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CCA N 인터뷰 1

1시간을 10분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
오에이치스토리 손옥현 대표

글 권라희 사진 김성재

오랜 시간 방송 제작 현장을 누비며 탄탄하게 이력을 쌓아온 그는 이제, 드라마 환경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카이로스>의 제작사 오에이치스토리의 손옥현 대표를 만나봤다.

울림과 에너지, 카타르시스

Q 손옥현 대표님 반갑습니다. 웰메이드 드라마 <카이로스>. 뛰어난 스토리와 연출력, 배우들의 열연까지 칭찬이 자자했어요. A 시청자 여러분의 무한한 애정 덕분에 힘내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카이로스>는 오에이치스토리가 제작한 대표작이 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는 울림과 에너지,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드라마였다’라는 시청자의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카이로스>는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나요? A <카이로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매회 엔딩이 강렬했고 반전이 거듭되는 예측 불가한 전개에 매료됐죠. 이 작품은 꼭 드라마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 만큼이었어요. 특히 극중 시간차 설정을 이전 대본의 ‘1년’에서 ‘1달’ 차이로 짧게 변경하면서 극적 긴장도가 높아졌습니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제작에 탄력을 받았죠.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포스터 ⒸMBC

Q 타임크로싱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카이로스>는 현재와 과거로 분리된 시간대의 극중 인물들이 소통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이미 벌어진 비극을 되돌리려 하죠. 이수현 작가님의 기획 의도가 이것이었고, 동일한 극중 인물이 다른 시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여타 기존 타임 슬립 장르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극중 인물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선택의 과정에서 매회 새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시간물에서만 가능한 극적 위기와 갈등, 예측 불허의 반전이 일어나면 시청자에게 스릴 넘치는 재미를 선사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 이수현 작가님과 박승우 연출가님 모두 드라마 <카이로스>가 입봉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나요? A 대본과 연출을 책임질 작가와 연출가는 작품의 근간과 같아서 정말 중요하죠. 두 분은 제게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이수현 작가님은 필력뿐 아니라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셔서 제가 완전 반했습니다. 치밀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대본을 받을 때마다 감탄했고 또 설레였어요.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좋았습니다. 박승우 감독님은 공동연출 경험도 많으시고 유쾌한 성격이셔서 함께하면 즐거웠습니다. 드라마 <W>, <파수꾼> 등을 통해서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는 연출가로 이름나셨죠. 특히 장르물에 대한 열정이 넘치셔서 기발한 아이디어도 많이 내시고, 섬세하고 정확하게 콘티를 짜셔서 모두가 믿고 따르게 됐어요. 선장 역할을 잘해주신 두 분 덕분에 제작자로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Q 배우진의 활약도 화제였어요. A 배우진 모두가 매 장면에 열연을 펼치고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셨어요. 지난해 MBC 연기대상에서 <카이로스> 배우진의 수상 소식이 잇따라서 제작자인 저도 너무나 기뻤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 연기하시는지를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신 신구 선생님, 청순가련형 소시오패스를 연기해 놀라움을 준 남규리 배우, 지독하게 슬픈 사랑을 표현한 안보현 배우,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이면서 카메라 앞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 이세영 배우, 극중 김서진 그 자체였던 신성록 배우가 포진해주었기에 <카이로스>가 시청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Q 특히나 스태프와 배우진의 노고로 완성된 장면을 꼽는다면? A 서진의 딸이 유괴되는 호텔 콘서트홀 장면이 특히 힘들었어요. 일반적으로 고급 호텔은 섭외도 힘들고 장소 대관비와 세팅비가 매우 많이 들어요. 어렵사리 호텔을 섭외하고 촬영 일정도 확정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죠.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격상되는 시점이었어요. 무기한으로 촬영을 미루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잠시 완화된 시점에 스태프진이 재빨리 움직였어요. 호텔 측에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촬영 시간을 최소화하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촬영을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 스태프와 배우진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사실 대본상으로는 최소 3일은 찍어야 하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카이로스> 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죠. 하루 만에 수많은 분량을 소화했고 그럼에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스태프가 촬영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며 만반의 준비를 했고, 배우들도 NG없이 열연해 준 덕분에 완성된 장면이었습니다.

Q <카이로스>의 장면을 보면 후반 작업에도 공력을 많이 쏟아야 했을 것 같아요. A 음악과 음향효과, CG와 색보정 등 모든 후반 작업에 공력을 쏟았죠. 특히 장르물이라서 매회 모든 장면에 CG효과가 없으면 완성이 불가능했어요. 사실적이면서도 극적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극중 시간대를 화면의 컬러 톤으로 구별했는데, 서진 시점의 미래는 차가운 블루 톤이고, 애리 시점의 과거는 부드러운 앰버 톤이에요. 극 후반이 될수록 색 대비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상의 퀄리티로 작품이 완성됐고 매우 만족합니다.

Q 최근 드라마 제작비가 수백억 대에 이른다고 하는데, <카이로스>에서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든 장면은 무엇인가요? A <카이로스> 5회 #47,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씬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건설 현장 붕괴 당시, 서진과 함께 매몰되었던 애리 아버지와의 인연을 보여줍니다. 애리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통해 미래 시간을 사는 남자 서진과 과거 시간 속 여자 애리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핵심적인 장면이죠. 극적 설정을 시청자에게 설득시키고 이후 이야기가 풀어지는 지점이라 스태프와 배우진이 신경을 많이 썼고, 저 또한 제작자로서 중요한 장면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제작비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극적 효과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고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년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카이로스>의 완성도를 높여 좋은 성과를 얻었고 다음 작품을 기획할 수 있는 발판도 만들어졌습니다. 오에이치스토리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형태로 운영되어 자금력이 높은 대형 제작사에 비해, 소규모 제작사에게는 제작지원이 큰 힘이 되거든요.

Q <카이로스>를 제작하면서 늘 강조하고 지키려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드라마는 분야별로 다른,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이기에 서로 간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강조합니다. 각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 결과적으로도 좋은 작품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진행했습니다.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 교육 후에 촬영을 진행하고, 촬영 장소와 시설도 철저히 소독해서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드라마를 제작하느라 힘들었지만, 늘 웃음이 가득하고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면서 진행된 촬영 현장의 분위기에 힘이 났습니다. 그게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네요.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촬영 현장 Ⓒ오에이치스토리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게

Q 오랫동안 드라마 제작 일을 해오셨지요. 드라마 제작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A 제작자는 드라마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 전반에 걸쳐 참여하고 통솔합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분야별 원작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를 얻는데 집중하고, 작품이 결정되면 작가를 섭외하고 기획안과 대본이 완성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요. 제작 단계에서는 방송사 편성과 제작비 조달을 위한 각종 협의를 합니다. 또한 스태프 구성과 배우 캐스팅의 방향을 잡으며 제작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요. 마케팅 단계에서는 작품 수출을 위해 해외 바이어와 만나 홍보 활동을 하고, 제작지원 PPL을 유치하기 위해 광고주와 대행사 관계자를 만나 각종 논의를 진행합니다. 제작자는 드라마의 전후에서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게 많은 것들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습니다.

Q 일을 시작하신 때와 비교해 제작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A 방송 3사 외에 케이블과 종편 채널도 생겼고 편성도 탄력적으로 함으로써, 여러 측면에서 달라졌습니다. 대본을 최소 50%이상 완성한 후에 촬영을 시작하고, 스태프의 주52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진행합니다. 제가 방송 일을 2006년에 라인프로듀서로서 시작했는데, 예전에는 쪽대본은 물론이고 1주일 내내 밤을 새고 방송 당일까지 촬영을 하는 경우가 흔했어요. 시청률을 높이려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다음 회차의 내용을 바꾸는 관행 때문이었죠. 달라진 제작 환경으로 인해 제작비용이 상승하는 요인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삶의 균형을 맞추어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Q 제작자로서 OTT에 대한 입장과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요? A 이제는 OTT가 콘텐츠 소비의 한 축이 되었기에 대중적 선호도 크게 달라졌다고 봅니다. OTT플랫폼은 제작비 지원과 투자를 충분히 하면서도 높은 판권료를 제시하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시도할 수 있고 안정적인 제작 환경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 오에이치스토리도 OTT오리지널드라마 제작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OTT환경에 특화된 창작 집단을 만들 계획도 세웠습니다. 스타작가의 역량에만 의존해 드라마를 제작하는 구조를 벗어나, 창작 작품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개발하며 신인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합니다.

Q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으신가요? A 오는 7월 KBS에서 방송할 <빨강 구두>를 제작 중입니다. 이 작품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병든 남동생을 외면한 채 사랑과 욕망을 찾아 떠난 비정한 엄마와 복수를 꿈꾸는 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매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명길 배우님의 활약과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소이현 배우님의 열연이 있는 이 작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손옥현
오에이치스토리 대표. MBC <카이로스>를 제작했다. MBC <신과의 약속>, MBC <내 딸, 금사월>, KBS <뻐꾸기 둥지>, MBC <왔다! 장보리>, MBC <파스타> 등 다수의 작품에 제작이사나 제작PD로서 참여했다. 2006년에 올리브나인 프로듀서로 방송 제작에 입문해, 지담 제작이사와 예인E&M 공동대표이사를 거쳤다. 현재 KBS <빨강 구두>를 제작 중이다.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지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인 방송영상 콘텐츠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으로 방송, 뉴미디어, 신기술 기반, OTT 특화 콘텐츠 등 산업 수요에 기반한 드라마,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포맷 프로그램의 제작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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