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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Review 2

<오징어 게임>,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

넷플릭스가 선택한 ‘공정’이라는 매력

글. 임종수(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콘텐츠 속 세계관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만나 이뤄낸 시너지를 들여다본다.

대중매체가 된 넷플릭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관련된 여러 현상을 보노라면 넷플릭스가 마치 대중매체가 된 것 같다. 동시간대에 일방적으로 송출된 방송으로 만들어진 비슷한 생각, 관심, 재미, 의제로 통일된 그런 세계 말이다. <오징어 게임>은 실시간 시청이 아닌 VOD 형식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동시성을 실현해 보이고 있다. 이전의 그 어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도 이런 적은 없었다.

방송의 일방적인 힘이 구현해 내던 ‘텔레비전 리얼리즘’의 세계가 아니라 수용자 개개인의 선택에 의한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를 목격하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OTT는 이른바 텔레비전 특유의 현재성(nowness)이 결여 되었음에도, 수많은 관련 뉴스와 비평, 블로그, 유튜브 클립, 그런 작업물을 실어 나르는 SNS 바이럴 등 미디어와 미디어를 넘나드는 확산가능성(spreadbility)이 어떤 리얼리즘을 실현한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화의 변화를 가리키라면 바로 이런 것일 거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원래 대중적 회자가 힘든 서사극(epic) 형식이다. 서사극은 글로벌 TV로서 넷플릭스가 전 세계 각기 다른 수용자층으로부터 일괄출시를 통한 몰아보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극 형식이다. 황동혁 감독이 10여 년 전에 들었던 말처럼, <오징어 게임>은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맞는 말이다. 원래 서사극이 그렇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어투는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드라마 시장에 심취해 있는 국내 투자자와 제작사, 배급사들의 인식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이곳’의 현실과 동기화된 ‘드라마’이다. 그에 반해 서사극은 이곳으로부터 벗어나 ‘어딘가로 갔다 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는 당연히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국경도 인종도 무관하게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사업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서사 형식이다. 넷플릭스 플랫폼이 취향을 계열화하는 알고리즘에 힘을 쓰는 이유다.

플랫폼, 규칙이라는 적

그렇다고 넷플릭스의 서사극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가서 겪는 사건은 기본적으로 그것을 겪는 주체들의 사회적 또는 역사적 문제인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게임의 세계를 야기하는 이곳의 구조적 힘이다. 그것은 개별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오징어 게임> 주요 인물들의 사연은 이렇다. 쌍용자동차 문제, 묻지마 투자, 북한 이탈 주민, 양아치, 외국인 노동자 등. 이런 문제들은 노사관계, 실업, 민족적 이질성, 생명 경시, 외국인 차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인 부의 양극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규칙’에 의해 규율된다. 현실에서 그것은 대체로 패스와 탈락으로 이분화된다. 이 규칙은 우리나라의 교육, 취업, 복지, 예능 심지어 재난지원금에조차 전방위적으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이 세계는 특정한 규칙과 기준으로 세팅된 플랫폼과 같다. <오징어 게임>의 섬 속 세계는 그런 세계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게임의 규칙에 동의하고 벌이는 패자부활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이 두 세계는 구조적으로 데칼코마니이다. 끊임없이 강조되는 엄격한 규칙과 과정, 공간적으로 분화된 기능과 역할, 게임 참여자는 물론이거니와 운영자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행위규범 등 과장은 있을지언정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이나 섬 속의 세계나 플랫폼을 움직이는 것은 자본의 힘이다. 이 게임의 설계자인 일남 할배는 자신을 “돈을 굴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많은 여운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게임을 통해서라도 사그라지는 기억을 잡고 싶어서였을까? 그와 전 세계 투자자들은 돈의 힘으로 인간을 ‘말’로 움직이는 피의 카니발 플랫폼을 완성했다. 말은 패스와 탈락으로 디자인된 일남 할배의(그리고 우리의) 추억 속 ‘놀이’를 규칙에 따라 재연할 따름이다. 일남 할배의 말처럼, 돈이 많은 사람은 더 이상의 자극을 찾지 못해서, 돈이 없는 사람은 시도해볼 만한 희망의 끈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1회전에서 화들짝 놀라 게임을 포기했던 사람들의 90% 이상이 죽음을 기다리는 게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어머니의 수술비, 빚쟁이의 독촉, 양아치의 칼, 부모의 몸값에 내몰리는 그들의 감정에 이입해보면, 공정하게 규칙화된 플랫폼은 이전의 삶을 리셋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게임의 규칙이 곧 적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알게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공정한 규칙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공정, 가면과 트레이닝복… <오징어 게임>의 콘텐츠 공학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에서 주목한 것은 패스와 탈락으로 이분화된 우리 사회의 규칙, 즉 ‘공정’의 코드이다(<오징어 게임>을 <배틀로얄>이나 <헝거게임>과 비교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의 글로벌 코드화 가능성이다. 넷플릭스가 어떤 서사극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제작된 국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취향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보기에, <오징어 게임>에서 공정은 “지역 관객들이 선호”하면서 “보편적인 매력”을 지닌 것이다. 로컬-글로벌 코드의 결합은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생산함에 있어 일관되게 고수하는 ‘글로벌 콘텐츠 분업화’ 전략의 원천이다. 넷플릭스가 유럽에서는 역사, 남미에서는 범죄, 북미에서는 과학, 그리고 이곳 한국에서는 부조리를 선택한 것은, 적어도 콘텐츠 공학 측면에서 그것이 해당 국가나 문화가 지닌 상대적 강점(?) 또는 차별적 문화 코드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취향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멕시코에서는 <클럽 디 쿠에르보스>와 <언거버너블>, 콜롬비아에서는 <나르코스>, 브라질에서는 <3%>를 제작하는데, 회사는 이들 프로그램들이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약간의 행운을 기대하면 전 세계에 걸쳐 시청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넷플릭스는 지역 관객들이 선호하지만 보편적인 매력을 지닌 범죄, 가족, 사회적 불평등, 축구 등의 주제에 기반한 시리즈를 매우 현명하게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의 시대』, 397쪽)

넷플릭스가 로컬로부터 발견한 코드를 실현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꼼꼼한 공식을 통해서다. 분업화는 기본적으로 안방의 TV가 아니라 글로벌 TV를 지향하는 넷플릭스가 문화 할인(cultural discount)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문화 할인은 특정 서사의 내용이 그것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에 강하게 의존할수록 커진다. 가령 지상파의 일일극은 한국적 맥락을 이해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시청하기 좋지만(요즘에는 그것을 어려워하는 시청자가 무척 많은 것 같다), 외국인들에게는 시청부담이 무척 큰 하이 콘텍스트(high context) 드라마 형식이다. 전통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시청자가 있는 이곳의 현실과 드라마 속 현실을 (비록 과잉 표현되는 부분이 있지만)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극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이다. 오히려 이곳과 다르게, ‘낯설게’하는 것이 미덕이다. 넷플릭스는 서사극 형식 위에 앞서 말한 로컬과 글로벌 코드를 적절하게 배합하는데, 이때 인물은 물론이고 국가, 조직, 기업, 가족 등 서사에 동원되는 각종 요소의 설정이나 역할은 인종, 지역, 문화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적용된다. 이는 로컬로부터 시작된 코드를 로우 콘텍스트(low context)화 하는 전술이다.

<오징어 게임>의 트레이닝복, 직관적인 도형과 가면, 유니폼, 투자자들의 가면, 이동 구조물 등은 그것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로우 콘텍스트 장치들이다. <종이의 집>의 달리 가면과 빨간색 유니폼 또한 그렇다. <종이의 집>에서 허둥대다 못해 서로 대립하는 경찰,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금융당국, 은행 탈취에 오히려 환호하는 군중은 남유럽 국가들의 거버넌스의 한 단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곳의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도록 재처리된 로우 콘텍스트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하우스 오브 카드>로부터 정부와 기업, 법률전문가 등이 벌이는 현대사회의 정치(반드시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닌)의 한 단면을 목격하게 된다. 만약 남미에서 <하우스 오브카드>를 만들었다면, 훨씬 더 폭력적인 세계와 결합된 범죄물이 되었을 것이다. 로우 콘텍스트화를 통해 해당 서사극이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인 매력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물은 콘텐츠 생산의 분업화 전략의 토대 위에 서사극, 로컬과 글로벌 코드, 로우 콘텍스트 등 구체적인 제작 공식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그것이 기여하는 바는 몰아보기와 서사극적 시청(epic viewing) 경험이다. 서사극적 시청은 서사극을 시청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콘텐츠든지 연속적인 과잉 시청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뜻한다. 콘텐츠 산업은 물론 미디어 비평도 <오징어 게임>을 몰아보기로만 봤겠지만, 이제는 서사극적 시청 경험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 효과?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83개국에서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관련 비평이 차고 넘친다. 오늘 아침에는 <오징어 게임>의 배경음악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 기세라면 올해의 핼러윈 코스튬은 단연 ○△□ 가면일 것이다. 동시대의 감성에 이토록 호소했던 OTT 시리즈물이 있었던가?

며칠 전 필자는 홈쇼핑 채널에서 오징어를 구매했다. 여러 채널에서 한꺼번에 팔기에 쫓기듯 지갑을 열었다. 이것도 <오징어 게임>의 리얼리즘 효과인 건가? 이제 곧 도착할 오징어를 씹으며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해 볼까 한다. OTT 서사극이 ‘재시청’(재방송이 아니라)에서 얼마나 많은 보상을 주는지 독자들도 아시리라. 혹시 모르지, 쉬운 게임 위에 복잡한 서사를 위한 뿌려놓은 시즌 1에서 뭔가 큰 떡밥(일남 할배와 기훈의 관계나 공유 또는 이병헌, 걸인을 도와준 이의 실체 같은 것)을 얻을지도.

필자 소개

  • 임종수
  •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세종대 글로벌미디어소프트웨어융합연계전공(GMSW) 센터장, 한국언론학회 방송과 뉴미디어 연구회장. 텔레비전과 일상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텔레비전과 OTT 문화와 제도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