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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의 미래는?

글. 성상민(문화평론가)

지난 2020년 6월 26일은 한국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있어서 무척이나 상징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1999년 9월부터 시작해 족히 20년간 꾸준히 방송을 이어나가던 KBS의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기’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종영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TV 찾지 않는 시청자, 코미디도 변화의 물결

물론 다들 언젠가는 <개그콘서트>가 큰 변화를 겪으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2000년대는 물론, 2010년대 초반까지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던 <개그콘서트>는 2010년대 후반을 맞이하며 서서히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매년 최소 1명 이상은 등장하던 <개그콘서트> 출신의 스타 코미디언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이미 MBC가 2014년 <코미디의 길>, SBS가 2017년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을 폐지하며 코미디 프로그램의 명맥이 사라진 사이, 결국 KBS도 비슷한 길을 가고 말았던 것이다.

대체 2010년대 중후반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랬을까.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한국에서 2016년 넷플릭스를 필두로 글로벌 OTT가 한국에도 속속 서비스를 시작하고, 한편으로는 구글의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욱 맹위를 떨치던 시기이다. 이미 2000년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본격적인 전파와 함께 위기를 맞이하던 TV는 2010년대로 넘어오며 순식간에 힘을 잃고 말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TV 시청률이다. 오랜 시간 ‘드라마 평균 시청률 10%’라는 수치는 시청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수준으로 여겨졌는데, 2021년 현재 ‘드라마 평균 시청률 10%’는 화제의 프로그램임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었다. 10년이 채 안 되는 사이, 관계자나 전문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은 TV 앞을 떠나기 시작했다.

TV를 시청하는 환경이 바뀌자 곧 TV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넷플릭스의 본격적인 한국 서비스 시작은 한국에서 무척이나 변방에 놓여있던 존재였던 ‘스탠드업 코미디’를 다시 주목받도록 만들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이미 이전에도 한국에서 이주일이나 조형곤 등이 자신의 주특기로서 선보였던 적이 있었으며, KBS 역시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총 2개 시즌에 걸쳐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한 <폭소클럽>을 방영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주류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소수의 팬 정도만 알음알음 즐기던 스탠드업 코미디는 넷플릭스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실황 영상을 한국에 속속 서비스하면서 다시 이목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결과 <SNL 코리아>(tvN) 작가 출신의 방송인 유병재, 코미디언 박나래 등이 넷플릭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비록 현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을 닫았지만) ‘코미디헤이븐’을 비롯한 본격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장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KBS도 <스탠드UP!>이라는 제목으로 총 10회에 걸쳐 심야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하기도 했다. <개그콘서트>를 잠정 종영하기 직전인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말이다.

온라인으로 이동한 코미디 콘텐츠

한편 미디어의 중심축이 TV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가며, 유튜브나 트위치를 비롯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한 코미디가 완연한 대세로 등극한 상황이다. 201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MBC 출신의 공채 코미디언 최군이나 KBS 출신의 공채 김대범, 김기열과 같은 코미디언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발굴하기 위해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 바가 있었다. 방송 활동 경력은 제법 길지만 안타깝게도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급속도로 TV 앞을 떠나고, KBS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의 지상파 방송사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코미디의 시도는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는 중요한 움직임이 되었다. 동시에 CJ ENM의 ‘다이아TV’를 비롯한 MCN1) 기업은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이나, 박미선의 ‘미선임파서블’처럼 충분한 방송 활동 경험이 있는 신구 코미디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하며 이러한 흐름에 함께 했다. 한편으로는 송은이가 2015년 설립한 코미디언 중심의 기획사이자 콘텐츠 제작사인 ‘컨텐츠랩 비보’ 같이, TV나 공연, 행사 중심의 활동을 넘어 또 다른 연예활동의 가능성을 만드는 움직임도 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기존의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저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물론, <코미디빅리그>(tvN)나 <SNL 코리아>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송해왔던 tvN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과거에 방송했던 콘텐츠의 아카이빙은 물론, 새로 제작하는 코미디 콘텐츠도 업로드하며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록 큰 관심을 모으지 못한 채 사라졌지만 KBS는 <개그콘서트>를 잠정 종영한 뒤에 유튜브 채널 ‘뻔타스틱’을 개설했고, tvN은 <코미디빅리그>의 ‘오동나무엔터’ 같은 일부 코너의 고수위 콘텐츠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TV 앞을 떠난 코미디 시청자들을 붙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방송사의 이런 시도들을 코미디언 개인 채널이나 MCN과 결합하여 만든 채널의 화제성과 비교하긴 어렵다.

<개승자>는 정말 ‘개그로 승부’할 수 있을까

코미디의 중심점이 이렇게 급격히 TV 밖 온라인으로 이전한 상황에서, KBS는 <개그콘서트>가 부재했던 약 1년 반의 공백기를 지나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한동안은 <로드 투 개콘>이라는 가제로 알려졌던 <개승자: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하 개승자)>가 그것이다. 올해 1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총 4개월간 방송 예정인 <개승자>는 현재 tvN <코미디빅리그>나 폐지 직전의 <웃찾사>가 그랬던 것처럼, 코미디언들이 한 코너마다 한 개의 팀을 결성하여 매주 시청자들의 투표를 받아 대결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연하는 코미디언 역시 <개그콘서트>가 처음 탄생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출연했던 김대희, 김준호를 비롯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박준형, 이수근, 유민상, 변기수, 윤형빈, 박성광, 김원효, 김민경, 오나미 등이 팀장으로 나올 예정이다. 특히 이수근이나 유민상의 경우, 한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떠나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번 <개승자>에 출연하는 의미가 크다.

관건은 시청자의 주목을 얼마나 모으며 화제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2021년 현재, 미디어의 중심은 결코 TV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가 익히 인식하고 있다. 설령 화제가 된다 하더라도, 편성 시간에 맞춰 TV 앞을 사수하는 풍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첫 방송은 TV를 통해 이뤄져도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는 유튜브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비롯한 온라인 SNS 매체를 통해 활발히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승자>는 어떠한 전략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쓸까. <개승자>가 현재 중요하게 표방하고 있는 코미디언들간의 대결 콘셉트는 앞서 언급했던 tvN <코미디빅리그>가 이미 절찬리에 사용하고 있는 포맷이며, 심지어는 이미 완전히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MBC나 SBS에도 시도했던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개승자>에 등장하는 코미디언들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2021년 현재, 예능도 아닌 정통 코미디에서 인기를 얻으리라고 보장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연 <개승자>는 이전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 환경에서 어떤 전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할 것인가. <개승자>의 화제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이전의 명성이나 기존의 성공 사례에 의존하는 형태로는 결코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필자 소개

  • 성상민
  • 만화를 비롯해 영화, 미디어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 대한 평론과 연구를 병행합니다. 동시에 독립적인 만화연구자들의 모임 합정만화연구학회의 회원이자, 방송·미디어 노동인권단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기획차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미디어 오늘에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지금, 독립만화』(한국만화영상진흥원), 참여한 연구로는 「공공상영관 개념화를 위한 기초연구」(2017,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코로나19 문화예술 현장 기록」(2020,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