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2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 유튜버 하개월

글 노윤영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지난 9월 10일 사진 촬영이 끝난 후 하개월에게 책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에 서명을 부탁했더니, 이름 아래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라고 써넣었다. 다섯 살 때부터 보청기를 꼈다는 유튜버 하개월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꽤 심각한 이야기들을 하는데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웃을 때면 갈매기처럼 접히는 두 눈에는 온화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담겼다.

12개월만 할 줄 알았던 이야기

Q 이렇게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농인과 청각장애인, 수어를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하개월’입니다.

Q 하개월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면 ‘12개월만 할 줄 알았던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어요. 1년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유튜브를 시작하셨나요? A 한 지인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보라고 건넨 말 덕분이에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한 말이겠지만 집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쁠 것 같지 않았어요. 미디어는 여태껏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그리거나,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본 경우가 많았거든요. 농인인 제가 콘텐츠 생산의 주체가 돼 올바르게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유튜브에서 사용하는 이름 ‘하개월’은 무슨 뜻이에요? A 2017년 블로그를 개설할 때 1년 12개월 매일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하’는 제 본명(김하정)에서 가져왔고, ‘개월’은 12개월에서 가져왔죠. 2018년 1월에 유튜브 계정을 처음 개설할 때에도 1주일 1회 업로드, 12개월은 무조건 해보자는 마음에서 ‘하개월’이란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됐어요.

Q 그런데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네요.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요? A 제 생각과 경험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차이점도 있죠. 블로그 글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반면,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하긴 어려워요. 유튜브에서는 비언어적 표현까지 동원해 생생하게 담을 수 있어 좋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핵심을 쉽고 명확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아쉽고요. 글은 몇 줄만 읽어도 정보를 금방 파악할 수 있는데, 영상은 최소 5분 이상은 봐야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Q 앞서 본인을 ‘농인’이라 표현하셨어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에 익숙해서인지, 낯설게 느껴져요. A 농인이라는 개념은 ‘농아인(聾啞人)’, 즉 들을 수 없고(농) 말할 수 없는(아)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어요. 그러다 농아인이 수어나 음성언어를 통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아’를 지워 ‘농인’으로 통용하고 있죠. 그리고 청각장애인이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면, 농인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뜻해요. 다른 개념이지만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경우에는 농인이라는 말이 더 많은 이에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청각장애인과 농인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이야기

Q 농인과 청각장애인, 수어 관련 많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계시는데요.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우선 윤리의식을 가지려고 해요. 제가 이야기하든 게스트를 초대하든 이것은 개인의 경험이니 일반화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사람인 것처럼, 장애 경험 역시 모두 다르거든요. 그리고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 논문과 관련 뉴스를 최대한 살펴본 다음 정보를 전달해야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또한 게스트를 초대해 인터뷰할 때는 제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인터뷰 방향이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현 시점까지 계정에 업로드된 동영상 수가 190여 개가 넘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A 하나같이 다 소중하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올 7월에 올린 <BTS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 뮤비 속 국제수화1)를 본 농인의 반응>입니다.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리액션 영상이 많이 업로드되는데, 저는 농인 입장에서 촬영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사전 정보 없이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국제수화가 나와 깜짝 놀라고 반가웠죠. 리액션 영상은 보통 뮤비 공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업로드되는 경우가 많아서 저 역시 17시간 동안 편집을 해서 바로 올렸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다음 날 아침에 제 영상이 각종 SNS와 언론 뉴스에 소개됐고 일부 방송사에서는 동영상 사용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으니까요. 제 영상을 통해 농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Q 반면 아쉬움이 남는 콘텐츠도 있을까요? A 2018년 8월 2일에 업로드한 <53인 농인/청각장애인들의 말말말>이란 콘텐츠예요. 길이는 3분 32초에 불과하지만 53인을 개별 촬영하고 영상 편집과 자막 작업, 재촬영과 재편집, 감수 등을 거치느라 한 달이나 걸려 완성했어요. 53인을 모두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해 제가 직접 촬영한 경우도 있고, 개인 촬영이 가능하다고 답한 인터뷰이에게는 영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렇다 보니 선명하지 않거나 깨지는 영상들도 좀 있더군요. 업로드 이후 복지관이나 기업, 대학교 등에서 장애 인식 개선 강의 때 사용하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르는 등 반응이 좋아서 더 아쉬웠어요. 많은 데서 사용하는 만큼 좀 더 시간이 들더라도 제가 직접 모든 촬영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죠. 다음번에 유사 콘텐츠를 만든다면 스튜디오를 대관해서 100인을 모아 하루 종일 촬영해보고 싶어요.

Q 초기 콘텐츠에서는 본인 이야기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토크쇼가 추가되는 등 좀 더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A 처음에는 제가 누구인지 알리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어요. 다만 제가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저만 알고 있기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차츰 게스트를 모시고 토크쇼 형식도 도입하게 된 거죠. 다양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섭외하고 있어요. 모두 잘 됐으면 좋겠어요.

Q 초기에는 음성언어와 수화를 함께 사용하시다가, 음성언어를 내레이션으로 바꾸셨고, 최근에는 몇몇 토크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어 위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계세요. A 다섯 살 때부터 보청기를 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수어를 거의 접하지 못했어요. 음성언어를 주로 사용하다가 뒤늦게 수어를 접했죠. 이런 모습을 유튜브 채널에도 담고 싶었어요. 음성언어를 주로 사용하다가,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제 모습을 말이죠. 제 유튜브 채널에는 그런 정체성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담긴 셈이에요.

당연하지 않은, 소리 없는 이야기

Q 최근 OTT, 유튜브, 메타버스 등 콘텐츠를 만들고 이용하는 방법이 디지털화되면서 콘텐츠 향유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하죠. 농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요? A 본래 디지털 격차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게 모르게 겪어왔어요. 농인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콘텐츠 중에는 자막이 없는 경우가 많고, 실시간 콘텐츠의 경우에는 참여 자체가 어려워요. 적어도 정부 관련 채널이나 미디어 채널에서는 수어 통역과 한국어 자막이 제공됐으면 합니다. 실시간으로 진행될 경우 자막 넣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수어 통역사와 속기사 등 전문 인력도 필요할 테고요. 그래도 좀 더 고민해주셔서 농인과 청각장애인도 편하게 디지털 콘텐츠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서명할 때 써주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라는 글귀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A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도 연관이 깊어요.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농인 입장에서는 그런 마음을 더 잘 느끼게 돼요. 일상 속 대화, 학교나 회사 생활 등 어디에서든 그런 상황과 마주치죠.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Q 하개월님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나요? A ‘사람 냄새나는 콘텐츠’를 좋아해요. 저 또한 그런 냄새가 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희로애락이 담긴 콘텐츠 말이죠. 제 꿈은 전 세계의 모든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만나 촬영하는 거예요. 유튜브 플랫폼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N콘텐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A 소리 없는 영상의 매력에 빠져보실래요? 그럼 제 채널을 방문해주세요.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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