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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진심인 여자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

글. 김윤하(대중문화평론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장르다. 그러나 여타의 서바이벌이 출연자 사이의 대립이나 자극적인 편집으로 구미를 당겼다면,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지점은 따로 있다.

<스우파> 신드롬

TV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 요즘 화제는 단연 스우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Mnet)다. 가장 좋아하는 크루에서 그 날 최고의 무대까지,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화요일 밤 내내 온 SNS가 들썩인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릿 댄스 크루를 찾기 위한 리얼리티 서바이벌’을 표방하며 출발 신호를 울린 이 프로그램은 첫 방송을 시작한 8월24일 이래 비드라마 화제성 1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출연자 순위는 더 대단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10월 2주차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TOP10 순위에 의하면, 10명 가운데 2위를 차지한 <놀면 뭐하니?>(MBC)의 오영수를 제외한 모든 순위가 <스우파> 출연자로 채워졌다. 댄서들에게 안무 시안을 받기 위해 신곡과 함께 등장한 가수 제시가 1위를 차지했고, 훅, 라치카, 홀리뱅, YGX, 프라우드먼 등 출연 크루명과 모니카, 아이키, 리정 등 각 크루의 리더를 맡은 이들의 이름이 이어졌다. 가히 ‘<스우파>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우파>의 이러한 성공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첫 방송 직전 공개된 짧은 예고 영상은, 이 프로그램이 그동안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엠넷식’ 서바이벌 서사로 얼마나 잔혹하고 치열하게 진행될지, 그리고 그 난장(亂場) 안에 내던져진 댄서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동시에 보여줬다. 크루 별로 컬러풀하게 꾸민 아지트, ‘노 리스펙트’를 테마로 삼은 숨 막히는 배틀 무대, 핏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자막까지. 예고편에 욕설을 가리기 위한 음소거 처리가 이어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친 정글 속에서 오로지 빛나는 건, 존재 자체로 언제나 빛나왔던 출연진들이었다.

프로그램 초반 아이돌 출신 출연자나 댄서들의 다사다난했던 과거사 소환에 가려졌지만, 사실 <스우파> 출연자들은 프로그램 우승에 걸린 상금 5,000만 원이나 방송을 통한 인지도 상승 같은 알량한 목표에 목맬 필요가 전혀 없는, 이미 업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 집단으로 꾸려져 있다. 댄서들의 댄서 모니카(프라우드먼), 대한민국 걸스 힙합과 동의어라 해도 좋은 허니제이(홀리뱅), 왁킹의 전설 립제이(프라우드먼), 세계적인 댄스팀 저스트 절크(Just Jerk) 최초의 여성 멤버로 활약했던 젊은 천재 리정(YGX) 등 출연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한국 댄스계의 역사를 짚어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뿐인가. 차세대 댄싱퀸 가수 청하와 2021년 가장 뜨거운 아이콘 에스파의 ‘Next Level’ 등 화제의 케이팝 안무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라치카에서,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스타 댄서 아이키까지. 프로그램에 출연한 50여 명의 댄서들은 모두 춤을 매개로 세상과 호흡하는 데에는 도가 튼 인물들이었다. 분명 여기까지는 평화로웠다. 이들이 모인 곳이 어디인지 알기 전까지는.

여성을 활용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역사

사실 <스우파>는 엠넷이 처음 선보이는 포맷은 아니다. 일반인에서 아이돌 연습생까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역사 속에서, <스우파> 는 일견 엠넷의 <댄싱9>(2013~2015)이나 <힛 더 스테이지>(2016)처럼 춤을 소재로 다룬 프로그램의 뒤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프로그램 구성을 살펴보면 오히려 <언프리티 랩스타>(2015~2016)나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2020) 같은, 서바이벌 가운데서도 여성 출연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해당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여성’들의 ‘거친 싸움’이 주요 테마라는 점이다.

우선 <언프리티 랩스타>를 보자. <쇼 미 더 머니>의 스핀오프를 표방하며 총 세 번의 시즌을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여성 래퍼들의 갈등과 신경전을 주요 서사로 삼았다. <쇼 미 더 머니> 시즌 1의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던 치타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즌 3에 출연해 이슈 메이커가 된 육지담, 아이돌 그룹 AOA의 지민 등 각자의 이유로 서로 대립하기 쉬운 이들을 모아 ‘디스’라는 명목 하에 끝없이 서로를 코너로 몰게 했다. 이 불편한 대립 구도는 후속 시즌을 통해 꾸준히 반복되며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디스 랩’을 중심으로 다루며 출연자 사이의 갈등에 집중했던 <언프리티 랩스타>

출처 : Mnet 공식 유튜브

2020년 방영된 <굿걸> 역시 시작은 <언프리티 랩스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대상을 래퍼뿐만이 아닌 속칭 ‘센 여자’로 넓혔고, 생존이 아닌 ‘플렉스 머니’(상금)를 목표로 한 경쟁으로 출연자들 간의 대립이 아닌 협동을 강조했다. 변화가 시작된 건 그때였다. 무의미한 생존을 위한 불필요한 디스를 필요충분조건으로 요구하던 <언프리티 랩스타>에 비해, <굿걸>은 승리를 위한 출연자들 사이의 협력과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시스터 후드를 프로그램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여느 서바이벌이 그렇듯 처음에는 서로를 견제하고 경계하는 데 힘을 쏟던 <굿걸>은, 크루 탐색전, 베스트 유닛 결정전 등을 거치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화학 작용을 만들어 냈다. 그로 인해 완성된 무대는 아이돌이나 <쇼 미 더 머니> 출신으로 이뤄진 외부의 적을 차례로 물리치며 스스로 성장해갔다.

<스우파>는 앞서 방영된 두 프로그램이 직접 부딪치고 깨져가며 깨달은 교훈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에 출연한 여덟 팀의 댄스 크루는 매 순간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무대에 오른다. 팀별 혹은 개인별로 이루어지는 배틀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을 끊임없이 ‘노 리스펙트’하며 싸우고 이겨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꾸준히 자극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정글 속에서 그러나, 댄서들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세상과 맞서온 무기인 춤을 마지막 승부수로 던진다.

온갖 거친 표현이 오고 가다가도 누군가 무대에서 자신만의 빛을 내는 순간, 출연진들의 눈에 어리는 건 오로지 동료를 향한 존중과 전우애를 담은 눈빛뿐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 어긋났던 인연이 댄스 배틀을 통해 뭉클하게 재회하고, 탈락의 순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거기에 책임을 지고 그 무게를 견디는 게 ‘어른’”이라는 이야기를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는 진짜 어른을 만날 수 있는 사각의 파이트 존. <스우파>가 전하는 꾸밈없는 감동의 순간은 모두 한 치의 거짓 없는 몸의 언어와 그를 삶의 주축으로 삼아 오랜 길을 걸어온 전문 댄서들의 여전히 들끓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온통 흩뿌려진 덫을 피해 도착한 곳에 평화와 승리의 나팔이 울린다. 여기, 그저 춤에 진심인 여자들이 있다고.

필자 소개

  •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케이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하며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출연하고 있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