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4 2022 Summer

    가상인간, 현실로 로그온

PEOPLE 1

<왜 오수재인가> 김지은 작가 왜 김지은인가

김현주  사진 서봉섭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10%를 넘기는 성과를 보여준 <왜 오수재인가>. 빠른 전개와 시원시원한 대사,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은 그 매력 포인트로 손꼽힌다. <왜 오수재인가>로 입봉한 김지은 작가를 만나 창작 경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보았다.

  • people3 © 서봉섭

구성작가, 드라마를 쓰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왜 오수재인가>로 입봉한 김지은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이후에 <퀴즈 대한민국>, <생방송 투데이>, <무한지대 큐> 등 방송작가 일을 10년 정도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 작가가 되었죠.

그럼 교양 프로그램 작가에서 드라마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하신 거네요?

네,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교육원에 들어갔어요. 이후 드라마 보조작가를 하던 중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지금의 제작사와 매칭이 됐어요. 아직 데뷔하지 못한 작가를 제작사와 매칭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기회 덕분에 지금 이 드라마를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럼 왜 갑자기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갑자기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엄마 아빠한테 혼나면서까지 드라마에 푹 빠져서 지냈죠. 당연히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20대 때도 준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땐 제가 쓴 대본이 너무 가볍더라고요. 아직은 글을 쓸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고, 다른 일을 하며 식견을 길러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다가 삼십 대 초반쯤 다시 드라마를 써야겠다는 욕심이 들었죠.

‘이름값’ 지키기

<왜 오수재인가>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오로지 높이 올라가겠다는 일념으로 잘못된 선택도 불사하고 살았던 ‘오수재’의 이야기예요. 오수재는 ‘공찬’이라는 청년의 믿음과 사랑을 기반으로 인생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나가죠. 누구나 삶을 살면서 잘못된 선택을 해요. 하지만, 저는 이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인생의 항로를 틀어 다른 방향으로 가보는 것. 저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오수재’의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이에요. 이 매력적인 캐릭터와 로스쿨 배경의 이야기 중 작품의 시작점을 꼽으라면요?

두 가지가 거의 동시에 출발됐어요. 로스쿨 이야기를 써볼까, 거기 이방인처럼 나타나는 변호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캐릭터일까? 왜 로스쿨에 왔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갔어요.

  • people1_2 © SBS

<왜 오수재인가>라는 제목도 궁금해요.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우리가 잊고 사는 이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온 제목이에요. 극 중에서 주인공 오수재가 최태국 회장에게 이름값으로 700억을 요구하는데요. ‘빼어날 수에 맑을 재’라는 아빠가 지어준 이름처럼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내 이름값에 걸맞은 인생을 찾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기도 하죠. 수재의 결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캐스팅과 함께 시원시원한 전개와 사이다 같은 대사도 인기 요소 같아요. 혹시 모티브가 된 사람이 있나요?

저요.(웃음) 제가 세상 돌아가는 데에 불만이 많은데, 그 성격이 한몫했던 것 같아요. 친한 사람들은 오수재에서 제가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수재가 자기 생각을 직설적으로 내뱉고, 쏘아붙이고 하는 것들이 제가 편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투와 닮아 있어서 그런 말을 듣는 것 같아요.

법정물은 특정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야기상으로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전체적으로는 우리의 현실에서 많이 얻어요. 정·재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정한 사건들이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들은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아요. 심지어는 로스쿨 교수가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부정한 일을 하기도 하죠. 끊임없이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 이 현실 자체가 곧 제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어요.

자료 조사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전문적인 용어나 사건에 대한 조사 등 많은 품이 들었을 거 같은데요.

이상하게 전 글을 쓰기 전, 자료 조사가 너무 좋아요. 구성작가를 하던 시절 생긴 습관 같은 걸 거예요. 어떤 아이템이 생기면 모든 재료를 다 찾아서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죠. 자료와 책은 물론, 변호사와 경찰까지 만나며 많이 배웠어요.

<왜 오수재인가>는 사랑과 법정 미스터리가 공존해요. 정확히 어떤 장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요?

오수재라는 사람의 드라마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오수재가 변호사기 때문에 법정 미스터리라는 장르, 오수재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거는 공찬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서 멜로라는 장르가 섞이죠. 오수재의 변화의 지점에 공찬의 믿음과 사랑은 큰 역할을 한 거죠. 어떤 이들은 법정로맨스, 어떤 이들은 미스터리 법정 서스펜스라고도 하는데, 제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오수재의 변화, 성장 드라마’였어요.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것

  • people1_3 © SBS

세상에 공개되는 첫 작품이라 시청자들 반응이 궁금하고, 때론 무서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대중들의 첫 피드백을 들어본 소감은요?

피드백을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들려오는 반응들이 있죠. 좋든 아니든 감사한 마음이 커요. 그만큼 열심히 봐주시는 거니까요. 아무리 대본을 써도 어디에 내놔야 할지 몰라 막막했고, 막상 내놓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시간이 꽤 있었거든요. 다만 그런 다짐은 해요. 칭찬에도 비판에도 크게 휘둘리지 말고 내 글을 쓰자. 이 다짐은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나요?

있어요.(웃음) ‘작가의 사랑관은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건가 보다’라는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정확했거든요. 또, 제 이름을 부르며 ‘지은아, 오늘 재밌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써’ 하는 댓글이 있었어요. 간만에 소리 내서 웃었죠. ‘알았어, 앞으로도 그렇게 쓸게’ 하고 댓글을 달고 싶을 정도였어요.

작가님은 그럼 ‘잘 먹이고, 잘 재우는’ 사랑을 누구에게 받으셨을까요?

부모님이죠. 언젠가 아빠가 제가 갓난아기였던 시절을 회상하시며 ‘똥도 먹을 수 있겠더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걸 극 중 허준호 배우의 대사에 녹이기도 했어요. 내 자식 살리는데 내 손에 똥 묻히는 거 괜찮다고, 먹을 수도 있다고요.

극본을 쓴다는 건,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외로운 거 같아요. 부모님 외에 나아갈 힘이 되었던 것들이 있나요?

<무한도전>과 <삼시세끼>, 그리고 청양고추요.(웃음) <왜 오수재인가>를 함께 기획하고 함께 고민했던 제작사 보미디어의 두 대표님들이 큰 힘이 됐고요. 또, 작가교육원에서 만나 오랫동안 좋은 인연으로 지내온 동기들이 있어요. 모두 저보다 먼저 입봉하고 좋은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질투하는 게 아니라 참 부러웠어요.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죠. 내가 그들과 함께 공부했고, 내 글을 그들이 좋아해 주는 만큼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요. 첫 방송 직후 그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연락이 왔고,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고마웠어요.

작가님이 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다른 일을 하기도 했고, 첫 드라마를 준비하는 시간도 길었어요. 꿈을 향해 가는 노력에 지치고 힘든 시기가 있었죠. 그러던 중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는데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구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뭔가 안 풀리는 상황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고 있구나...그러지 말자, 내가 나를 믿고 아끼자, 마음먹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오수재는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질주하느라 한 번도 자신을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는 인물이에요. 그런 오수재가 공찬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기 잘못을 깨닫고, 제대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요. 오수재를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아끼고 내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느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한데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분명한 건, 변호사 안 나옵니다. 법정도 안 나와요. 당분간 법정은 멀리할 거거든요.(웃음)

드라마 작가로서의 목표는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걸 제대로 쓰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 그게 제 목표에요. 그래서 제 드라마에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작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people1_4 © 서봉섭

마지막으로, 방송 산업의 커리어를 원하는 지망생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도 이제 겨우 작은 한 발짝을 내디뎠는데요.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다루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장 길이 안 보일 때는 다른 일을 해도 괜찮아요. 다만 소중하게 찾은 꿈을 버리지 말고, 꼭 갖고 있으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꿈이라는 친구가 말을 걸 때가 있어요. “너 나를 너무 잊은 거 아니야?” 라고요. 그런 때가 꼭 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친구가 이쪽 길로 가보자고 안내하기도 하죠. 저처럼 조금 돌아가도 되니까요,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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