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4 2022 Summer

    가상인간, 현실로 로그온

N Story 3

버츄얼 휴먼과 팬덤

신윤희(대중문화연구가)

개인의 취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문화구성체인 팬덤은 오늘날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팬들의 적극적인 팬 실천이 문화적으로 힘을 보이고, 나아가 정치‧경제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비의 영역에 있던 팬들이 과거와 달리 생산 단계에 직접 참여한다. 아이돌 그룹 혹은 원하는 상품을 직접 기획해내며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팬이나 스타가 지지하는 가치를 사회 운동의 차원으로까지 이끌어낸다.

  • n3_1 © shutterstock
  • 팬덤(fandom)은 그 접미사 -dom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단적인 현상을 포착한다. 이는 점차 다양하고 복합적인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팬덤 구성원들이 무엇을 팬 대상으로 여기는지에 따라 각자 특별한 문화와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미디어 콘텐츠(드라마, 예능, 캐릭터 등)에서부터, 셀러브리티, 스포츠, 브랜드(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팬 대상에 따라 역사적 맥락에서 특정한 팬덤이 구성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팬 대상으로 여기고, 그를 수용하는 팬들이 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에서 태어난 존재, 다시 말해, 디지털 공간에서 비대면 방식으로만 소통하는 ‘버츄얼 휴먼’은 팬덤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셀러브리티’로서의 버츄얼 휴먼

  • 질문에 대한 답, 혹은 힌트를 얻기 위해서는 버츄얼 휴먼이 미디어 콘텐츠, 즉 ‘가상’의 캐릭터인지 아니면 ‘휴먼’에 더 힘이 실린 셀러브리티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무엇’을 팬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팬덤은 서로 다른 경험과 팬 활동 방식, 특수한 맥락 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n3_2 로지 <바다 가자> 앨범 커버 ©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 국내 최초 버츄얼 휴먼인 로지(ROZY)는 2022년 6월에 두 번째 디지털 싱글 앨범 <바다 가자>를 발매했다. 이후 로지는 인스타그램에서도 신곡 발매 소식을 알렸는데, “노래가 좋다”는 대중의 반응에 직접 “사이버 휴먼이니까”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로지 스스로가 캐릭터 형태로 존재하는 ‘가상’의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숨김없이 혹은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버츄얼 휴먼인 로지 자체도, 이를 소비하는 수용자도 모두 로지의 존재가 ‘가상’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로지는 일종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의 캐릭터로만 존재하기에 로지는 SNS를 통해 대중과 충분히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하나의 캐릭터로만 한정되기엔 특정 콘텐츠 세계 밖에서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타’를 팬 대상으로 하는 셀러브리티 팬덤은 스타와의 상호소통과 감정적 교류가 활발하고,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런 점에서 버츄얼 휴먼의 팬덤은 셀러브리티 팬덤의 성격과 유사해질 가능성이 있다.

    셀러브리티 팬덤의 대표적인 예는 케이팝 아이돌 팬덤이다. 케이팝 팬덤은 디지털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3세대로의 변화를 겪어왔는데,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버츄얼 휴먼 팬덤에 새로운 시선을 더할 수 있다. 특히, 육성형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생산 단계에 직접 참여해본 ‘3세대 팬덤’은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확장한 동시에 주체성과 기획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1) 스타와의 소통은 점차 쌍방향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애정을 기반으로 스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소비자 행동주의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팬과 스타의 상호작용에서 관계성, 진정성 등이 중요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지털 팬과 플랫폼

  • 버츄얼 휴먼에게 팬과의 오프라인 대면 만남은 ‘아직까지는’ 가능하지 않다. 스타와 팬이 일대일로 만나 대화를 주고받는 팬 사인회나, 오프라인 콘서트와 같은 대면 공연에서 응원 문화를 통해 스타와 소통하는 감각, 오감으로 느껴지는 공연장의 열기를 다른 팬들과 함께 느끼는 감수성과 같은 것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팬덤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소통을 이어온 ‘디지털 팬’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온라인 소통이라는 비대면 측면에서 케이팝 팬덤에게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온택트로의 매체 환경 변화가 그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팬덤이 활동하는 영토는 디지털로 전환되고, 플랫폼이 팬 활동을 매개한다.

    플랫폼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은 시청각의 제한된 감각에서 이루어진다. 제한된 감각의 소통에서 스타의 물성과 아우라의 감각은 상실 또는 변형된다. 팬들은 물성의 감각과 진정성 등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스타와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온라인 소통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재난 상황에서 스타의 긍정적인 태도, 잦은 온라인 소통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그리고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산업의 움직임 등이 비대면 시대의 팬 활동 동력이 된다.2) 이 과정에서 플랫폼은 디지털 공간에서 새롭게 팬이 되거나 적극적인 팬 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 n3_3 걸그룹 ITZY의 한국관광 홍보용 퍼포먼스 © 한국관광공사
  • 일부 팬들은 장소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디지털 팬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과 동시다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 자체가 중요한 Z세대3)에게 온라인 공간은 충분히 실제라고 느껴질 여지가 있다. Z세대에게 온라인 가상공간은 실제 세계와 밀접하게 결부된다. 특히 <로블록스>, <제페토> 등으로 대표되는 메타버스를 놀이 공간으로 인식하며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멀티 페르소나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미 시작된 매체 환경의 변화와 디지털 팬의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특징은 버츄얼 휴먼에게도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버츄얼 휴먼이 내어주는 (가상)공간

  • 3세대 팬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주체성에 있다. 제작 단계에 직접 참여하며 ‘기획자’로 자신을 위치 짓는 과정에서, 행동 이전에 스스로의 판단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MZ세대의 특징이기도 한 가치를 소비하는 문화이다. 이른바 ‘기획하는 팬덤’은 이후에도 데이터를 모으고 목적에 따라 분류 또는 배포하는 ‘팬 큐레이션’ 실천 등 다양한 역할로 참여를 확장해왔다.4) 참여 욕구가 강하기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기업이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소비한다. 쌍방향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결국, 버츄얼 휴먼에게 친밀감, 관계 설정, 진정성, 아우라 등을 어떻게 부여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Z세대의 소통 방식 ‘상시 연결’의 주체가 ‘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버츄얼 휴먼이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보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어떤 소통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진정성’으로 제공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버츄얼 휴먼 뒤에는 그들을 기획하고 구현해내고, 또 매니지먼트하는 제작자가 존재한다. 결국,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는 산업 관계자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팬덤은 소비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이에게 열광한다. 버츄얼 휴먼은 팬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고, 팬덤이 버츄얼 휴먼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문화적 상상력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나아가 ‘가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들도 함께 고민하고 고려할 때, 그 가치에 공감한 팬덤은 더 크게 응답할 것이다. 버츄얼 휴먼 팬덤이 건강한 방식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안적인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상’을 둘러싼 이와 같은 맥락들이 중요하다. 결국 모든 가능성은 생산자와 수용자, 즉 우리 손에 있다.

  • 1)
  • 신윤희, 『팬덤 3.0』, 스리체어스, 2019.
  • 2)
  • 신윤희, 「코로나19 이후의 팬덤」, 『페미돌로지』, 빨간소금, 2022, 300-329쪽.
  • 3)
  • 고승연,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스리체어스, 2020.
  • 4)
  • 신윤희, 앞의 글, 322-326쪽.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