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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송윤형
주요 경력
2012년 ~ 현재 프리랜서 북디자이너 2005년 ~ 2011년 문학동네 미술부 근무, 팀장 역임
2002년 ~ 2005년 작가정신 근무, 건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2011년 5월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영아티스트 선정
2009년 프로파간다 <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41인> 선정
주요 작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포맷 디자인, 김훈 장편소설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신경숙 장편소설 <리진>, <모르는 여인들>,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황석영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 은희경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외 다수 |

책을 읽고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책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송윤형 북디자이너. 그녀의 손길이 담긴 북디자인은 강하진 않지만 상징적이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디자인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책을 읽을 때처럼 텍스트를 꺼내 차근차근 다시 읽는다는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모든 해답은 텍스트 안에 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디자인 기획회사에서 했어요. 일도 많고 힘들었지만 규율도 꽤 엄격했죠. 일에서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몸도 많이 지쳐서 2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 직장 상사 분께서 작가정신을 소개해 주셔서 북디자인을 처음 접하게 됐죠.” 송윤형 디자이너는 큰 기대 없이 시작했던 북디자인 일이 자신에게 잘 맞았다고 말했다. 책을 만들고 디자인 하는 일에서 재미와 보람도 느껴서 열심히 일하다보니 이제는 프리랜서로서 활동할 만큼 북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키우게 됐다.

▲ 강하진 않지만 상징적이고 깔끔한 느낌의 북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송윤형 북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책의 텍스트를 차근차근 다시 읽는다. 모든 해답은 텍스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디자인 접근방식부터 디자인 회사와는 많이 달라요. 처음에는 저도 어떻게 북디자인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동료 편집자인 선배들에게 일을 배웠어요. 당시 작가정신에서는 최고로 실력을 인정받는 디자이너에게만 외주로 표지 디자인을 맡기고 있었어요. 입사해서 처음에는 표지 디자인을 할 기회조차 없어서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열심히 하게 됐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디자인 일정이 빠듯했던 몇 개의 표지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조금씩 회사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 후, 문학동네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문학, 인문, 어린이 등의 표지와 광고 디자인을 주로 담당을 했다고 말했다. “책의 표지는 독자와 처음 만나는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어요. 디자인을 신선하게만 한다고 해서 회사 내에서 컨펌이 나는 것도 아니고 독자들이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면 오히려 노멀한 느낌에서 한두 가지 정도 포인트만 주어서 그 책의 느낌을 살리는 편이죠.”
예전에는 시안작업을 하기 전에 자료조사도 많이 했지만 오래 시간 동안 일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해결책은 텍스트 안에서 찾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책을 좋아해서 북디자인 일을 시작했지만 원고 상태로 오는 책의 디자인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은 더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발주서에 담긴 요구사항들을 반영해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발주서만으로는 감이 오지 않거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하던 일을 덮어두고 텍스트를 다시 살펴보는 편이죠.”
그렇다고 모든 책들을 정독할 수는 없다. 원고 검토를 하다 정말 흥미를 끄는 책들이 있다면 종종 정독도 하지만 대게는 텍스트 내용을 빠르게 넘기고 읽으면서 포인트가 될 만한 사항들을 찾는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텍스트를 읽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나 상황이 있어요. 그러면 메모해 놨다가 디자인 작업을 위한 소스로 활용하죠. 작업하는 툴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마다 맞는 툴을 선택해서 활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인디자인(Indesign)과 포토샵(Photoshop)으로 주로 작업하고 있는데, 일러스트(Illustrator)는 표지 제목을 디자인할 때 정도만 쓰는 편입니다.”

▲ 책을 좋아해서 북디자인 일을 시작했지만 원고 상태로 오는 책의 디자인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더 없다고 말하는 송윤형 북디자이너의 작품들
일하는 워킹맘, 힘도 들지만 아이는 기쁨이죠
송윤형 북디자이너는 요즘 한 달 평균 3~4권 정도의 북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를 보면서 하는 일이라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가 없이 회사를 다닐 때는 일에 푹 빠져서 지냈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 계속 일 생각만 하면서 지냈죠. 그때그때 달랐지만 한 달 평균 적게는 3~4권에서 많이 할 때는 8~9권을 했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요즘도 육아문제로 늘 시간에 쫓겨서 일하고 있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큰 것 같아요.”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워킹 맘이라 늘 바쁘지만 그녀는 일할 때만큼은 북디자인 작업에 몰입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스케치 작업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정리되면 바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스케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러프하게 스케치 작업을 한 뒤에 컴퓨터로 작업합니다.”
그녀는 프리랜서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힘들거나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월차라도 내서 하루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탈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죠. 하지만 프리랜서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감일이 몰리다 보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여러 개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서 하나를 마감한다고 해도 진행 중인 다른 책이 있거나 새롭게 시안작업을 해야 하는 책들도 있고, 교정을 봐서 넘겨야 하는 책들도 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자신이 어떤 것들을 잘 하고 못하는지 제대로 몰랐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의뢰받는 책들을 보면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됐다. “문학과 인문 외에도 어린이, 자기계발 등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 봤어요. 하지만 문학 분야의 디자인 작업을 할 때와는 톤이나 느낌이 많이 달라서 애를 먹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문학과 인문 쪽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책이 제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북디자인 작업은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좋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라서 좋다고 그녀는 말했다. “디자인 작업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담감도 있지만 반대로 그에 따른 만족감 역시 모두 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북디자인의 매력인 것 같아요.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직장 생활을 오래하면서 편집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이나 북디자인을 대하는 자세 등이 회사에서 일하던 시스템에 몸이 맞춰져 있다 보니 처음에는 프리랜서 일이 조금 힘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1년쯤 지나면서 이제는 제법 프리랜서로서 적응했다고 생각합니다.”

▲ 책을 디자인 할 때는 어떤 책인지, 작가는 누구인지, 작업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을 꼼꼼하게 파악해서 작업하고 있다는 송윤형 북디자이너의 작업실 모습과 그녀가 디자인한 책들
북디자인은 책이 가진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최근 작업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송윤형 북디자이너는 지난해 박완서 작가의 1주기 맞춰 출판된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의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많이 좋아했던 작가이기도 했지만 표지 글이나 추천사를 읽다 보면 그냥 가슴이 먹먹해져서 멍하니 있기도 했어요. 왠지 1년이 지났는데도 마지막이란 단어가 익숙해지지 않더라구요. 그 분의 책 디자인 작업을 하게 되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거든요.”
그녀는 특별히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책마다의 성격과 주어진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책을 디자인하는데 사진이나 그림을 메인 이미지로 사용할지 타이포 위주로 구상할지 혹은 일러스트를 발주할 것인지 출판사에서 보내준 발주서를 읽고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어떤 책인지, 작가는 누구인지, 작업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을 파악해서 고르는 편이죠.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가 서로에게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시안 작업을 하나만 내놓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보통 두세 개 정도의 시안을 만듭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욕심나는 시안이 채택되는 경우는 3분의 1 정도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출판사나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큰 틀이 변하지 않는 한 수정해 달라는 요구는 되도록 들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간혹 클라이언트와 표지 방향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를 만들고 제 생각대로 하나 정도의 시안을 만들기도 해요. 조금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말보다 설득하는데 있어서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지 디자인은 독자와 책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는 이미지만 봐도 느껴져야 하거든요. 책의 내용에 따라 그 감성을 이미지로 풀어주는 게 북디자이너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안 작업을 보여주고 후가공 정도만 참고 사항으로 일러주고 시안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진 않고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그 책이 가진 느낌이 전달된다면 그게 바로 가장 좋은 디자인이기 때문이죠.”
최근 북디자인의 트렌드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한 동안 일러스트, 사진, 캘리그라피 등 한 가지가 유행하면 모두 그 쪽으로 쏠리는 일이 많았고, 어떤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좋다고 하면 또 그 쪽으로도 쏠리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북디자인의 트렌드보다는 출판계의 콘텐츠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시장을 이끌고 있어요. 출판사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책 위주로 출판을 하다 보니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지 못하기도 해서 어떨 때는 그 책이 그 책 같단 느낌도 들어요.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북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져서 한편으로는 자극도 되지만 기쁘기도 합니다.”

▲ 발주서만 보고 일하기보다는 텍스트를 읽고 자유로운 발상을 해보면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송윤형 북디자이너의 작품들
오래 같이 일할 수 있는 디자이너고 싶다
송윤형 북디자이너는 앞으로 더 다양하고 독창적인 북디자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북디자인 작업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 요령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겉모습만 비슷하게 만들다 보면 자기가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고 디테일하게 들어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또 발주서만 보고 일하기보다는 텍스트를 읽고 자유로운 발상을 해보는 것이 좋아요. 가끔 텍스트로 인해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책을 읽지 않고 디자인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유명한 북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오래도록 같이 일하는 좋은 파트너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송윤형 북디자이너
북디자이너들 중에는 전공자 못지않게 비전공자들도 많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대학에서 디자인과를 나와서 북디자인을 하다 보면 지나치게 비주얼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어요. 책을 디자인한다면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오히려 인문이나 문학을 전공하고 스킬이나 감각을 키워서 북디자이너가 된 분들이 텍스트를 소화하고 디자인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더 좋은 경우도 많이 보았어요. 저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은 되도록 많은 텍스트를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그녀는 신경숙, 박범신 작가의 소설 외에도 몇 가지 책들을 진행 중이다. “올해는 문학, 인문 분야에 좀 더 치중할 생각입니다. 이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북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있도록 힘쓰고 있어요. 많은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제가 좋아하고 제 성향에 맞는 북디자인으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름이 나는 유명한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오래 시간 같이 일하면 좋은 파트너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