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1

어나더 유니버스(Another Universe),
메타버스
- 대안 세계가 될 수 있을까?

글 장민지(경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조교수)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면서 이를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 메타버스.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가상 세계에서의 이야기 만들기는 매력적인 ‘놀이’의 일종이 되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이 놀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편집자 주

게임과 메타버스

게임의 역사가 다른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게임은 일상적인 ‘놀이’가 되었다. 게임을 통해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 접속하고, 그곳에서 플레이를 통해 보상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세계관’의 형성이 중요한데, 여기서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는 관점’의 뜻을 지닌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콘텐츠 내부에서 캐릭터를 구성하는 시공간적 배경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관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마다 우리가 다른 세상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드는 기본적 요소다. 우리는 그 세상에서 자신이 선택한 아바타, 혹은 캐릭터를 통해 또 다른 삶을 수행해나가게 된다.

이러한 게임의 세계관이 현실과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까. 문화기술이 게임 속 세계를 현실과 근접하게 재현하고, 우리가 그곳에서 현실 세계와 유사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삶을 그곳에서 쓰고, 저장하고, 어쩌면 폐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3년에 출시되었던 <세컨드 라이프>처럼. <세컨드 라이프>는 2003년 발매되어 3년 동안 100만 유저를 확보했고, 유저들은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 가상 코인을 벌어들이거나, 개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며 끊임없이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일상을 꾸려나갔다.

메타버스란 세계를 나타내는 용어 유니버스(Universe)에 ‘초월한’ 혹은 ‘더 높은’ 이라는 뜻을 가진 메타(Meta)라는 접두어를 결합시킨 용어다. 이를 우리나라 말로 풀이하면,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를 초월하여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그래픽 맵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경제적이나 사회적 활동이 현실 세계와 유사한 가상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울 세계(Mirror world)라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세계관을 가상공간에 재현하고, 이용자들이 그곳에서 끊임없이 현실의 일상과 유사하게 자유도가 높은 행위들을 지속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때문에 플랫폼 안의 수 많은 주체들은 메타버스의 이용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산자적 위치를 부분적으로나마 점유할 수 있다. 이것은 게임의 반구조적인 특성 때문이기도 한데, 게이머, 즉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게 게임이라는 텍스트는 하나의 완성되지 않은 세계관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특징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제한되면서 사람들이 가상적 공간, 특히 메타버스에 대한 소구가 강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가상공간에서의 또 다른 일상 혹은 이야기 만들기’는 게임의 탄생 이후 가장 매력적인 ‘놀이’의 일종이 되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내러티브의 생산은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이용자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잘 생각해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내며 살아왔다. 문자와 종이가 없을 때는 구전으로, 이후 책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가상공간에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세계들을 창작해낸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새로운 유통과정과 플랫폼을 거치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텍스트로 창작되는 것이다. 모양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그 모양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화기술이다.

제페토의 탄생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제는 여러 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인스타그램을 열어보거나, 트위터에 트윗을 날리고 리트윗수를 보거나, 하트를 누르거나,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을 읽거나 DM을 보내는 일. 이건 소셜 네트워크를 처음부터 이용하며 자라온 MZ 세대에겐 하나의 일상-루틴이다. 우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부활할)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에서의 인간이 끊임없이 말하고 누군가의 반응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는 형태만 변화했을 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다. 인터넷이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이용자들은 세상과 주체(나)의 연결로 인한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상호작용성’에 주목해왔다. 사람들은 게임에서, 소셜 미디어에서, 혹은 포털 사이트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페르소나를 변형시키며 상호작용한다.

얼굴인식과 증강현실, 3D기술을 이용해 아바타를 만들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페토 ZEPETO>(2018)의 부상은 이러한 연결형 메타버스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80% 이상이 10대이며, 2020년 10월 기준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1억 9,000만명1)을 돌파한 <제페토>는 하이브(前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및 JYP엔터테인먼트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는 초연결성과 초국가성을 인터넷을 통해 직접 경험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스스로 텍스트를 만들거나 편집해 유통하는데 적극적이다. 특히 그들은 복잡하고 긴 텍스트 대신, 짧고 강렬한 형태의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유통하는 것을 ‘즐긴다.’ 미디어 분석기관인 메조 미디어에 따르면 20대는 평균 15분짜리의 영상을 선호하고, 10대 또한 15.5분으로 길지 않은 시간의 콘텐츠를 선호하고 있다. 20대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시간 투자 대비 높은 만족감을 얻는, 일명 가성비를 중시한다. 심지어 뉴미디어를 태어날 때부터 접하고 참여적인 형태로 이를 이용해온 세대들은 ‘서사’보다는 ‘핵심적인 이미지, 컨셉, 장면’ 등을 뇌리에 남겨 소비하는 경향을 갖는다. 산만하고 분산된 형태의 정보나 콘텐츠라 할지라도, 이에 익숙해진 세대들은 이를 다시 연결하여 이해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빠르게 다른 이미지와 재조합한다.

실제로 현재 소비되는 드라마들 중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게시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시키는 팬 콘텐츠 홍보방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게시글은 순식간에 유통되어 잠재적인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심지어 이를 통해 유입된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드라마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바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에피소드를 시청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사전적인 지식을 숏폼 콘텐츠나, 단편적인 이미지를 통해 쌓아둔 상태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 최대한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것이 데이터의 폭풍에서 살아남는 현 세대의 전략인 것이다.

숏폼 콘텐츠, 그리고 제페토 드라마

인터넷 소설이 유행하게 된 것은,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로 호명되어진 주체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된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글을 쓰는 것과 그것을 공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위치’를 점유한다. 내가 혼자 쓴 글은 ‘사적인 글쓰기’에 그치지만 그것이 인터넷 공간에 공개되는 순간 ‘공적 글쓰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귀여니의 소설은 순수문학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졌지만 대중성을 얻고 IP확장을 지속했다.

제페토 드라마 <그 시절 우리> ⓒ월간

제페토의 드라마 텍스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메타버스 속에서 만들어진 아바타는 다양한 형태로 장식과 꾸밈이 가능하고, 모션도 추가할 수 있다. 이는 특정 문화기술이 대중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용자들은 예전과는 달리 이러한 도구를 가지고 쉽게 3D 캐릭터로 이야기를 생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그 아바타를 주인공으로 한 자신의 텍스트를 만드는 것, 그 만드는 행위 자체가 갖는 즐거움이 이를 지속하게 만들고 또 다른 ‘놀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형식을 전환한 또 다른 ‘이야기 생산 과정’이다. 이용자가 생산자로 치환되고, 다른 옷을 입은 이야기가 매끄러운 형식으로 재현된다.

메타버스는 아주 없던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낸, 특히 비대면 사회가 탄생시킨 또 다른 세계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처럼 영유해왔던 것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를 통해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뿐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에 대한 창작욕을 불태워왔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욕망의 조각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특별하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메타버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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