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3 2022 Spring

    콘텐츠 IP, 장보기 노하우

핫트렌드2

덕후가
세상을 지배한다!

편집실

최근 왓챠의 오리지널 작품인 <시맨틱 에러>가 8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소위 ‘하위문화’에 해당했던 BL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중문화 중에서도 비교적 소수의 마니아층이 즐기는 주변 문화를 일컫는 하위문화. 즉, ‘서브컬쳐’가 어느새 이렇게 주변에서 중심으로 올라오게 됐는지,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만 같던 서브컬쳐의 이면에는 대체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걸까.

덕후의 시대

  • hot2_1 © Wake up, Girls
  •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서브컬쳐의 주 소비자에게는 숨겨진 힘이 있다. 바로 좋아하는 콘텐츠에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그들만의 ‘소비성향’이다. 이들은 사실 자본주의가 상정하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자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상품을 반복 구매하고, 효용성이 없는 물건을 사는 행위는 대중의 눈에는 이해 못 할 행동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굳이 이해받고 싶지 않아 하는 쿨(Cool)함도 이들의 특성 중 하나겠다.

    하지만, 최근 놀랍게도 ‘오타쿠’가 대중의 이해를 얻고 있다. 오타쿠의 순화 표현으로 쓰이던 ‘덕후’는 각종 커뮤니티와 미디어에서 친근한 이미지로 사용되고, 열렬히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 더 나아가 오히려 무언가에 미쳐 본 열정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기도 한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콘텐츠 장르의 세분화 같은 변화가 맞물리면서 ‘덕후’의 조금 비밀스러운 취향까지 사랑받는, ‘덕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덕후의 심장을 뛰게 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토록 ‘덕후’의 심장을 뛰게 하는가. 혹자는 남녀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그림체라 이야기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탄탄한 스토리에 사로잡혔다고 말한다. 다양한 이유는 많겠지만, 서브컬쳐의 핵심은 ‘세계관’과 ‘대리만족’에 있다.

  • hot2_2 © SM엔터테인먼트
  • 원작자나 IP 보유 기업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덕후들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돌변해, 새로운 창작물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첫 번째 매력 포인트다. 이를테면, 대형 기획사인 SM의 SMCU(SM Culture Universe) 세계관에서는 NCT U의 ‘Make a Wish’ 뮤직비디오와 aespa(에스파)의 ‘Black Mamba’의 뮤직비디오가 연결된다. 소위 ‘광야’로 불리는 세계관 안에서 팬들은 공식·비공식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고, 2차 창작물을 생산하면서 새로운 세계관에 점차 빠져드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빌리자면 ‘커다란 이야기’의 전체상에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이다.

    현실의 복잡함에서 떠나 성공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등 현대 판타지물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도 빠질 수 없다. 최근 전 세계에서 3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게임 제작이 확정된 ‘나 혼자만 레벨업’도 마찬가지다. 제목 그대로 혼자만 레벨업 할 수 있는, 최강의 헌터인 주인공이 등장해 던전을 휩쓴다. 이렇듯 최근 웹툰과 웹소설계의 트렌드는 더 이상 ‘성장물’이 아니다. 이미 성공한, 힘을 갖춘 주인공이 인기를 얻는다. 현실의 삶을 떠올리는 팍팍한 전개가 아닌, 세계관 최강자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속 시원한 전개를 원하는 것이다.

덕후가 바꾸는 세상

누군가는 앞선 글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서브컬쳐, 솔직히 그 정도인가?’라고 말이다. 물론, 관련 콘텐츠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보여주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곧 이들이 하나의 시장으로 주목받을 가치가 충분함을 증명한다.

  • hot2_3 © 왓차,리디
  • 앞서 잠시 언급한, <시맨틱 에러>는 영상화 이후, 주인공 ‘추상우’ 역할의 ‘재찬’이 속한 그룹, DKZ의 앨범이 초동 10만 장을 돌파하며 데뷔 이래 최고의 성적을 냈다. 원작 웹툰은 드라마 공개 이후 판매 수량이 340%로 급증했고, 대본집도 현재 알라딘, YES24 등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2월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은 장기 흥행에 성공하며 국내에서만 21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주연 ‘렌고쿠 코쥬로’는 트위터 등지에서 백만 여성의 “서방님”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카카오 게임즈도 서브컬쳐에 주목했다. 경주마를 귀엽게 의인화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를 내놓으면서 사전 예약 10일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하는 힘을 보였다. ‘모에’ 매력의 미소녀가 등장하는 ‘소녀전선’, ‘원신’ 등의 게임도 함께 대중화되고 있다.

원천 IP로서의 '서브컬쳐'

  • 서브컬쳐의 소재들이 원천 IP로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세계관은 원천 IP의 필수 요소가 되어버린 OSMU의 가능성을 보장한다. 대리만족을 원하는 소비자와 그에 빠르게 반응하는 창작자는 성공의 실험실 역할을 한다. 일차적 성공을 거두어 다른 매체로 재가공되었을 때, 이를 흔쾌히 소비해줄 두터운 팬층 역시 존재한다. 재미와 확장성을 기반으로 소재에 대한 제약이 자유로워지는 지금, 앞서 언급한 ‘서브컬쳐’의 숨겨진 힘이 곧 대중을 끌어들이는 매력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한국의 콘텐츠 IP 시장은 2020년, 지식재산권 사용료 수입 기준으로 OECD 회원국 9위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의 약 6%, 일본의 약 15.9%에 불과한 수치다. 어쩌면 그동안은 다소 조심스럽게 다뤄지던 서브컬쳐 소재가 이를 해결할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덕후’라는 일상적 표현조차 사라져, 모두가 대중문화 일부로 이를 즐기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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