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케이팝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옛 한국이었다
나는 소위 한류에 대한 애정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이 아니다. 미국에 살 때 처음으로 내 흥미를 끈 한국 문화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베이비복스의 노래 몇 곡을 다운받아 16살 생일 선물로 받은 초기형 MP3 플레이어로 듣곤 했지만, 결국 케이팝 팬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어도>나 <칠수와 만수> 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한국 영화를 꽤 많이 보고 좋아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 살면서 그 동네의 옛날식 간판과 식당 분위기를 즐겼다. 당시 나는 한국을 직접 가 본 적이 없었지만, 옛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날마다 커지고 있었다.
응답하라 1988 X(구 트위터) © tvN
물론 한국 역사를 더 깊이 배울수록 1970년대와 1980년대가 21세기보다 얼마나 살기 힘든 시대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군부독재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옛날 한국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매력을 느꼈다. 한국에 살면서 발견한 문화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가운데에는 유재하의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나 김수근 건축가의 건물들처럼 오래된 것들이 적지 않다. 지난 4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다방을 볼 때면 들어가서 쌍화차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영화 <칠수와 만수> 스틸컷 © 한국영상자료원 공식사이트
<응답하라 1988>은
외국인을 가장 덜 겨냥한 드라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나에게도 <응답하라 1988>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역설적이게도 이보다 외국인을 덜 겨냥한 드라마를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달리, <응답하라 1988>은 한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국경을 넘는 데가 있다면, 그것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골목 하나를 함께 쓰는 사람들 사이의 소란과 체면과 서운함이 어디에서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주한 바로 그해에 방영된 이 드라마를 당시에 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즐기려면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여러 방면으로 알아 온 시간이 적어도 10년은 필요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 X(구 트위터) © tvN
그동안 내가 맡았던 작업 중에는 2010년대에 유행한 뉴트로 현상을 다룬 『Korean Newtro: Where Youth Meets Tradition』이라는 책을 쓰는 일도 있었다. 영어로 쓴 그 책에서 나는 2012년에 시작된 ‘응답하라 시리즈’를 뉴트로의 선구자로 묘사했다. 그 시리즈의 첫 작품인 <응답하라 1997>을 통해 한국 대중이 최근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향수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했던 1997년이 실제로 좋은 시절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한국인이 과거를 벗어나야 할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다시 발견할 만한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독재 시대나 IMF 외환위기를 직접 겪지 않은 이들에게 한국의 과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새롭게 느껴질 수 있었다. 2015년에 한국으로 이주한 나의 입장도 어쩌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스콘신의 시트콤도
‘이웃’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그리고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 말, 나는 매주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 시트콤 <요절복통 70쇼(That '70s Show)>를 보곤 했다. 1998년에 시작해 8년 동안 이어진 이 시트콤은 종영한 뒤에도 재방송과 스트리밍으로 계속 소비되었고, 2023년에는 같은 동네의 다음 세대를 그린 후속작까지 만들어졌다.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1970년대는 디스코 음악과 요란한 패션, 구식 비디오게임의 시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절복통 70쇼>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십대들과 그 부모들을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다 보면 그 시절이 1990년대보다 낫지 않았을까 생각될 때도 있었다. 위스콘신주 한 소도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서로를 알고 도와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응답하라 1988> 역시 첫 회부터 주인공인 고등학생들이 사는 쌍문동 골목길을 그런 공동체로 그린다.
© 유튜브 채널 ‘Funniest TV moments’ <Top 20 Funniest That 70s Show Moments> 영상 갈무리
두 작품이 닮은 것은 무엇보다 사람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양쪽 모두 몰려다니는 다섯 명 남짓의 10대 무리가 있고, 그 뒤에 늘 티격태격하는 부모 세대가 있다. 아이들은 친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부모들은 서로의 살림 사정을 다 알고 있다. 우정과 가족이 따로 놓이지 않고 한 덩어리로 굴러간다는 점에서 위스콘신의 지하실과 쌍문동의 골목은 같은 자리에 있다. 옛날에는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요즘과는 달리 언제든 이웃에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 유튜브 채널 ‘Funniest TV moments’ <Top 20 Funniest That 70s Show Moments> 영상 갈무리
아마도 그런 사회를 그려내기 위해 <응답하라 1988>의 제작진은 쌍문동을 배경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지루한 시골로 여겨지는 위스콘신주는 한편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진짜 미국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쌍문동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것이 하나도 없고 특별히 부유하지도 극빈하지도 않은 이 동네는 전형적인 한국 중산층 동네를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높은 건물에 밀려나지 않은 골목이 곳곳에 남아 있어, 걸어 다니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처음 답사할 때 나는 한두 번쯤 드라마 속 가족들이 사는 골목을 실제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와 집 앞 골목 등 여러 주요 공간이 인천에서 촬영되었으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된 <요절복통 70쇼>와는 만드는 방식부터가 달랐던 셈이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그리움을 서로 다른 문법으로 빚어냈다는 것이 보인다. <요절복통 70쇼>는 벽 하나를 터놓은 세트와 방청객의 웃음소리 위에서 굴러간다. 한 회 단위의 소동이 중심이어서 비교적 어느 회부터 보더라도 따라가기 쉽다. 반면 <응답하라 1988>은 스무 회에 걸쳐 한 골목의 시간을 통째로 흘려보낸다. 웃음소리 대신 어른이 된 인물의 목소리가 얹히고, 그 목소리는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을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만든다. 미국 시트콤이 매주 돌아갈 수 있는 놀이터를 지었다면, 한국 드라마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지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방식이라기보다, 두 작품이 사람 냄새 나는 향수를 다루는 문법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쌍문동과 까치산,
골목이 담아온 사람의 온기는 닮아 있다
서울 반대쪽에 있는 내가 사는 까치산에서 쌍문동까지 지하철로 가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그러나 높은 아파트 단지가 없고 벽돌집과 철문, 복잡하게 얽힌 전선이 많은 쌍문동의 골목길은 내가 생활하는 까치산의 골목길을 연상시켰다. 두 동네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두 1960~70년대에 ‘서울화’된 변두리라는 점에서 닮았다. 쌍문동과 마찬가지로 까치산도 주요 기업의 본사나 문화시설은 거의 없지만, 일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늘 북적거린다. 남녀노소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쌍문시장이나 까치산시장을 걷다 보면,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낸 공동체 정신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에게 이런 동네들은 특별할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나는 이곳들에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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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태어난 우리 아들과 딸(이란성 쌍둥이)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평범한’ 마을 같은 대도시 동네에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물론 좋든 나쁘든 두 아이의 인생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덕선, 정환, 선우, 택이, 동룡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아빠인 내가 1990년대 미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도 분명히 많이 다를 것이다. 인터넷은 존재했지만 SNS는 없었고, 지금처럼 온갖 위협과 불안을 실시간으로 접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전성기처럼 느껴진다. 그때 가족과 함께 보곤 했던 <요절복통 70쇼>의 후속작 <90년대 쇼(That '90s Show)>도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나는 언젠가 우리 아이들과 <응답하라 2026>을 함께 볼 수 있을까? 그것이 까치산을 배경으로 한다면 더욱 기대될 것 같다.
콜린 마샬 (Colin Marshall)
서울에 10년째 거주하며 도시와 문화, 언어를 주제로 글을 쓰는 미국인 에세이스트. 2015년 한국으로 이주한 이래, 변화하는 한국 사회와 일상의 맥락을 깊이 있게 탐구해 오고 있다. 〈뉴요커〉,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세계 유력 매체와 국내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팟캐스트 진행자 및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대표 저서로 3,650일간의 서울 체류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 『한국 요약 금지』(2024)와 『Korean Newtro: Where Youth Meets Tradition』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