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3 2022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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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트렌드

빅테크 규제, 그 칼날의 향방

김익현 소장(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

2016년, 미국과 유럽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 무차별 유포된 ‘페이크 뉴스(fake news)’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허위정보 유통채널로 전락한 소셜 플랫폼들을 규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심지어 미국에선 언론과는 다른 플랫폼에게 과중한 책임을 부과하지 말자는 ‘통신품위법 230조’가 면죄부가 되었다. 결국, 거대 플랫폼이 언론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책임은 지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규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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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가 지난 4월22일 통과시킨 디지털서비스법(DSA)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법이다. 2020년 12월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처음 제안한 이 법은 플랫폼들에게 ‘관리 책임’을 좀 더 강하게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U 지역에서 월간 이용자 4,500만 명 이상의 거대 온라인 플랫폼과 검색 엔진들을 대상으로 하며, 주 타깃은 메타를 비롯해 구글, 아마존 같은 미국 거대 IT기업이다. EU 업체 중에선 음악 스트리밍 전문업체인 스포티파이가 대표적인 규제 대상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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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불법콘텐츠 관리 의무’가 핵심이다. 플랫폼상에 올라오는 불법 콘텐츠나 상품에 대해 좀 더 강력한 관리책임을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이 게재되거나, 불법 상품이 등록되었으면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도 중요한 규제 대상이다. 디지털서비스법은 플랫폼들의 추천 알고리즘 작동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알고리즘 적용을 받지 않는 표출 방식을 선택하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다. ‘건전한 토론과 소통’이라는 인터넷의 장점보다 ‘듣고 싶은 얘기만 확대 재생산’하는 부작용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추가로 개인정보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광고 또한 규제 대상이 된다. 특히, 정확한 인지가 어려운 미성년자 대상의 맞춤형 광고는 엄격하게 금지됐다. 성인 이용자의 경우, 성적 취향과 인종, 종교 등 개인 기본 인권과 관련된 정보를 활용한 광고도 집행이 금지됐다.

    이외에 2020년 12월, 디지털서비스법의 초안을 제안할 당시엔 없던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위기 상황 때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허위정보 대응 정책을 내놓도록 한 조항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허위정보가 범람하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플랫폼사가 마련할 수 있도록 덧붙였다.

광장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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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과거 인터넷 초창기엔 질서보다 자유가 훨씬 중요시됐다. 모처럼 맞이한 ‘열린 광장’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통신품위법 230조’를 포함해, 실제로 이런 정책적 기조 덕분에 야후(Yahoo!)와 같은 초기 인터넷 사업자들은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 걱정 없이 마음껏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광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함께 커졌다. 허위정보나 혐오 발언이 오히려 더 큰 사회 갈등을 빚자,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했다. 물론, 미국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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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고리즘 투명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이 건전한 공론보다 이용자 참여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콘텐츠를 추천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사실이 페이스북 내부 고발자인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에 의해 적나라하게 폭로되면서, 미국 의회는 ‘악성 알고리즘 방지법(Justice Against Malicious Algorithms Act)’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U가 디지털서비스법에서 알고리즘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정리하자면 디지털서비스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프라인에서의 불법 행위는 온라인에서도 불법이며,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원칙이 곧 핵심이다. 2024년 1월부터 이 법이 시행된다면 거대 플랫폼들은 지금과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내놔야 할 것이다. 위반 시, 전년도 전 세계 매출액의 6%에 이르는 엄청난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다가올 미래

  • 결국 구글, 메타 같은 거대 IT 기업들도 유럽에서의 비즈니스를 위해선 해당 법을 따라야 한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곧 디지털서비스법에서 강조하는 ‘콘텐츠 관리책임’이나 ‘알고리즘 투명성’이 머지않아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 물론 국내 기업 중에선 디지털서비스법의 대상이 되는 곳은 없다. 그래서 우리와 별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법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 기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근간이나 다름없으며, 최근 국내에서도 포털의 책임성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점차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디지털서비스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국내의 규제 기관뿐 아니라, 인터넷 기업들도 이용자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하고 이용 편의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한 단계 진화할 방안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 중심의 세계에서 전 세계 이용자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디지털서비스법 공방에 좀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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