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다시 등장한 Y2K -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복고 열풍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최근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신드롬까지. 과거의 콘텐츠가 현재로 소환돼 인기를 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어떤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복고 트렌드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20~30대는 과거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즐기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덧입혀 더욱 풍성한 복고로 확장하기도 한다.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긴다는 의미에서 ‘뉴트로’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어 진로 소주가 과거의 디자인으로 다시 출시됐는데, 옛날 그대로가 아니라 ‘초 깔끔한 맛’이라는 젊은 세대 감각의 B급 언어가 추가됐다.

싹쓰리를 내세운 <놀면 뭐하니?>는 프로그램 속에서 90년대 콘텐츠를 계속 노출시킨 점에선 복고이지만, 옛 노래를 그대로 쓰지 않고 그 시절의 분위기를 차용하되 현대화한 신곡을 발표했다는 점에선 뉴트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복고와 뉴트로는 서로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고 업계에서도 이 두 개념을 혼용하는 분위기다.

ⓒ 클루리스

밀레니엄 버그 아닙니다

최근 이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복고 트렌드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Y2K’다. Y2K에서 Y는 연도(year), K는 1000을 뜻하는 킬로(kilo)를 의미한다. 즉 2000년이라는 뜻인데 1999년에는 밀레니엄 버그(millennium bug)라는 뜻으로 쓰였다. 1999년까지는 연도를 표기할 때 끝 두 자리만 썼는데, 이 때문에 컴퓨터가 2000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오류가 나타난다는 것이 밀레니엄 버그였다. 컴퓨터는 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엄청난 일들이 터질 거라는 공포도 커졌다. 발전소 가동 중지부터 핵미사일 발사설까지 제기됐다.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1999년 12월 31일 12시에 집에서 재난 사태를 대비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 소동극은 그룹 Y2K와 복고 트렌드 Y2K를 남겼다. Y2K를 복고 트렌드로 호명한 이들은 이른바 Z세대다. 1995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 경에 태어난 이들이 바로 Z세대인데, 바로 그 젊은 세대가 자신들만의 복고로 Y2K를 선택한 것이다.

Z세대가 선택한 Y2K

Z세대가 호출한 Y2K는 바로 2000년 전후의 미국이다. 그 중에서도 그 시기에 나온 미국 하이틴 영화로 한정된다. 한국인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문화, 그 당시 국내에서 히트하지 않았던 영화들, 심지어 미국에서도 일반적 문화가 아니었던 특수한 영화의 분위기를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호출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떠오른 작품은 1996년에 국내 개봉했던 <클루리스>다. 90년대 영화이지만 최근까지 관람평이 올라오는데 ‘예쁘다’, ‘사랑스럽다’, ‘패션 센스가 대박’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영화는 부유층 자녀들의 학교에 다니는 여주인공의 생활을 보여준다.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재벌은 아니고, 중상층 정도라면 공감할 수 있으나 서민은 확실히 아닌 그런 소비문화가 화사하게 펼쳐진 영화다.

ⓒ <그때, 그 시절 언니들의 하이틴(playlist)> youtube

Y2K가 뭔데?

Y2K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예쁘고, 화사하고, 화려하다. 화려하다고 해서 눈부시게 반짝반짝하거나 강렬한 걸 추구하진 않고 파스텔톤의 분홍, 보라 또는 적당히 알록달록한 분위기를 선호한다. <클루리스>의 옷들이 딱 그렇다. Y2K 스타일을 주로 출시하는 패션브랜드도 생겼다.

‘스꾸’(스티커 꾸미기)도 유행이다. 2000년대에 서양에서 인기를 끌었던 ‘파워퍼프컬’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이 스티커의 소재다. 다양한 아이템을 스티커로 꾸미고 자신의 사진에 스티커 이미지를 합성하기도 한다.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이 최근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케이스 ‘스꾸’가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Y2K는 음악에도 나타난다. 유튜브에서 Y2K 시절의 미국 노래를 모은 ‘하이틴 플레이리스트’가 인기다. 음악 큐레이션 콘텐츠로 유명한 떼껄룩의 ‘하이틴’과 할미의 ‘뭐라고 제임스조지크리스?’ 플레이리스트는 조회수 100만을 넘겼다.

다양한 이미지가 콜라주된 듯한 느낌도 유행이다. 90년대 하이틴 영화를 보면 좋아하는 스타나 사물의 수많은 사진들로 캐비닛 한쪽 벽면 전체를 뒤덮은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Y2K 분위기를 즐기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왜 Y2K인가

Y2K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키치하고 밝고 재미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키치는 원래 싸구려,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이었는데, 고급스러운 예술 작품처럼 우아하고 진지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볍고 상업주의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됐다. 대중문화적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키치의 특징이어서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감성과 잘 어울린다.

재미지상주의 속에서 모든 것은 유희가 된다. 가수 비의 ‘깡’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비난하는 분위기였지만, 이것이 점점 유희가 돼가면서 비난의 강도가 약해지고 나중엔 비 본인을 비롯해 수많은 누리꾼들이 일제히 즐기는 초대형 놀이로 승화했다. 펭수 신드롬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뻔히 알지만, 시침 뚝 떼고 진짜 펭귄이라며 놀이를 즐겼다. 그런 식으로 마치 미국의 2000년 전후 시기 하이틴 문화를 자신들이 직접 겪은 것처럼 가상의 추억 유희를 벌이는 것이다.

인터넷에선 다양한 콘텐츠가 시기 구분 없이 동등하게 등장한다. 그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 트렌드로 만들 것인지는 수용자의 선택에 달렸다. Z세대는 개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유행에 극히 민감하다. 일과 시간 중 41%를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데 쓰며, 디지털로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얻고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개성도 디지털 유행을 통해 표출한다. Y2K를 선택한 Z세대가 앞으로 어느 시기의, 어떤 콘텐츠를 선택하여 트렌드로 만들지 기대된다.

ⓒ ATCmemes.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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