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3 2022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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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人터뷰

고집스튜디오 안병래 대표 스토리움에서 만난 ‘불도저’

편집실  사진 서봉섭

지난 4월,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움의 네 번째 사업화 작품, <불도저에 탄 소녀>가 개봉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과 강렬한 포스터, 배우 김혜윤의 연기 변신까지. 볼거리 풍부한 이 영화의 제작사 ‘고집스튜디오’의 안병래 대표를 만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img_1 ⓒ 네이버 영화

불도저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어떻게 영화 제작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말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고집스튜디오의 안병래 PD입니다. 저는 영화 전공자는 아닙니다. 2006년에 <원탁의 천사>라는 영화의 연출팀에 합류하면서 영화업계에 들어왔는데요, 이때 제작PD 일이 눈에 들어왔어요. 연출은 스크린 안을 보지만, 저는 더 넓게 스크린 밖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작품부터는 제작팀에 합류했고, <김씨표류기>, <불신지옥> 등의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타 영화사 기획팀에 있으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보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 제가 정말 만들어보고 싶은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집스튜디오까지 세우게 됐네요.

지난 4월, <불도저에 탄 소녀>가 개봉했는데요. 고집스튜디오가 제작하고, 대표님은 프로듀서로 참여하셨죠.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를 추적하던 열아홉 살 혜영이 좌절과 고통을 겪고, 그녀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외치는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합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던 느낌 그대로 영화가 나온 것 같거든요.

시나리오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볼게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스토리움’을 통해 매칭된 이야기라고 알고 있어요.

네 맞습니다. 스토리움은 예전에 시나리오 찾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알게 됐어요.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들어가는데요. ‘투고’라는 작가가 제작사에 직접 시나리오를 보내는 시스템이 있거든요. 그렇게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어서 가끔은 꼭 들어가 보게 됩니다.

그럼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불도저에 탄 소녀>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작품을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이 궁금해요.

사실 이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게 스토리움을 통해서는 아니었습니다. 한 대형 제작사에 있을 때 처음 봤어요. 하지만, 그땐 상업성이 부족하고 주인공이 여성 원톱이라는 점에서 제작으로 이어지진 않았죠. 그 후로 1년 동안 잊고 지내다가 고집스튜디오를 차리고, 스토리움에서 다시 발견한 거죠. 다시 이 작품을 만났을 때는 ‘1년간 읽은 시나리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한창 시나리오를 많이 보던 시기였는데도 말이죠.

점점 시나리오를 판단하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절대적으로 ‘스토리’를 중시합니다. SF든 공포든, 어떤 장르든 간에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대체 여기서, 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거리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현실적인 영화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 상황에서 나도 저렇게 반응할 것 같다.’는 감정이 들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불도저에 탄 소녀>는 대표님의 공감대를 충분히 샀던 시나리오였던 거죠?

그렇죠. 저는 열아홉의 주인공 ‘혜영’이에게 굉장히 몰입하고, 응원하면서 봤어요. 특히, ‘혜영’이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대로예요.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혜영이 성장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혜영은 계속해서 물어요. “이게 맞냐”라고요. 그 질문이 마치 저에게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에 이 질문에 담긴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지점이 저에게는 후련하게 다가왔어요.

불도저를 이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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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를 탄 소녀>는 고집스튜디오의 첫 작품이자, 박이웅 감독님의 첫 장편영화 입봉작이라고 알고 있어요. 제작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이 영화를 준비하는 데 3년이 걸렸어요. 투자사를 찾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제목을 <불도저에 탄 소녀>로 제목을 바꾸셨어요. 원작은 <용 문신을 한 소녀>였는데 항상 투자자들의 첫 질문이 ‘왜 혜영이가 하필 용 문신을 했죠?’였거든요. 제목을 바꾸니 ‘왜 저 소녀가 불도저에 탔을까?’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이후 제작 지원과 캐스팅도 다 잘 이뤄졌고요.

3년이면, 꽤 긴 시간이네요. 시나리오에 대한 흔들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스튜디오 이름처럼 ‘고집’ 있게 밀고 나가셨나요?

그렇죠, ‘불도저’처럼요. (웃음) 시나리오를 바꾸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바꾸면 본연의 매력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어요. 돌고 돌아 ‘순정’인 것처럼요. 저는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고집 있게 밀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을 줄여서라도요.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활약하던 김혜윤 배우가 거친 이미지로 변신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촬영은 어땠나요?

영화 속에서 혜영은 화도 많고, 항상 기분이 좋기만 한 ‘소녀’의 캐릭터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안 밉더라고요. ‘혜영’과 혜윤 배우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스카이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데도 모두 잘 소화할 정도로 연기를 잘하기도 하고요. 특히, 혜윤 배우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배우예요. 현장에서 “이 감정이 맞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여기까지 해도 되냐, 혜영이가 이러는 게 맞냐는 거죠. 감독님은 확신이 있으니까 여기서 더 가야 한다, 더 화를 내야 한다며 더 끌어냈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채로운 영화, 다양한 영화

대표님도, 감독님도, 김혜윤 배우도 작품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게 느껴지네요. 이 작품을 제작하는 제작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다는 점이 힘들었죠. 일단 스토리 자체가 후련하고, 권선징악이 있는 영화가 아니에요. 익숙하게 보던 패턴은 아니죠. 하지만 만족합니다.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이번 영화 이후, 스토리움에서 만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현재 눈여겨보시는 장르가 있을까요?

작년에 스토리움에서 공포 영화를 하나 제작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라는 작품인데요,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자녀가 죽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공포. 가족 심리 공포라고 해야 할까요, 작은 영화예요. 또,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건 ‘느와르’ 장르입니다. 스토리움에서 그렇게 세 작품을 하게 됐네요. 개인적으로 장르가 딱 하나 있는 것 보다, 혼합된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멜로인데 스릴러도 있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불도저를 탄 소녀>처럼 스토리움을 통한 사업화 성공이 창작자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토리움 매칭을 시도하는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소재나 분위기가 비슷비슷한 영화가 많은 것 같아요. 다양성을 갖추려면 신인 감독들이 데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인 감독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을 제작사가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신인 배우를 조연으로라도 기용하는 노력을 해야 콘텐츠가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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