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5 2022 Autumn

    콘텐츠, 너나들이

코카人터뷰

바우어랩 조수현 대표 눈앞에 다가온 니케

김현주  사진 서봉섭

빅스 켄, 오종혁, SF9 유태양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킨 창작 뮤지컬 <인간의 법정>. 9월 말, 초연을 앞두고 22세기 배경의 SF물이라는 설정이 공개되자 무대 연출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무대 영상 디자인 전문 회사인 '바우어랩'의 조수현 대표를 만나 기술과 미술의 결합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 img_1 © 서봉섭

경계를 넘는 도전

안녕하세요, 조수현 대표님. 간단하게 본인 소개와 바우어랩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바우어랩의 대표이자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동하는 조수현입니다. 무대 디자인을 주로 하다가 영상을 공부하기 위해 디즈니가 설립한 '칼아츠(Calarts)'라는 학교에 들어갔어요. 이런저런 기회를 바탕으로 공연의 비주얼 요소를 디자인하는 바우어랩을 만들었고, 현재는 메타버스 콘텐츠와 메타 휴먼 개발을 비롯해 영상이 필요한 콘텐츠라면 전부 도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공연계에서 신기술과 공연의 만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두 요소를 결합하게 된 시작이 궁금해요.

칼아츠 졸업 후 테마파크에서 일했어요. 관객과 콘텐츠 사이의 양방향 소통이 좋았고, 실감 콘텐츠에 대한 꿈을 계속 키웠죠. 그러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공연'을 다시 하고 싶어졌고, 이 작품으로 기회가 생겨서 냉큼 한국 길을 선택했어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걸 다 하게 됐네요.(웃음)

그러네요. 어쩌면 처음 시작하신 무대 디자인, 즉 무대 미술이 예술의 영역이라면 무대 영상은 기술에 가깝잖아요. 그 경계를 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기술과의 만남은 우연이었어요. 칼아츠가 그런 곳인 줄 몰랐죠. 들어가자마자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더라고요.(웃음) 여전히 두 영역은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요. 아직 무대 미술은 순수미술로 분류되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천착하고 있죠. 그 때문에 공연에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요즘, 기술 전공의 외부인들이 공연 업계에 잠깐씩 발을 들이고 있어요. 저는 둘 다 잘하고 싶고, 제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무대 디자이너', '영상 디자이너', '총감독' 등 대표님의 직함이 다양해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될까요?

직함이 곧 제가 겪어 온 길을 다 말해주는 것 같아요. 무대 디자이너는 공간만 디자인하고, 영상 디자이너는 영상만 디자인해요. 저는 그 둘 다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더 효율적이고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중에 코로나로 공연계가 멈췄고, 영상으로의 전환이 많아졌어요. 그때 제가 연출과 공간, 영상까지 디자인하게 돼서 '총감독'까지 오게 된 거죠.

SF 뮤지컬, <인간의 법정>

  • img_2 © 대로컴퍼니

바우어랩이 참여한 뮤지컬 <인간의 법정>이 초연을 앞두고 있는데요, 어떤 작품인가요?

<인간의 법정>은 조광희 작가님의 작품인데요. 실제 변호사이시기도 해요. 22세기 '한시로'라는 인물이 로봇 제작 업체를 통해 자신과 닮은 클론 형태의 로봇 '아우어'를 제작하면서 생기는 일을 그린 이야기에요. 살인사건을 베이스로 한 법정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인간의 법정>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어요. 각색을 통해 뮤지컬 대본으로 탄생한 이 작품, 원작과 다른 매력이 있었나요?

소설은 많은 메시지를 던지지만, 뮤지컬엔 간단하고 명료한 메시지가 있죠. 원작자가 뮤지컬 대본에 참여한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원작자가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만 뽑아서 뮤지컬로 탄생시키신 것 같거든요. 대본과 원작 사이에 괴리가 없는 점이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우어랩이 표현한 22세기가 궁금하기도 한데,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SF 영화에서처럼 홀로그램이 떠다니지는 않았어요. 미래에도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정이 더 와 닿을 것 같았죠. 그래서 '미래'를 시각적으로 강요하는 영상은 없어요. 다만, 법정은 미래적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법관이 실재하지 않고,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AI의 모습을 하도록 했어요. 그 부분이 가장 미래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인간의 법정>은 AR 등 신기술을 접목해 더욱 기대되는데요.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의미 없이 신기함만 가지는 기술은 공허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법정>엔 판사가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판결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야 법정이라는 공간을 체감하게 될 테고, 이때 법정이 갖는 특유의 권위와 위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AR 머신을 가져다 대면, 정의의 여신 디케가 압도적인 사이즈로 무대에 자리해요. '법정' 그 자체인 거죠.

대표님 말씀에 작품이 점점 기대가 되는데요. 기술의 활용이 <인간의 법정> 작품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번 작품에서는 프롤로그에 주요 기술이 접목됐으니, 관객을 그 장소에 데려다 놓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제목이 <인간의 법정>이라더니, 진짜 법정이구나' 하는 식으로요. 기술은 이렇게 콘텐츠의 일부가 돼서 이해를 돕기도, 깊게 감상하게 하는 트리거가 되기도 하죠.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연과 기술의 결합

개인적으로 영상을 통한 무대 연출 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어느새 영상을 빼놓고 공연을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 왔지만, 대본이 배려가 안 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도 영상은 대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함께 가야 해요. 영상을 위해 쓰인 장면이 아니어도 공연의 속성과 가장 유사하게 잘 맞아 들도록, 공연의 톤과 어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실패하면 영상 쇼가 돼버려요. 공연을 보러 간 이유가 없어지죠.

그래서일까요, '영상이 공연 전체를 압도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히 여기신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 지점을 찾는 게 꽤 디테일한 작업일 것 같아요.

조명, 음향 등 다른 파트와의 협업이 중요하죠. 상과 음향의 조합이 무척 중요하다 보니 연출을 통해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편입니다. 이런 영상을 만들 건데 이런 소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감정을 사용할 예정이다, 하고요.

업계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VR이나 3D 등의 기술 도입으로 공연계에도 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현직자로서 변화를 체감하고 계실까요?

네, 온몸으로 느낍니다. 자금의 여유로 3D 기술 등을 도입하면서 생긴 변화인 것 같아요. 혹시 한국이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인 거 아세요? 영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우리밖에 없다는 건데요. 그들의 뮤지컬 시장은 이미 영상 쪽으로 확 치우쳐져 있거든요. 무대를 만들지도 않으니까요. 한국은 영국과 미국 공연시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에요. 곧 한국도 그 변화를 함께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공연은 전통적인 시장이기에 기술 도입을 꺼리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연극처럼 전통적인 장르에선 기술 도입이 더디죠. 제가 미팅을 할 때도, 영상은 차가워서 공연과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하세요. 공연이라는 게 아날로그의 '끝판왕'이잖아요. 그 안에서도 변화에 탑승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시장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늦게 편승할 거라고 봅니다.

  • img_3 © 서봉섭

그런데도 계속, 끊임없이 도전하고 계시네요. 대표님은 무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가상공간'까지 확장될 거라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지구촌 전체가 동시에 같은 변화를 체감한 그 첫 번째가 인터넷의 보급이었다면, 두 번째는 메타버스가 될 거예요. 가상공간을 현실화하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고, 이걸 거부하면 도태될 가능성이 커지겠죠.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야 한다던 저희 어머니도 '마켓컬리' 없이는 못 살게 된 것처럼요.(웃음)

<인간의 법정>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제작된 작품인데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진흥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떤 제작자도 기술과 공연의 결합을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지속적인 지원으로 콘텐츠를 시장에 내놓고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보여주면 호응이 올 것이고, 제작자들이 계속해서 기술 접목에 대한 시도를 이어갈 테니까요. 더불어 공연 제작의 첫 단계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디어와 참신함, 살아 숨 쉬는 연출에 대한 지원이요.

마지막으로 바우어랩, 그리고 <인간의 법정> 홍보 부탁드립니다.

바우어랩은 앞으로도 예술에 근거한 참신한 기술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 테니까 주목해주세요. 그리고 <인간의 법정>은 최첨단으로 사회가 변하는 시기에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얘기를 법조인의 관점에서 잘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한번 생각 깊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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