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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지식

전문가칼럼

[인터뷰] 끝없는 이야기를 전하는 한국인 작가 트레이시 임
  • 분야 일반
  • 등록기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게재일2023-03-15 00:00
  • 조회232
  • 수집일해당 지원사업은 2023-03-12 15:03 에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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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미술 잡지에서 한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바로 트레이시 임(Tracy Lim) 작가이다. 그녀는 스위스 현대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교포이다. 당시 스위스 남부 발리스(Wallis, Valais)의 한 작은 마을을 그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했고 큰 화제로 떠오른 상태였다. 스위스인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발리스주의 높은 산 밑에 위치한 작은 마을 치피스(Chippis)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화 휴양지로 유명한 그랑몽타나(Crans-Montana)에 비해 조용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궁금증을 가진 그녀는 이 마을을 소재로 작품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을 주민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 지도를 재구성해 소개했다. 잊혀졌던 치피스는 한국인의 손에서 재탄생돼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신원은 트레이시 임 작가를 만나 그녀의 작품 활동에 대해 알아봤다.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de Chippis)' 설치 작업, 181cmx1000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de Chippis)' 설치 작업, 181cmx1000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는 조형예술학부 동양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모가 계신 스위스를 여행하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돼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발리스주 미술학교 ECAV(Ecole de design et haute école d’art; 현재는 EDHEA로 명칭 변경)에서 공공영역의 미술조형(Art in public sphere) 석사과정을 마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 장지에 펜 설치작업, 181cmx2000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 장지에 펜 설치작업, 181cmx2000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작가님의 데뷔작이자 뜨거운 호평을 받은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습니다.
대학원이 씨에르(Sierre)에 있던 관계로 치피스(Chippis)에서 거주했는데요. 산책을 하던 중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을 곳곳에 오랫동안 손이 닿지 않은 낡은 건물들이 즐비했고 커다란 공터들은 무성한 잡초들로 메워져 있었습니다. 주민센터조차 제대로 열지 않아 마치 유령 마을이라고 해도 될듯한 그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론강(Le Rhône)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씨에르와 치피스의 경계를 구분하는데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미국의 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조지워싱턴브리지(George Washington Bridge)'의 느낌을 받아 그 마을에 애정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원 연구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을을 소재로 작품을 해보고자 주민들을 하나둘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자리가 많이 없던 1910년 경 취리히에 본사를 둔 알루미늄 생산 공장이 이곳에 세워지면서 많은 인구의 유입이 있었습니다. 당시 공장 직원은 1만 5천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고 유동인구로 마을도 북적였다고 합니다. 취리히 본사가 직접 교회, 학교, 집, 우체국 등을 건설했기에 건물들은 취리히 스타일을 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공장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자 거주자들도 하나둘씩 떠나 2020년 기준 1,6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50년 전과 변함없는 수치이며 당시 노동자들의 2, 3세대 후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50여 명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저마다 지닌 '오랄 히스토리(Oral history)'를 저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마을 지도를 작업했습니다.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 리맵핑, 142cmx152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 리맵핑, 142cmx152cm - 출처: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펜으로 한지를 겹쳐 만든 장지 위에 마인드 맵 형식으로 리맵핑(Re-mapping)했어요.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 건물들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의 마을 모습이 커다란 장지 위에 펼쳐집니다. 끝없이 이어지듯 병풍 형식으로도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당시 마을 소개 프로젝트로 이어져 마을 곳곳에 전시됐습니다. 또한 작품에 그려진 건물과 마을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실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미지 3D-뷰마스터'도 함께 제작해 선보였습니다. 스위스 젊은 예술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상(2014 Prix fondation Bea pour jeunesartiste)을 수상하면서 여러 미디어에 실려 스위스 전역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치피스의 패시지(The passage of Chippis )'는 칸톤발리스주 외에도 베른툰예술박물관(Kunstmuseum Thun), 발리스주의 미디어센터(Médiathèque Valais), 마티니 르 마누아르(Le Manoir, Martigny) 등 스위스 여러 곳에 전시한 바 있습니다.

사실 치피스는 위키피디아에도 소개되지 않는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입니다. 작업하면서 제 나름대로 조사도 많이 한 터라 칸톤발리스주와 스위스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후손을 위한 중요한 무형문화재로 가치를 평가받아 칸톤발리스주 문헌 자료로 등록됐습니다. 작품의 일부는 현재 스위스 정부의 아카이브 보관소와 공공 도서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 140cmx100cmx6cm - 출처: 오메르재단 제공
<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 140cmx100cmx6cm - 출처: 오메르재단 제공 >

작품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2020년 코로나19 때부터 작업하고 있습니다. 장지에 동양의 채색화 기법으로 그려낸 한국의 꽃 코스모스라고 보시면 되는데 큰 캔버스를 이용해 가로 10미터 벽면에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제게 코스모스는 어릴 적 추억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께서 코스모스 씨앗을 심으셔서 저희 집 정원에는 한국의 코스모스가 늘 피어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과 한국을 거쳐 현재는 스위스에 터를 잡아 거주하고 있습니다. 가을 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코스모스의 모습이 저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사용하시는 기법이 유럽에서의 화법과는 다른 동양의 채색화라고 하셨는데요.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장지를 물에 적셔 햇빛과 바람으로 말린 후 아교칠로 덧발라 장지가 빳빳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합니다. 장지를 손으로 쳐서 장구 소리가 나면 종이가 준비됐다는 신호입니다. 이후에는 분채를 사용해 색을 맷돌에 갈아 채색하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크기가 큰 작품을 하기도 하고 작업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어서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채색화는 유럽인들에게 이색적이기에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 140cmx100cmx6cm - 출처: 오메르재단 제공
<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 140cmx100cmx6cm - 출처: 오메르재단 제공 >

작가님은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으신가요?
'이야기는 계속된다.'가 주요 모티브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에 굉장히 매료돼 있습니다. 이민자의 삶을 반영해 보고 싶어 작업했던 코스모스 시리즈에 이어 차가운 눈 속에서도 추위라는 역경을 이기고 꿋꿋이 피어나는 '설강화(Snowdrop)'를 소재로 작업 중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의 철학과 닮아있기에 작품으로 담고 있습니다. 꽃은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성장, 변화, 적응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저의 소재입니다. 저의 다문화적 정체성, 이민자의 경험이 작품에서 표출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옥션 크리스티스 파리(Auction Christie's à Paris)'에 출전하시는 것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7월 옥션 행사에 '꽃이 필 때면(When the flowers bloom)' 중 몇 점이 출전할 예정입니다. 유럽에 기점을 둔 오메르재단(Omère Foundation)은 옥션에서 판매한 수익금으로 아픈 이들을 돕거나 노약자들에게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기부 재단입니다. 재단 창립자 압둘라 알 거그(Abdulla Al Gurg) 씨는 그동안 사업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으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예술 분야로 활동을 전환하셨는데요. 특히 유화에 이끌려 몰입하게 됐고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압둘라 알 거그 씨는 감각을 활용하지 않고 그 배후에 이는 감정을 작품 '빛과 진실(Light and truth)'에 표현했습니다. 저와 압둘라 알 거그 씨를 포함한 몇몇 작가가 옥션 행사에 출전할 계획입니다. 수익금이 좋은 곳에 쓰인다니 저에게도 뜻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좌)트레이시 작가와 압둘라 알 거그, (우)'빛과 진실(Light and Truth)', 50cmx70cm - 출처: (좌)오메르재단, (우)압둘라 알 거그 제공
< (좌)트레이시 작가와 압둘라 알 거그, (우)'빛과 진실(Light and Truth)', 50cmx70cm - 출처: (좌)오메르재단, (우)압둘라 알 거그 제공 >

앞으로 전시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재 두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데 칸톤보(Canton Vaud)의 애글(Aigle)에 위치한 에스파스그라펜리드갤러리(Espace Graffenried Gallery)에서 '꽃이 필 때면(Whenthe flowers bloom)' 개인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또한 칸톤발레주(Canton du Valais) 마누아르박물관(Musée de Manoir)에서 여러 작가들과 그룹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기회로 한국에서도 저의 작품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출처

  • - 트레이시 임 작가 제공
  • - 오메르재단 제공
  • - 압둘라 알 거그 제공

참고자료

통신원 정보

  • •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 •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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