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후퇴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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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3년째로 접어들며 대표적인 콘텐츠산업인 영화 매체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극장을 찾는 대신 OTT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 등의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왓챠, 티빙, 웨이브 등의 토종 업체까지 진출해 있는 국내 OTT 플랫폼 시장은 꾸준한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의 다원화는 한국 영화산업의 위축과 긴밀하게 맞물린다.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자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장편 상업영화의 개봉 편수가 감소했다. 한편,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로 직행하는 작품이 등장했다는 것은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와 수익성이 크게 축소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그런데 OTT 플랫폼의 유행과 맞물린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는 비단 양적인 축소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한국영화가 다루는 내용에서도 질적인 변화가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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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진흥위원회(2022),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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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수익을 고려하는 상업영화에서 성별균형, 성인지 감수성, 다양성과 관련된 지표들이 일부 퇴행하는 듯한 징후가 포착됐다.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 영화가 눈에 띄게 줄었고 성소수자와 장애인, 다양한 인종·종족·국적의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의 가시성과 스테레오타입 재현 여부 등을 조사하는 '다양성 테스트'에서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1) 물론 이러한 결과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인지는 향후 몇 년을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의 심화, 다양성 인식 부재 등은 그간의 풍요로운 양적 성장 속에서도 꾸준히 지적되어 왔던 한국 영화산업의 고착화된 문제들이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 위기가 극적으로 앞당겨진 것이라는 내부적 분석이 지배적이다.