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동훈(광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가상 인간과 그들의 역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짜 인간과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이들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편집자 주
“네, 이번 주에만 (광고 촬영을) 두 번 했고,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은 현재 8건인데요. (계약은) 1년 맺었고요. 협찬 관련해서는 100건 이상 지금 되어 있는데, 저희가 다 쳐내지를 못해서. 목표로 했던 수익은 이미 달성했고, 올해 연말까지 본다면 충분히 10억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기획사 사장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다. 어느 아이돌 기획사인가 싶지만,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영원한 22살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의 제작자이자 기획자인 싸이더스 스튜디오 X의 백승엽 대표다.
로지는 최근 신한라이프 광고에 출연해 사람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의 정교함을 보여,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놀랐다는 댓글이 넘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은 지금, 디지털 휴먼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알아보자.
디지털 휴먼, 메타 휴먼(Meta Human), 사이버 휴먼(Cyber Human),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 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정의는 유사하다. 실제 인간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의 인간을 의미한다. 물론 이제까지 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의 인간은 많았다. 역사도 오래됐다.
출발점은 만화 캐릭터다. 누구도 진짜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디지털라이징 된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서 볼 수 있으니 이것 역시 디지털 휴먼으로 볼 수 있다. 199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사이버 가수가 등장했다.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가수는 만화 같은 캐릭터이긴 했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느낌이 강해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디지털 가수인 하츠네 미쿠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진짜 인간의 모습보다는 만화 캐릭터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 디지털 휴먼이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사실성에 있다. 즉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아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디지털 휴먼 중에는 셀럽도 많이 생기고 있다. 릴 미켈라(Lil Miquela)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플루언서인데, 2016년 4월 처음 선보인 이래로 유튜브와 틱톡까지 진출해 세계적인 셀럽으로 성장했다. 특히 패션모델과 뮤지션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2019년 수익이 1,170만 달러(약 130억 원)에 이르며 웬만한 슈퍼스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녀가 구찌 옷을 입고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경우 8,500달러(약 1,000만 원)를 받는다고 하니, 포스팅 전체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유명세로 인해 프라다, 캘빈 클라인, 삼성전자, 소다, 바비 브라운 등의 기업 광고와 <보그>, <가디언>, <V> 등의 잡지에도 등장했다. 릴 미켈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이마(Imma), 영국의 슈두(Shudu), LG전자 모델 김래아, 유니티 홍보 모델 수아 등 많은 가상 인플루언서가 소셜 미디어를 누비며 활동 중이다.
디지털 휴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아바타>나 <혹성탈출> 같은 영화에서 가상의 캐릭터는 모션 캡처를 통해 표정과 걷는 모습 등을 촬영한다. 실시간 모션 캡처는 자연스러운 몸짓을 만들기 위해 센서를 관절마다 붙여 몸의 움직임을 잡아낸다. 또한, 3D 스캐닝 기법으로 수백 개의 카메라가 달린 원형 모양의 통에 들어가 스캔을 하면 사람의 360도 전체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모션 캡처와 3D 스캐닝을 통해 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디지털로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360도로 구현한 다음에는 게임 엔진과 같은 그래픽 도구를 이용해 우리가 보는 디지털 휴먼을 만든다. 움직이는 디지털 휴먼은 대체로 이와 같은 과정으로 제작되는데, 이 방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게임이나 영화 등 주로 대작을 만들 때 사용된다.
두 번째는 그래픽 도구만을 이용해 작업하는 방법이다. 최근에 나온 그래픽 도구들이 워낙 훌륭해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 전용으로 사용할 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표적인 예로 에픽게임즈가 2021년 2월에 소개한 메타휴먼 크리에이터(MetaHuman Creator)가 있다.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로 만든 디지털 휴먼은 사실성이 매우 뛰어나다. 입 모양, 입이 움직일 때 얼굴 근육의 움직임, 말을 할 때 머리 부분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조차 신경 썼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게 클릭 하나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얼굴의 수염, 주름부터 나이대까지 모든 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니 수십, 수백만 명의 디지털 휴먼을 만든다고 해도 똑같이 생긴 디지털 휴먼은 존재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외양이 갖춰진 후 세밀한 부분은 딥러닝의 힘을 빌린다. 디지털 휴먼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어색하다 느꼈다면 이는 대체로 딥러닝 기술의 한계 때문이다. 이렇게 디지털 휴먼은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가상 앵커로 뉴스를 전달하기도 하고, 영화 <스파이더맨>처럼 사람을 대역하기도 하며, 딥페이크로 유년 시절 또는 노년 시절로 디에이징(de-aging)하기도 한다.
또한, 딥러닝은 단지 인간의 외양을 꾸미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더 중요한 이유로 전면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바로 실제 인간과의 사회적 관계 때문이다. 싱가포르 최대 통신사인 싱텔(Singtel)은 무인 매장에 스텔라(Stella)라는 디지털 휴먼을 배치해 24시간 내내 고객을 맞이한다. 미아(Mia) 역시 호주의 유뱅크(Ubank)에서 대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공 분야에서 일하는 디지털 휴먼도 있다. 소피(Sophie)는 헬스 어드바이저로 최근에는 코로나에 대한 상담을 담당하고 있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디지털 휴먼인 에이미(Aimee)는 3개월 간 7,000명과 대화를 했는데, 고객 만족도가 95%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디지털 휴먼이 인간의 실제 업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메타버스란 용어가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 용어야 한때의 유행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메타버스에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로 만든 에이전트인 사이버 휴먼이 돌아다니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무언가를 하는 시대가 자연스러운 미래로 도래하고 있다. 디지털 셀럽 릴 미켈라의 제작사 부르드(Brud)의 2019년 1월 당시 기업가치는 약 1억 2,500만 달러(약 1,450억 원)였다(Shieber, 2019).1) 마켓앤드마켓2)은 전 세계 대화형 인공지능 시장이 매년 평균 21.9%씩 성장해 2020년 48억 달러(5조 5,680억 원)에서 2025년 139억 달러(16조 1,240억 원)까지 커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디지털 휴먼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가짜가 진짜 같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지금, 디지털 휴먼이 활동할 공간은 지속해서 확대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