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5 2022 Autumn

    콘텐츠, 너나들이

N Story 1

왜 다양해야 하는가

이종임 이사(문화사회연구소)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방영된 이후, 전 세계적 흥행에 힘입어 미국 2022 Emmy Awards에서 6개 부문 수상을 이뤄냈다. 영어권 국가의 콘텐츠가 주류문화의 위치를 차지해왔던 과거를 돌이켜볼 때, 어떻게 비영어권 국가의 콘텐츠가 이토록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걸까.

  • n1_1 © 뉴시스
  • 어쩌면 작품 속 주제와 캐릭터가 대중의 감정적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디어의 '환경적 변화'다. 각종 SNS를 통해 새로운 이슈와 문화를 탐구해가는 능동적인 대중의 등장과 넷플릭스 등 채널의 다원화는 하나의 콘텐츠에 담긴 가치관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역할로 작용했다.

K-열풍의 시작, 정서적 공동체

  • 물론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 갖는 부정적 역할론도 최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언어나 문화의 차이에도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한 배경임은 분명하다. 특히 지난 2년여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콘텐츠 소비는 물론, 팬들 간의 정서 공유가 온라인을 통해 더욱 일상화된 것은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다.

    팬데믹은 개인 간의 현실적 만남을 어렵게 했고, 이는 정서적 공감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로 이어졌다. 동시에 갑작스러운 질병 재난에 대한 공포는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계층과 계급 등 사회적 문제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때 다원화된 채널은 그들을 더 많은 시간 미디어 플랫폼에 머무르게 했고, 함께 모여 만남의 '장'을 형성해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된 것이다.

    처음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용자 증가 이후 콘텐츠에 '순위제'를 도입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중을 높은 순위의 콘텐츠에 주목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라이브 등은 케이팝 아이돌 가수가 팬들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중에게 함께 소통하고 공유할 공통적인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 n1_2 ⓒ SBS
  •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경험이 개인화된 사적 경험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텔레비전이 매개체가 되어 개별화된 개인을 연결한다고 보았다.1) 사적인 시청경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관계적 시청'으로서의 타인과 타인을 연결하는 연결성을 지닌 것이 대중매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금의 OTT플랫폼과 소셜 미디어 이용이 일상화된 우리의 삶에도 적용가능하다. 즉, OTT 플랫폼을 통해 개별화된 공간에서 콘텐츠 소비를 할지라도,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순히 '시청'을 넘어선 SNS를 통한 감정적 연대는 K-콘텐츠의 존재감을 견고히 해나갔다. BTS의 무대, 영화 <기생충>, <미나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담긴 상징적 의미들을 함께 분석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일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K-Pop이나 K-콘텐츠를 보고 울고 웃는 팬들의 리액션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콘텐츠를 보면서 느끼는 ‘사적 감정’이 SNS를 통해 ‘공동체의 감정’으로 전환되는 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과 채널의 다원화, 능동적인 대중의 출현이 지금의 K-콘텐츠 열풍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용자가 원하기에

  • 다만, 그 안에서 좀 더 세부적인 인기 요인을 찾자면 이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약 20여 년의 한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적 이익에 주목하거나 한류의 성공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만 평가했을 경우 대중의 외면을 받아왔다. 반복적인 콘텐츠 생산과 고정관념에 기반한 차별적 요소가 콘텐츠에 반영될수록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대중들은 멀어져 갔다.

  • n1_3 ⓒ 빅히트 뮤직
  • 현재 수많은 K-Pop 가수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BTS가 유독 큰 호응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팬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가 반영된 개성 있는 음악으로 차별화를 해나갔기 때문이다. 반면, 2017년 한 여성 걸그룹이 흑인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 올라 비판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떤 시각이 반영된 콘텐츠를 소비해왔는지, 문화적 공감이 아닌 문화적 차별이 반영된 시각을 콘텐츠에 투영한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야기 구조가 있는 드라마 역시 그 어떤 콘텐츠보다 즉각적인 대중의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는 분야다. 마찬가지로 OTT 플랫폼 등을 통해 다국적 이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최근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인종차별과 문화적 차별에 대한 문제들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MBC 드라마 <빅마우스>에서 특정 국가의 음식에 대해 부정적 의미가 담긴 장면이 방영됐고, 해당 국가의 팬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판의 글을 공유했다.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문제적 표현으로, <펜트하우스3>에서는 레게머리와 흑인분장을 한 장면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차별과 혐오가 멀리 있지 않으며, 콘텐츠에 담긴 가치관이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도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 사례다.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는 문화는 표현가치가 발현되는 영역으로 복잡하고 급격한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하는데,2) 실제로 문화콘텐츠는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할 역할을 해왔다. 또한 콘텐츠는 대중의 환호와 지속적인 관심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중의 비판에 더욱 신중하고 즉각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또, 문화는 시민사회의 민주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체이기도 하다. 즉, 현재 국내의 콘텐츠 내에서 문화적 논리와 상징성이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중의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대중의 지지를 전제로 하는 ‘문화콘텐츠’이기에 해당 피드백들을 바탕으로 더욱 신중하고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다양성으로 가는 길

  • n1_4 2020년 인종차별 반대운동(Black Lives Matter) ⓒ koreadailytimes
  • 이렇게 대중들이 콘텐츠 평가에 논리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는 데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일상화와 함께 SNS를 통해 확산했던 해시태그 운동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7년 미투운동(Me Too Campaign), 2020년 인종차별 반대운동(Black Lives Matter), 아시안 증오범죄 반대운동(Stop Asian Hate) 등을 통해 차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디어는 다양한 문화행위자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상호접근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서로 다른 집단들이 문화교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조건 없이 제공한다. 그리고 SNS를 통해 형성된 담론이 현실정치에도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마련된 지금, 콘텐츠는 단순한 소비상품이 아닌 사회·정치적 실천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지금의 미디어 환경 내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콘텐츠 이용자들은 상업적 이익 추구나 고정관념이 담긴 콘텐츠, 혐오와 차별 이슈에 대해 논리를 가지고 적극적인 비판을 이어간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자신의 비판적 시각과 적극적 의견을 표명하는 '실천'을 중단한다면 지금의 다양성 담론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에 이용자는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생산 주체는 이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즉 이용자의 '실천'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다양성을 담은 콘텐츠로의 시작이 될 것이다.

    또, 콘텐츠 생산 주체와 플랫폼의 역할론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넷플릭스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따라 2018년과 2019년 콘텐츠 제작 환경을 기반으로 한 <다양성 보고서>를 내놓았고,3) 우먼 인 뉴스(Women in News)는 <미디어 젠더 가이드(A GENDER GUIDE FOR MEDIA)>를 제안했다.4) 자체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고용 비율을 늘리고, 다양성을 위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등 생산 주체와 플랫폼 안에서도 적극적이고 유의미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5)

    결국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끊임없이 자신의 시각과 태도를 돌아보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곧 또 다른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술의 속도성과 제공되는 정보의 양에 잠식당하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탄생과 향유로 이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1)
  • Raymond Williams(1974). Television:Technology and Cultural Form, Schocken Books, 박효숙 옮김(1996). <텔레비전론>. 현대미학사.
  • 2)
  • Lévi-Strauss (1976). Race et histoire, Paris: Abe books. 안호림·박태순(2013). 융합미디어 환경에 따른 문화다양성 범주 설정 및 분석 프레임 연구. <한국언론정보학회>, 63권 3호, 77쪽, 재인용.
  • 3)
  • David Oliver(2021.2.26.). Netflix film, TV report highlights diversity wins, losses: 'I almost fell off my chair', USA TODAT. https://www.usatoday.com/story/entertainment/tv/2021/02/26/netflix-diversity-film-tv-report-highlights-inclusion-wins-losses/6813195002/
  • 4)
  • Women In News(2020.5.). A Gender Balance Guide for Media Organizations. http://women in news.org/2020/5/a- Gender -Balance -Guide- for -media- organisations/
  • 5)
  • 노지민(2021.3.5.). 넷플릭스,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성 보고서 내놓았다, <미디어오늘>. 참고.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256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