 표현을 들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차별성을 인정받은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두 작품이 미국을 넘어 론칭하는 국가마다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니, 조만간 ‘Crazy Korean Game Show’라는 장르가 새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한다.

요즘 국내외 기사를 보면 심심치 않게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찾을 수 있다. 내년 ‘BCWW 2022’는 2년간의 온라인마켓을 끝내고 많은 국내외 바이어, 방송 관계자, 제작사 프로듀서들을 직접 서울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년 BCWW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기존 방송사 네트워크 중심의 마켓에서 더욱 확장되어, 국내 제작사들과 프로듀서들이 많이 참석하고 그들이 해외 바이어들을 직접 만나는 교류의 장이 더 확대되었으면 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론칭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83개국)에서 1위를 하며 그 인기가 심상치 않다. 해외 유수의 글로벌 OTT와 방송사들이 한국 콘텐츠를 수급하는 것을 넘어, 한국 제작자와 직접 협업하고 한국 콘텐츠를 자사 플랫폼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지만 ‘막상 창작자들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오랜 기간 방송사들의 콘텐츠 수출 교두보 역할을 했던 BCWW라면 충분히 이런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의 많은 제작자들이 세계로 뻗어 나가 ‘NEXT 한류’를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소개

  • 민다현
  • CJ ENM 해외사업2팀 팀장으로 전 세계 포맷 세일즈와 유럽, 남미, 중동 콘텐츠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2010년 CJ ENM에 입사하여, 미주, 유럽, 중국 및 동남아시아, 중동지역에서 드라마 및 예능 작품 판매를 담당하였다. 2015년부터는 예능 포맷과 드라마 리메이크 세일즈를 담당하면서 50개 이상의 포맷 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였다. 대표적으로,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 미국 FOX, 영국 BBC, 독일 RTL 등 23개국 예능 수출, <꽃보다 할배>(tvN) 미국 NBC 등 10개국 수출, 일본 Fuji <미생> 리메이크 수출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